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술로 손잡은 한국-이탈리아... 115개사 참가 ‘비즈니스 포럼 2025’ 성황
한국과 이탈리아가 혁신 기술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에 나섰다.
양국은 오늘(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포럼 2025'에서 첨단기술, 녹색경제, 헬스케어, 스마트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이탈리아무역공사(ITA),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한국경제인협회(FKI), 이탈리아경제인연합회(Confindustria)와 공동 주최한 행사로, 이탈리아 기업 29개사와 한국 기업 66개사 등 총 115개사가 참가해 약 160건의 B2B 미팅을 진행했다. 행사에는 이탈리아 17명, 한국 3명 등 총 20명의 연사가 참여해 양국 협력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경쟁자가 아닌 상호보완적 파트너”
발렌티노 발렌티니 이탈리아 기업·산업부 차관은 축사에서 “우리는 경쟁자인가, 상호보완적 경제인가?”라는 핵심 질문을 제기하며 “자원이 제약된 두 국가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공유된 취약점을 경쟁 우위로 전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렌티니 차관은 이탈리아가 20만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클러스터 모델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이며, 한국 역시 조선·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강국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국 모두 에너지 수요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이지만, 혁신과 제조업 우수성을 통해 산업강국으로 변모했다”며 “이러한 공통점이 경쟁보다는 협력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발렌티니 차관은 “양국 모두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 직면하고 있으며, 가족 경영 기업을 성장의 기둥으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도전과제를 공유하고 있다”며 “한국어로 표현하는 '연(緣)', 즉 신뢰와 상호 배려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 관계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세대를 생각하는 지속적 파트너십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명언을 인용하며 “모든 도전 뒤에는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3대 핵심 협력 분야 제시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1884년 한-이탈리아 수교 이후 140여 년간 정치·경제·문화·인적교류 전 분야에서 관계가 심화되어 왔다고 평가하며, 3가지 핵심 협력 분야를 제시했다.
첫째, 한국의 자동차·조선·반도체 기술과 이탈리아의 정밀기계·화장품·디자인 전문성을 결합한 첨단산업 협력이다. 박 차관보는 “2023년 마타렐라 대통령의 서울 방문 시 체결된 한-이탈리아 산업협력 MOU가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과 신흥 분야 협력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둘째,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바탕으로 한 녹색·순환경제 협력이다. 2030년까지 청정에너지 비중 20% 확대를 목표로 하는 한국과 국가에너지기후계획을 추진하는 이탈리아가 한국의 청정에너지 기술과 이탈리아의 청정 인프라 전문성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탈리아의 제약업계 전통 강점과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제조 역량을 활용한 헬스케어·바이오기술 협력이다.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파트너십과 의료기기 공동개발 등 협력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교역 12년간 55.94% 성장, 문화교류도 활발
양국 경제협력은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2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양국 총 교역액은 2012년 80억 8천만 달러에서 2024년 126억 달러로 55.94%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이탈리아산 제품 수입은 48억 달러에서 77억 달러로 60.42% 증가했으며, 대이탈리아 수출도 32억 달러에서 49억 달러로 53.13% 늘었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1인당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 소비 규모가 가장 큰 시장으로, 이탈리아의 대한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패션과 명품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2024년과 2025년을 한-이탈리아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로마와 서울에서 활발한 프로그램이 전개되고 있다”며 “140년간 쌓아온 외교관계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이탈리아 음식과 패션을 사랑하고, K팝 스타들이 구찌, 프라다 등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의 글로벌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명훈 마에스트로가 250년 역사의 이탈리아 프리미어 오페라 하우스 최초 아시아인 음악감독이 된 것처럼 문화적 교류도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특히 “2022년 양국 교역이 135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양국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협력 잠재력은 훨씬 크다”며 저탄소 에너지와 헬스케어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원전을 최초로 폐기한 국가였지만 10년 내 소형모듈원자로(SMR) 운영 계획을 세운 만큼, 세계적 원전 건설 전문성을 보유한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개 전략 분야별 세미나와 실무 협력
이번 포럼은 개회식, 고위급 라운드테이블, 분야별 세미나, B2B 미팅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오전에는 ‘이탈리아-한국 경제 관계: 현황과 미래 전망’을 주제로 한 고위급 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됐다. 이탈리아 측에서는 SACE(이탈리아수출보험공사), SIMEST(이탈리아 해외투자 진흥공사), CDP(이탈리아 예금대출공사), UCIMU(이탈리아 공작기계 협회), 이탈리아경제인연합회가 참가했으며, 한국 측에서는 KOTRA, 산업연구원 관계자가 참석해 기술 혁신, 산업 자동화, 디지털 및 친환경 전환 등 주요 이슈를 논의했다.
분야별 세미나에서는 인공지능·반도체·산업자동화·로보틱스 등 첨단기술, 순환경제·에너지 전환 등 녹색경제, 제약·의료기기 헬스케어, 항공우주·자동차·스마트 모빌리티 등 4개 전략 분야로 나누어 산업 협회 및 업계 단체 간 대화와 협력을 촉진했다.
오후에는 양국 기업 간 1대1 맞춤형 B2B 미팅이 진행되어 실질적인 상업 및 산업 협력 기회를 모색했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이번 행사는 양국의 역동성과 혁신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단계의 경제 관계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시모 페로 이탈리아무역공사 고문 겸 이사는 “이번 포럼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닌 지난 수년간 추진해온 양국 기술혁신 협력의 이정표”라며 “혁신과 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양국 경제 관계의 미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의 1인당 수입 규모 1위 시장이 된 만큼, 장기적 접근과 상호 헌신으로 견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렌티니 차관은 폐회 발언에서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야 할 것”이라며 “오늘 우리는 공동의 운명을 정복하기 시작할 기회를 갖게 됐고, 함께라면 취약점을 강점으로, 도전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이번 포럼을 통해 단순한 교역 확대를 넘어 첨단 기술과 친환경 산업에서의 협력을 심화하고, 나아가 정치·문화적 교류로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특히 전통적인 다자간 협력 체계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간 양자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포럼의 의미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