“한국은 기술·소비자·상용화 속도 모두 갖춰, 전략적 혁신 엔진”
나노엔텍·프링커 협업 제품 CES 공개, 빅뱅으로 스타트업 발굴
“상하이서 통하는 게 서울선 안 통해… 문화적 현지화가 핵심”

조이스 뤼 로레알 CDO는 “한국은 우리에게 전략적인 혁신 엔진”이라고 밝혔다. /로레알

“한국은 우리에게 전략적인 혁신 엔진으로서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조이스 뤼(Joyce LUI) 로레알 북아시아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의 전략적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중국, 일본, 한국 등 북아시아 3개국을 총괄하는 그는 각 시장이 완전히 다른 디지털 생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을 글로벌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레알은 한국 기업 나노엔텍과 협업해 CES 2025에서 ‘랑콤 셀 바이오프린트(Lancome Cell BioPrint)’를 공개했고, 프링커코리아와는 CES 2023에서 휴대용 아이브로우 메이크업 어플리케이터 ‘3D 슈브로우(3D shu: brow)’를 선보였다. 한국에서 발굴한 혁신을 글로벌 무대에서 공개하는 전략이다.

뤼 CDO는 “한국은 바이오테크놀로지, 바이오메디컬, 화학, 제형 과학,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술 등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함께 풍부한 뷰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가장 빠르게 수용하는 얼리 어답터 성향이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 북아시아 3국, 완전히 다른 게임의 법칙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북아시아는 로레알에 매력적이면서도 가장 복잡한 시장이다. 중국, 일본, 한국은 각기 다른 디지털 생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뤼 CDO는 “중국 소비자가 뷰티 제품을 발견하는 여정, 일본 소비자가 미묘한 심미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이유, 한국 소비자가 라이브스트리밍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전략의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다. 각 시장을 형성하는 고유한 가치관, 선호, 사회적 관습에 진정성 있게 몰입해야 한다. 섬세한 커뮤니케이션부터 문화적으로 공감되는 UX/UI 디자인까지, 이러한 정밀한 현지화 과정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를 로컬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전환한다.

더 복잡한 건 이 현지화 전략을 글로벌 수준의 규모와 속도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하이에서 강력한 반향을 일으킨 것이 도쿄나 서울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뤼 CDO는 “다양한 현지 법규 준수, 시장별로 상이한 인터넷 인프라, 폭넓은 디바이스 호환성을 모두 고려하면서도 로레알의 글로벌 브랜드 일관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며 “이 과정은 섬세한 균형의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타오바오와 티몰, 더우인(중국판 틱톡) 등 자체 플랫폼 생태계가 강력하다. 일본은 전통적인 백화점 문화와 디지털이 공존하며, 심미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한국은 올리브영 같은 H&B 스토어가 급성장하며 이커머스와 오프라인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조이스 뤼 CDO는 “한국에서의 협업은 단순히 기술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생태계 전체와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레알

◇ 한국발 혁신, 글로벌 무대로

로레알이 북아시아 3개국 중 한국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기술 생태계, 소비자 특성, 그리고 빠른 상용화 속도다.

대표적 사례가 나노엔텍과의 협업이다. 지난 1월 CES 2025에서 공개한 랑콤 셀 바이오프린트는 5분 만에 피부의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랩온어칩 디바이스다. 로레알의 장수 통합 과학(Longevity Integrative Science)과 나노엔텍의 바이오칩 기술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2023년에는 한국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와 협업해 휴대용 아이브로우 메이크업 디바이스 ‘3D 슈브로우’를 CES에서 선보였다. 정밀한 3D 프린팅 기술을 뷰티 디바이스에 적용한 혁신 사례다.

뤼 CDO는 “한국에서의 협업은 단순히 기술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생태계 전체와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레알은 ‘로레알 빅뱅(L'Oreal Big Bang)’ 프로그램을 통해 북아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과 함께 최첨단 뷰티테크 솔루션을 공동 창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글로벌 15개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어라운드X(Around X)’와 협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면테크 스타트업 에이슬립과 GAN 기반 가상체험(VTO) 서비스 스타트업 수집 등을 발굴했다. 현재 로레알코리아 브랜드들과 함께 개념증명(POC) 및 파일럿 케이스를 준비 중이다.

중국에서는 동방뷰티밸리(Oriental Beauty Valley), 비즈니스 프랑스(Business France)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일본에서는 일본 최대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인 스테이션 Ai(STATION Ai)와 협력하고 있다.

뤼 CDO는 “이러한 협업 방식은 혁신적인 결과물을 신속하게 상용화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북아시아와 같이 역동적인 시장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전략을 조정한다”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성공적인 솔루션을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플랫폼 전쟁, 브랜드는 어떻게 살아남나

북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플랫폼의 힘이 막강하다는 점이다. 틱톡샵, 쿠팡 같은 플랫폼들이 자체 AI 추천 알고리즘을 강화하면서 브랜드의 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뤼 CDO는 이에 대해 “로레알은 전략적 파트너인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역량을 활용하는 동시에 우리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그들의 비전과 전략을 이해하고, 소비자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데이터 및 뷰티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특히 올리브영 같은 H&B 스토어가 강력한 시장이다. K-뷰티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하고 있다. 로레알은 이 시장에서 AI를 활용한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뤼 CDO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로 구성된 시장 중 하나”라며 “혁신을 주도하고, 효능에 대한 기대가 높으며, 새로운 것을 남다른 열정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로레알은 AI를 활용해 소비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분석하며, 그들의 피드백을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반영한다. 카운터에서의 피부 진단 서비스나 매끄러운 온·오프라인(O+O) 통합 리테일 경험 뒤에는 데이터와 AI가 있다. AI 기반 이커머스 성과 분석 및 최적화를 통해 미래를 위한 인사이트도 확보하고 있다.

로레알 그룹이 설립하고 지원하는 멀티브랜드 마켓플레이스 스타트업 ‘노리(NOLI, No One Like I)’는 이러한 인사이트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AI 뷰티 매치메이커이자 마켓플레이스 플랫폼으로, 로레알의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제품, 성분 및 효능에 대한 지식과 뷰티테크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다.

뤼 CDO는 “한국 소비자들은 성분에 민감하고, 리뷰와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똑똑한 소비자’를 위해 로레알은 데이터 기반 경험을 제공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 중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증강된 뷰티 경험을 통해 자신의 뷰티 니즈를 충족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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