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테크 Part 2-5
기업 실증 사례로 본 ‘생활형 웨어러블’의 가능성과 한계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자립의 시작입니다.”

헥사휴먼케어 한창수 대표는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웨어러블 로봇 ‘클레짐(CLEGSYM)’의 개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상용화 전인 이 제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령자를 포함한 노약자의 자립적 이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 중심 설계’가 제품 기획 단계부터 녹아 있기 때문이다.

클레짐을 착용한 노약자 모델이 보행 보조 기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헥사휴먼케어

걷는 장면이 바뀐다면, 삶도 달라질까

국내외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군사, 산업, 재활 중심에서 돌봄과 일상생활 보조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령자를 위한 상용 제품은 드문 상황이다. 클레짐은 바로 이 틈을 공략하고 있다.

클레짐은 고령자와 경증 보행 장애인의 개인 이동성(Personal Mobility)을 높이고, 일상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설계된 웨어러블 로봇이다. 허리와 다리에 장착하는 하드웨어 구조로, 고관절의 관절 각도와 회전 속도를 실시간 분석한다. IMU 센서를 활용해 착용자의 움직임을 적정한 시간 단위로 측정하고, 사용자의 보행 패턴에 따라 고관절 회전력과 속도를 미세 조절하는 방식이다. 평지 보행이나 가벼운 계단 오르기, 외출 활동을 돕는 데 중점을 두며, 무게는 약 2.5kg대다.

헥사휴먼케어에 따르면, 클레짐은 연내 웰니스 제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현재는 서울·경기 지역 복지시설 및 재활병원에서 노약자 및 편마비 환자 총 26명(남성 10명, 여성 16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수행하고 있다. 테스트 참여자의 평균 연령은 68세이다. 실증은 2023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진행됐으며, 각 대상자는 평균 7회, 회당 약 40분씩 기기를 착용했다.

실증 결과, 10미터 보행 테스트에서는 평균 보행 속도가 약 24% 향상되고, 보행 시간은 약 27% 단축됐다. 보속수(보행 리듬)도 약 7% 증가했으며, 6분 보행 거리 또한 평균 14% 늘어나는 등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관찰됐다.

회사는 함께 수집한 사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 고도화도 병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허리나 허벅지 등에 기기를 밀착시켜 고정하는 부품인 ‘하네스(harness)’ 소재를 통기성과 유연성이 높은 재질로 변경하고, 허리 체결부도 재설계해 착용 부담을 줄였다. 향후 의료기기 인증을 위한 임상 실증도 추진 중이다.

또한 착용 상태나 낙상 가능성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도록 센서 기반 모니터링 기능, 보호자의 원격 확인 기능도 탑재해 가족 간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한 기술적 보완책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병원과 집 사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헥사휴먼케어는 1990년대 말부터 웨어러블 로봇을 연구해 온 국내 1세대 개발 기업으로, 의료·재활, 산업·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을 개발하며 다수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8월 7일 경기 안산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며 기술력을 공식 인정받았으며, 특구펀드를 통한 투자 유치와 함께 ▲기술이전사업화 R&BD, ▲INNODESK0807, ▲지역특화기업 성장 지원사업(사업화 전략 수립, 시험·분석·인증 등) 등 다양한 강소특구 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왔다.

또한 한양대학교 ERICA 산학협력단과 산학연협력단지사업단의 협력 지원을 통해 생활 밀착형 기술 상용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 국내외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헥사휴먼케어가 개발한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 ‘클레짐’ 제품 이미지. /사진 제공=헥사휴먼케어

클레짐은 헥사휴먼케어의 의료 재활 로봇 ‘레실리온(RESILION)’에서 파생된 브랜드로, 노약자의 신체 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 대표는 “노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회복 훈련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불편 해소”라며, “무리한 근력 증강이 아니라 균형 유지와 피로 분산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착용자의 움직임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다음 보행 패턴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은 고관절 회전력과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매끄러운 보조를 제공하며, 반복 실증을 통해 정밀도를 높이는 중이다. 의료기기와 재활 로봇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기술로, 병원과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다.

제도의 공백, 기술 확산의 걸림돌

클레짐의 가격은 약 300만 원대로, 월 10만 원 내외의 구독 모델을 통해 제공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장벽이 존재한다.

현행 복지 용구 제도에는 웨어러블 로봇이 포함돼 있지 않고, 의료기기로 등록하지 않으면 보험·공공 조달과 연계할 수 없다. ‘비의료 웨어러블’이라는 중간 단계 제품군은 제도적으로 공백 상태다.

이에 헥사휴먼케어는 서울과 경기 지역 복지시설 및 의료기관 등 3곳에서 실증을 진행하며, 낙상 방지율·착용 지속 시간 등 정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비의료 웨어러블 로봇’ 품목 신설, 복지 용구 수가 연계 보조금 지원 모델 도입 등을 제안하고 있으며, 일부 정책 논의도 진행 중이다.

기술이 아닌 ‘의도’가 시장을 만든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상용화 이전 제품이라도, 어떤 문제의식을 담고 있고 어떤 삶의 장면을 바꾸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한다면 시장은 반응할 수 있다.

노약자의 보행 약화는 초고령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과제이자, 개인 이동성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다. 클레짐이 그 해법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어떻게 걸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 이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