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트윈 옷 입은 韓 조선업, 아시아 패권 강화
트럼프 재집권 후 재조명받는 한국 조선업, 중·일 동시 압박
‘품질’만으론 한계… 디지털 전환으로 ‘속도·효율’ 경쟁력 확보
다쏘시스템 버추얼 트윈, 설계부터 운항까지 전 과정 통합 관리
한국 조선업이 전략 산업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미국이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 한국 조선업을 전략적 파트너로 지목한 영향이 크다. 선박 건조는 단순 제조업이 아닌 안보 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국이 축적해온 고도화된 기술력이 재평가받는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각각 물량과 기술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 외교 구도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기술과 속도 양쪽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전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 물량공세·일본 기술투자 동시 압박
중국의 조선업 성장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2012년부터 추진된 ‘해양강국 건설’ 전략으로 국영 조선소와 설계기업, 연구소, 금융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2019년 주요 조선사 합병으로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은 현재 LNG 운반선 건조 단가가 한국보다 저렴하다. 지난달 전 세계 선박 수주의 약 65%를 중국이 차지한 것도 그 영향이 크다.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시장에서 뒤처졌던 일본은 탄소중립과 고부가가치 선박을 기회로 삼고 있다. 2020년대 초부터 노후 조선소를 정리하고 기술 재건에 나선 일본은 최근 정부의 대규모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수소·암모니아 선박, 자율운항 시스템, 친환경 소재 기술에 집중 투자 중이다. 조선소와 대학·연구소 간 기술 통합 플랫폼 구축도 동시 진행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의 기술·재정 압박이 본격화되면 한국도 가격 경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산업 재건이 아니라 K-조선을 겨냥한 구조적 치킨게임의 서막”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그간 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부유식 해양플랜트 등 고난도 선종에 집중해왔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 중이지만, 중국의 물량 공세와 일본의 기술 재무장이 동시에 본격화되면서 품질 중심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조선업계에서는 경쟁 본질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한다. ‘누가 더 잘 만드는가’에서 ‘누가 더 효율적으로 설계·생산·운영하는가’로 이동했다고 한다. 속도와 정밀도를 동시에 확보하는 디지털 전환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실제로 전 세계 조선업계는 설계부터 제조, 운항, 유지보수, 해체까지 전 생애주기를 통합 관리하는 ‘스마트 조선소’ 체계로 전환 중이다.
◇ 버추얼 트윈 기술, 조선소 혁신 이끈다
이러한 조선업 경쟁에서 글로벌 AI 기반 버추얼 트윈 기업 다쏘시스템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1981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다쏘시스템은 전 세계 140여 개국 약 29만 개 기업에 가상 세계 기반 솔루션을 제공하며 항공·자동차 등 첨단 제조업 혁신을 주도해왔다.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은 단순 3D 설계를 넘어 선박의 전 생애주기를 통합 관리한다. 핵심은 ‘버추얼 트윈’ 기술이다. 실제 선박과 동일한 가상 모델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하고 실시간 데이터를 연동해, 가상 선박에서 먼저 설계·제조·운영 시나리오를 테스트하고 최적화한다. 자원 낭비를 줄이고 생산성과 안전성, 환경 대응력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이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황푸원충조선소는 설계·생산·프로젝트 관리가 분산돼 있던 체계를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으로 통합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향상시켰다. 스페인 국영 조선사 나반티아는 이 플랫폼으로 친환경 선박 개발과 수출 시장 대응에 속도를 냈다. 아시아 지역 조선소에서는 블록 조립 시간을 최대 60% 단축하고 생산 오류율도 대폭 낮췄다.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은 새로운 시장 기회와도 맞물려 있다. 기후 변화로 북극해가 빠르게 열리면서 북극항로가 전략 해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 2050년쯤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던 ‘얼음 없는 북극의 여름’이 2030년경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와 유럽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북극항로는 수에즈운하 대비 약 30~40% 운항 거리를 줄여 물류비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북극항로가 본격 개방되면 쇄빙선, LNG 운반선 등 고내구성·고효율 선박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은 전기, 수소, 연료전지, 고효율 LNG 등 다양한 친환경 추진 기술을 설계 초기 단계부터 비교 검토할 수 있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구조를 제공한다.
프랑수아 자비에 듀메즈 다쏘시스템 조선&해양 부문 수석 부사장은 “조선업은 치열한 경쟁과 환경 목표 속에서 더 빠르고 스마트하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며 “다쏘시스템은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기반의 버추얼 트윈 기술로 조선업체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는 “한국 조선소들이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숙련 인력의 경험을 데이터화하고 기계가 학습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쏘시스템은 유럽 주요 조선사들과 ‘어디서 설계하든, 어디서 건조하든’ 전략을 실현해왔다”며 “국내 조선소들도 AI 기반 초격차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