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는 전 세계 흩어져 살아가는 재외동포 사회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필자는 재외동포 콘텐츠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세계 각국의 동포 사회를 직접 방문하고 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광복 8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재외동포들의 숨겨진 활약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안중근 의거, 혼자가 아니었다

1909년 10월, 쌀쌀한 바람이 부는 하얼빈의 한 여관. 거사를 앞둔 안중근 의사 앞에 앳된 얼굴의 소년이 섰다. 30세의 혁명가 앞에 선 17세의 소년. 바로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재외동포 2세 유동하였다.

안중근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할 때, 현지 언어와 지리에 대한 걱정이 컸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 젊은 유동하의 결의는 안 의사에게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이후 유동하는 러시아어로 된 이토 히로부미의 동선 정보를 빼내고, 러시아 헌병대의 눈을 피하는 길을 안내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눈과 귀가 되어 준 것이다. 마침내 10월 26일, 그의 도움으로 역에 잠입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번 방아쇠를 당겼다. 우리가 아는 '영웅적 개인의 결단'은 실제로는 재외동포의 결정적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얼빈 의거 3일 전 찍은 기념사진(왼쪽부터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출처=국가보훈처

독립의 혈맥을 이은 ‘보이지 않는 손’

17세 재외동포 2세 유동하. 그는 러시아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조국 광복의 염원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일제 강점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자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위험천만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단순한 통역자가 아니었다. 하얼빈 일대의 지리와 러시아 관헌들의 동태를 속속들이 파악하며 안중근에게 현지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 정보원이었다. 의거 당일에는 하얼빈역 주변의 러시아 경비병 배치와 이토의 정확한 동선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그의 정보가 없었다면 역사는 지금과 다른 기록을 남겼을지 모른다.

이러한 재외동포의 독립운동은 유동하만의 일이 아니었다. 만주 곳곳의 잡화상들은 낮에는 일본인 고객을 상대하며 일본군 동향을 파악하고, 밤에는 독립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이중생활을 했다. 도쿄의 한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일본 본토의 기밀 정보를 수집해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연결하는 연락망 역할을 담당했다.

하와이의 땀방울이 독립의 씨앗으로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 하와이 사탕수수밭.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하루 10시간 넘게 고된 노동을 하던 한인들. 이들은 한 달에 3~4달러를 벌어 그중 1달러 이상을 매월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했다. 땡볕에서 번 돈의 3분의 1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친 것이다.

하와이 한인사회가 1920년대까지 모은 독립 자금은 약 300만 달러.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이 자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운영비가 되었고, 만주와 연해주 독립군의 무기 구입비가 되었으며,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활비가 되었다. 일제의 엄격한 통제로 국내에서는 불가능했던 독립자금 마련이 재외동포의 희생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운영 중인 ‘재외동포 자료실’에서 찾은 재외동포 독립운동 관련 서적

나라 없는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외교관들

1919년 파리강화회의. 한국 대표단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한인국민회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인국민회의 안창호와 서재필 등은 미국에서 자금을 모으고 여론을 형성하며 활동을 총력 지원하였고,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은 각국 대표단을 상대로 한국 독립 청원서를 전달하는 등 치열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

이런 재외동포들의 끈질긴 외교 활동이 축적되어 1943년 카이로선언에 "조선의 독립"이 명시될 수 있었다. 나라 없는 민족의 외교관 역할을 자처한 재외동포들이 있었기에 국제사회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와이의 자금, 도쿄의 정보, 상하이의 의거, 파리의 외교. 각기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이 모든 활동은 흩어진 점이 아니었다. 하와이 노동자의 땀이 상하이 의거의 자금이 되고, 도쿄 유학생의 정보가 파리 외교관의 무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보이지 않는 동포들의 거대한 연대, 살아 숨 쉬는 네트워크의 결과였다.

광복 80주년,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우리는 안중근과 윤봉길 같은 위대한 영웅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그들의 뒤에서, 혹은 옆에서 함께 총을 들고, 돈을 보내고, 정보를 전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재외동포들을 함께 호명해야 한다. 그들은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이자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다행히 정부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외동포청은 광복 80주년 맞아 ‘차세대동포 모국 초청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해당 연수는 7월부터 8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70여 개국 2,600여 명의 청소년·청년 동포가 참여할 예정이다.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주관하는 이번 연수에서 참가자들은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또한 외교부는 전 세계 재외공관에서 과거 재외동포의 헌신을 기리는 광복 8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역사는 영웅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의지로 만들어진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조국 광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재외동포들의 숨은 헌신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주요 참고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외동포청, 외교부 광복 80주년 기념사업 자료
재외동포협력센터 재외동포자료실

디지틀조선일보 글로벌미디어실 정세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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