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환의 시대, 개발 협력을 다시 묻는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KOICA에서 국제개발 컨설팅까지…한국 ODA 30년의 성찰
한국이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지도 어느덧 15년을 넘겼다.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한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위치에까지 올라섰다는 점에서, 이는 국제 협력 역사에 있어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발전을 돕겠다는 책임 의식을 갖고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성과를 자축하기보다, 개발 협력의 본질과 방향을 다시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1991년 코이카(KOICA)가 설립되던 당시, 우리는 “받았던 만큼 이제는 돌려줄 때”라는 사명감 하나로 출발했다. 빈곤, 질병, 교육 격차, 인프라 부족 등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을 마주하며, 한국형 모델을 토대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정부가 주도하고 공공기관이 실행하는 방식이 주류였고, 그것이 곧 국가 이미지 제고이자 외교 전략의 일부로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국제개발 협력의 환경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기후 위기, 팬데믹, 디지털 불평등, 젠더 이슈, 난민과 이주, 지정학적 긴장 등 개발 이슈는 전방위적이며 복잡하다.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기술 이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개발 협력도 이제는 과학기술, 민간 자본, 문화, 정책, 윤리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결을 요구받는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의 종합적인 사회적 기반 인프라 구축과도 같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의 개발 협력 시스템은 정부 중심의 수직 구조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민간 · 학계 · NGO · 지방정부 ·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ODA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히 참여 통로를 여는 것을 넘어, 이들이 실제로 기획과 평가, 집행의 전 과정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국제개발 컨설팅이다. 다자기구나 수원국 정부와 협력하여 정책을 설계하거나 사업을 평가하고 자문하는 영역으로,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에서도 점차 다양한 컨설팅 조직이 등장하고 있으나, 아직은 제도적 기반이 약하고, 공공 조달 방식이나 평가 시스템도 미흡하다. 개발 컨설팅은 단지 외주업체의 하청이 아니라, 파트너로서의 전문가적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해야 하는 분야다. 이 역할은 견고하면서도 유연해야 하며, 마치 금속처럼 단단하지만 사회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합리성과 내구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개발 협력은 결국 ‘사람’을 매개로 한 변화의 예술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장의 주체들과 함께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결과를 함께 나누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상대를 동등한 파트너로 존중하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정하는 철학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도 지속가능한 발전은 요원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현대적인 관리 체계나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개발 협력의 뿌리 깊은 몽석(夢石), 즉 ‘지속 가능한 꿈을 품은 돌처럼 흔들리지 않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공여국이라는 지위에 안주하기보다, 왜 우리가 이 길을 선택했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되돌아보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성숙이다.
ODA의 양적 확대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개발 파트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철학과 전략, 제도와 생태계 전반을 점검할 때다.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새로운 30년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책임 있는 공여국으로서, 그리고 지구촌의 개발 협력 리더로서, 우리는 지금 그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글
장현식 | 국제개발컨설팅협회 부회장,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략기획이사
이종현 | AVPN 한국대표부 총괄대표, 국제개발컨설팅협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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