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 디지털전환 관심은 높아… 실질적 투자·연결은 아직 제자리
디지털 트윈·스레드 기반의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가 경쟁력 분기점
“윈도우 타임 1~2년… CEO 리더십과 데이터 중심 전환이 성패 좌우”

오병준 지멘스DISW 한국지사장. /유덕규 기자

“대한민국 제조업은 많이 늦었습니다. 중국이 10년 전까지만 해도 저 뒤에 있었는데, 어느새 휙 지나가서 앞에서 달려가고 있어요.”

오병준 지멘스DISW 한국지사장의 말이다. 그는 국내 제조업의 디지털전환(DX)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실질적인 투자와 전환을 시작한 회사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 “디지털 트윈·디지털 스레드 기반 위에 AI가 접목돼야”

오 지사장은 제조 대전환의 핵심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설계–생산–서비스’ 전 과정을 하나의 데이터 백본인 ‘디지털 스레드’로 끊김 없이 연결해야 한다. 둘째, 각 단계는 제품 트윈·생산 트윈·운영 트윈을 포괄하는 ‘디지털 트윈 체계’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반 위에 AI가 결합될 때 비로소 공정 전체가 지능화고, 궁극적으로는 자율 생산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지사장은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Software-Defined Manufacturing)’의 실질적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R&D에서 나오는 3D 마스터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정보가 변형 없이 그대로 생산에 적용돼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제조업은 중간에 변형 과정이 너무 많고 사일로(Silo)화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리적 공장을 가상 환경에서 먼저 검증하고 최적화하는 ‘버추얼 커미셔닝’ 역량을 갖추면 공장 셋업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제조업과 함께 만들고 싶은 생태계에 대해서는 “‘소재-부품-장비-OEM’으로 이어지는 전체 생태계가 디지털로 연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멘스가 AWS,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함께 ‘산업형 AI 파운데이션’ 핵심 멤버로서 오픈 혁신 기술을 도입한 ‘랜드마크 공장’을 만들어 업계 전반에 파급 효과를 일으키겠다는 구상도 전했다.

오병준 지멘스DISW 한국지사장은 R&D부터 생산까지 전체 프로세스가 연결되려면 ‘페더레이션’을 거쳐야 하지만, 한국은 이 부분이 상당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유덕규 기자

◇ “한국은 5단계 중 3단계… 결국 관건은 ‘연결’”

오 지사장은 제조 AI의 발전 단계를 1단계 모니터링(미러링)부터 5단계 자율형(오토노머스) 공장까지 다섯 단계로 제시했다. 한국 제조업은 현재 3단계인 자동화·시뮬레이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R&D부터 생산까지 전체 프로세스가 연결되는 4단계 ‘페더레이션’을 거쳐야만 자율 생산으로 갈 수 있는데, 한국은 이 ‘연결’이 상당히 약하다”고 말했다.

데이터 연결성 강화를 위한 지멘스의 전략도 소개됐다. 오 지사장은 알테어 인수로 확보한 ‘데이터 패브릭’ 역량을 언급하며 “이제는 모든 데이터를 데이터 레이크에 모으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MES, PLM, ERP 등 다양한 운영 데이터들을 패브릭으로 묶어 제자리에서 분석·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6년 전 인수한 로코드 플랫폼 ‘멘딕스’ 최신 버전에는 에이전트 기반 AI 개발 기능까지 추가됐다고 밝혔다.

혁신 사례로는 중국 BYD의 생산 혁신이 대표적이다. 그는 “신차 개발부터 양산까지 54개월 걸리던 주기를 ‘18-18 프로젝트’를 통해 36개월로, 현재는 12개월 수준까지 단축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ASML은 2030년까지 포토리소그래피 장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목표를 추진 중이며, 국내에서는 HD현대가 2022년 4월부터 지멘스와 디지털 혁신 공동 개발을 진행해 생산 비용 30% 이상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SDI·SK온·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3사 역시 디지털 트윈 프로젝트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제조 AI의 다음 과제로 오 지사장은 “디지털 스레드를 기반으로 페더레이션을 빠르게 완성하고 자율형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성형 AI, 피지컬 AI, 캐드 AI, 시뮬레이션 AI, 피직스 AI 등 다양한 요소 기술을 각 영역에서 빠르게 실험해보며 ‘패스트 페일(Fast Fail)’ 방식으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CEO가 직접 안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오 지사장은 디지털 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CEO 리더십’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R&D는 CTO가, 생산은 CPO가 담당하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혁신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결국 CEO”라며 “디지털 전환은 CEO의 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BYD 왕촨푸 회장이 프로젝트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과 달리, “국내 대기업 회장들은 지시만 하고 잊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내용 속으로 들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 제조 리더들이 놓치고 있는 위험 요소로는 ‘데이터’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AI, AI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데이터”라며 “연결과 분석, 활용 측면에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빅데이터 때도 잠깐 하다가 사라졌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바뀌어야 할 요소로는 부서 간 협업 문화를 지적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데, 부서 간 사일로를 스스로 만든다.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며 “협업 환경을 만들고 KPI를 설계하는 것이 디지털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오 지사장은 “윈도우 타임이 1~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본다. 중국이 GPU까지 완성하면 몇몇 산업을 제외하고는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며 “AI는 이미 실증 기술로 우리 곁에 와 있다. 디지털 트윈 연결, 디지털 스레드 백본 구축, AI 요소 기술의 신속한 실험 적용,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투자와 리더십은 CEO 몫”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병준 지멘스DISW 한국지사장은 오는 3일, 인공지능 전문매체 THE AI가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 AI 제조 강국으로 대전환 : 한국 제조업이 세계를 다시 리드하는 방안은?’을 주제로 개최하는 제조 AI 컨퍼런스의 연사로 나선다. 지멘스DISW가 제시하는 제조 AI 혁신 전략과 디지털 트윈·디지털 스레드 기반 비전 등은 제조 AI 컨퍼런스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사전등록은 제조 AI 컨퍼런스 신청 사이트(링크)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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