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모임에서 시작한 학술대회, 1400명 규모 발전
글로벌 ‘비전 AI 3강’ 이끈 학술 생태계의 힘
AI 인재, GPU보다 값지다… 인재 유치 나선 기업들

4일부터 3일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KCCV 2025 포스터 전시장 현장. /김동원 기자

질문과 질문의 연속,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KCCV(Korean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 2025의 모습이다.

한국컴퓨터비전학회(KCVS)가 주최하는 KCCV는 2014년 소규모 모임으로 시작한 학술대회다. 컴퓨터비전 분야에 관심 높은 이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컴퓨터비전 분야 세계적 석학인 이경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주도로 처음 시작됐다. 참고로 이 교수는 컴퓨터비전 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인 ‘국제전기전자공학회 패턴분석 및 머신지능(IEEE TPAMI)’의 동양인 최초 편집장이자 250여편 논문 발표, 인용 수가 2만 1000회 이상을 기록한 세계에서 인정받는 연구자다.

올해로 12년이 된 KCCV는 더 이상 소규모 모임이 아니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KCCV 2025’는 무려 14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학술대회로 성장했다. 포스코DX, 루닛, 네이버, 삼성전자, NC AI, 한화비전, 델타엑스(DELTAX), Nexdata, 슈프리마, LG AI연구원, 인이지 등 국내외 굵직한 AI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했다. 일부 기업은 학술대회에 별도 부스를 마련, 학생들과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는 비전 인공지능(AI)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채용 상담도 진행했다.

◇ 비전 AI 3대 강국 이끄는 동력

KCCV는 한국 비전 AI 발전을 이끈 대표 학술대회로 꼽힌다. 비전 AI 분야 선구 연구자들끼리 모여 서로의 연구 현황을 공유하며 선진 연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KCCV에선 CVPR, ECCV, NeurIPS 등 컴퓨터비전 및 AI 분야 최고 수준 국제 학술대회에서 우수한 연구를 발표한 국내 연구자들이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를 통해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한국컴퓨터비전학회장인 안상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공지능연구단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학회에서 발표, 공유한 내용을 토대로 이뤄진 공부 내용이 한국 컴퓨터비전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며 “과거에는 글로벌 메이저 학회에 논문을 내는 것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국내 연구자들이 상당히 많은 양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연구자들의 주요 성과가 많아 올해 KCCV에서 발표하는 논문 후보 수는 무려 400여 편이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포스터 전시장에서 여러 질문을 하고 있다. /김동원 기자

서용덕 서강대 글로벌한국학과 교수는 “한국은 비전 AI 분야에서만큼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라며 “미국은 강력한 하드웨어와 자본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중국은 하드웨어가 부족해도 많은 인력을 토대로 우수한 연구 성과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러한 연구 교류를 바탕으로 선진 연구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학회장을 역임한 박종일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교수도 의견을 같이했다. “비전 AI 분야에서 한국이 3위라고 할 수 있는 지표는 여러 가지고 있는데, 우선 글로벌 주요 학회에서 발표하는 논문이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며 “주요 학회에 참가하는 인원은 논문 발표와 비례하는데 작년 CVPR만 해도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원이 참가했고, 4위 국가부터는 우리 인원의 절반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 비전 AI 학구열, 무더위보다 뜨거웠다

실제로 학술대회 현장은 무더위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기조연설과 구두 발표, 포스터 전시장에선 인파가 가득했다. 마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행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인파보다 많았던 건 질문이었다.

기조연설과 구두세션에선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행사장 복도에 마이크를 설치해 질문이 있는 교수와 학생이 마이크 앞에 나가 질문하는 식이었다. 여기선 혼선이 일었다. 여러 마이크가 있었는데,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 어떤 사람이 먼저 질문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좌장을 맡은 교수가 “먼저 서 계셨던 분이 있기 때문에 그분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엔 “시간이 부족해서 질문은 추후 포스터 전시장에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학구열로 인한 ‘마이크 쟁탈전’이 발생한 것이다.

기조연설과 논문 구두세션에서 질문이 이어지는 모습. /김동원 기자

하지만 포스터 전시장에서의 질문도 쉽지 않았다. 전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취재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포스터 앞에선 관련 연구 소개가 있었고 학생들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은 “글로벌 학회에 소개된 연구에 대해 질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현재 작성하고 있는 논문과 유사한 내용이 있어 관련 질의를 했다”고 말했다. 윤성의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여느 학술대회와는 다르게 CVPR은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이 기간에 이뤄지는 교류가 실제 연구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KCCV 2025 프로그램위원장인 심현정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는 “국내에 AI 비전 관련 훌륭한 연구자 분들이 많아 KCCV 2025에 다채로운 연구 성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며 “한국 컴퓨터비전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 인재 유치 나선 기업들. ‘비전 AI 강국’ 위한 무대 평가

한편에선 채용설명회가 이뤄졌다. AI는 한 명의 훌륭한 인재가 상당한 파급력을 낼 수 있는 산업이다. 뛰어난 인재 1명의 연구 결과가 1000억 이상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일 랭워디 리비에라파트너스 파트너는 “최근 몇 년 사이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일부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 확보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KCCV 2025에 참여한 기업들의 채용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전자, 네이버, 한화비전, SK인텔릭스 부스. /김동원 기자

이번 KCCV는 이러한 인재 유치전을 볼 수 있는 장이었다. 현장에는 삼성전자, 네이버클라우드, NC AI, 포스코DX, SK인텔릭스, 한화비전, 루닛 등 주요 기업이 별도 부스를 마련 채용 관련 상담을 진행했다. 현재 기업에서 진행하는 사업 소개와 함께 채용 관련 상담도 이뤄졌다. 삼성전자 담당자 손에는 채용 설명을 한 학생들의 정보가 빽빽하게 써진 문서가 들려 있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생성형 AI로 인해 언어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이제 에이전트, 피지컬 AI로 가면서 비전 분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면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비전 기술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인재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KCCV의 경우 비전 관련 인재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꾸준히 참여해 사업 소개와 인재 유치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CCV 2025 조직위원장인 박인규 인하대 AI융합연구센터장은 “작은 모임에서 시작한 KCCV는 이제 기업들이 나서서 참여할 정도로 큰 규모의 학술대회로 발전했다”면서 “연구 성과뿐 아니라 실제 AI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양성, 기술 개발 등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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