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 끝없이 펼쳐진 갯벌 위로 하얀 소금 결정이 햇빛에 반짝인다. 이곳은 1953년 조성돼 70년 넘게 천일염을 생산해 온 140만평, 여의도 2배 크기의 국내 최대 염전이다. 6·25전쟁 이후 피난민 구제와 소금 자급을 위해 만들어진 태평염전은 지금도 연평균 1만4000톤을 생산하며 국내 천일염의 6%를 생산한다.

태평염전은 천일염 생산뿐 아니라 근대문화유산 등록, 아시아 최초 슬로우시티 지정, 람사르 습지 지정 등 세계가 인정한 가치를 바탕으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절임 배추와 김장 체험, 박물관 투어 등을 통해 방문객과 지역민에게 천일염의 가치와 전통을 알리고 있다.

◇ 70년 이어온 전통, 땀으로 빚어낸 태평염전 천일염

염전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염도와 바람, 햇살에 따라 소금의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작업은 보통 새벽 4시~5시부터 시작해 낮 동안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다시 이어진다. 특히 여름철 6~9월에는 전체 생산량의 약 80%가 집중되며, 작업량이 많은 시기다.

염판 위에 소금이 형성되면 작업자는 밀대를 이용해 소금을 한곳으로 모은 뒤 수레에 담아 운반한다./사진=김경희

염판 위에서는 하얀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사람이 밀대로 소금을 한곳으로 모은 뒤 삽으로 수레에 담아 운반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자동화 설비가 일부 도입돼 수레로 옮기지만 여전히 손과 발의 노동이 중심이다. 기자가 직접 밀대를 잡아보니, 물기가 있어 한 번에 밀리지 않아 여러 차례 밀어야 했고, 땡볕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크게 소모됐다.

토판천일염 생산 구역에서는 국내에서 세 곳만 생산되는 귀한 소금을 확인할 수 있다. 발 밟기, 롤러 다짐, 물 분포 균일화 등 여러 과정을 거친다. 첫 수확은 깨끗하고 맑지만, 두 번째 수확부터는 바닥의 흙이 일어나 갈색빛을 띄며 품질이 달라진다. 일반 천일염보다 가격이 10배가량 높지만 건강과 맛을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는 꾸준하다.

염전에서 거둬들인 소금은 가공 공장으로 옮겨져 여러 단계를 거쳐 상품화된다. 간수 제거, 탈수, 건조 과정을 거쳐야 시장에 나갈 수 있으며, 입자 크기와 숙성 기간에 따라 60여 종으로 세분화된다. 절임 배추용, 조리용, 테이블용 등 용도별로 철저히 나뉜다.

현재 염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근로자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공장 관계자는 “정확한 숙성과 관리가 천일염의 맛과 품질을 결정한다”라며 품질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美 CBP, 수출 차단…태평염전, 신뢰 회복 위한 변화 모색

2019년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일부 임차 염전에서 임금체불과 장시간 노동 사례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태평염전 소금에 대해 강제노동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CBP는 태평염전 소금이 미국으로 수입될 경우 강제노동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착수와 함께 감시를 강화했다.

염판에서 모은 소금을 수레에 담아 레일 기계 위로 옮기면, 이곳에 한데 모아진다./사진=김경희

올해 4월에는 인도보류명령(WRO)이 내려졌다. WRO는 강제노동 의심 물품의 수입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로, 해당 제품이 강제노동과 무관함을 입증하지 않으면 미국 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 태평염전은 직접적인 수출길이 막히고 이미지에도 영향을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태평염전은 임차 구조 전반을 재점검하고, 모든 근로자 고용에 표준 근로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했다. 제3자 기관의 인권 실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근로자 숙소·휴게시설 개선과 정기 교육도 강화했다. CBP와의 협의를 통해 문제 해결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국제 무역에서 신뢰 회복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양정 태평염전 전무는 “과거 임금 지급 지연과 근로 환경 미비 사례가 있었지만, 현재는 연중 판매 체계와 관리 강화로 모든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몇 주전 미국 대사관에서 방문해 노동자 휴게소, 계약, 숙소 등을 조사하고 갔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적 근거와 인권 보호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해 재발 방지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제3자 기관 감사를 통해 수출용 소금의 안전성과 근로 조건 준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고령화·기후 변화 직면한 천일염 산업 위기와 향후 계획

천일염 산업은 고령화와 기후 변화 등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신안군 전체 염전에서 70대 이상 고령 노동자가 65%를 차지해 젊은 인력 유입은 쉽지 않다. 또한 태풍, 장마, 이상기후 등으로 생산량도 불규칙하게 변동한다. 신안군 전체 염전 허가 면적은 약 2000㏊이지만, 최근 10년간 734㏊가 줄었다. 일부 염전은 양식장 전환이나 태양광 시설 설치로 사라졌고, 태평염전 또한 140만평 가운데 35만평을 올해 안에 태양광 발전 시설로 전환할 예정이다.

천일염 가격은 2011년 30kg 한 포대 3만원에서 꾸준히 하락해, 2018년에는 2만원 선이 무너졌다. 반면 생산 원가는 과거 4000원에서 최근 6000원까지 상승했다. 50년째 염전 일을 해온 박형기 장인은 “가격은 내려가는데 원가는 오르는 이중고”라며, 산업 지속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작업자들이 소금의 이물질을 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김경희

김상일 태평염전 대표는 염전과 천일염 산업 전반에 관여하며 전통 소금의 가치와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소금이 음식문화의 근간이다. 소금 맛이 부족하면 김치나 각종 음식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3년 이상 숙성한 소금으로 만든 김치는 가장 아삭하고 깊은 맛이 난다”며 천일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현재 정부의 지원은 충분하지 않지만, 염전을 잘 보존해 생산된 소금이 국민 건강과 식문화 유지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천일염을 세계적 수준의 품질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매년 천일염 비축사업을 통해 가격 변동과 국민 공급 안정성을 관리하고 있으며, 올해 예산은 약 100억원이지만 전체 생산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쌀처럼 가격 안정성이 유지되어야 하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평염전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신안군은 해양수산부와 협력해 수출 전용 공장을 건립했으며,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 공장은 일정한 나트륨 함량을 충족하는 소금을 미국과 홍콩 등으로 연간 3~4톤 수출할 수 있다. 다만 기후와 환경에 따라 염도가 달라, 대량 가공용에는 제약이 따른다.

또한 태평염전은 소금 용도를 세분화해 절임용, 조미용, 테이블용 등 맞춤형 제품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는 장기 숙성 후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일반 소비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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