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 ‘타이중’으로
대만 타이중은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과 전통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백 년 된 바로크 저택에서 치파오를 입고 시간 여행을 떠나고, 140년 역사의 하카 건축물에서 장인정신을 느끼며, 미로 같은 옛 골목길을 걸어보자.
폐철도를 개조한 자전거길에서는 전기자전거로 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언덕 위 거대한 대불 앞에서는 도시 전체가 금빛으로 물드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하루의 마무리는 따뜻한 족욕과 함께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타이중에서 만나는 이 모든 순간들이 당신만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백 년 된 저택 '주쿠이주'에서 인생 사진을 찍다
타이중에서 현지 분위기를 듬뿍 느끼며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향한 곳은 '주쿠이주(聚奎居)'다. 1920년경 지역 부호가 세운 이 저택은 바로크 양식과 중국 전통 삼합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로, 근 백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타이중시 지정 고적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 정면이 시선을 압도한다.
주쿠이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치파오 대여'다. 입장료 100대만달러(약 4,200원)에 포함된 기본 관람도 좋지만, 이왕 온 김에 제대로 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치파오 체험은 필수다.
의상실에는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치파오가 준비되어 있다. 고전적인 빨간색부터 우아한 파란색, 화려한 자수가 놓인 것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이즈도 다양해 체형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있고, 현장 직원이 친절하게 핏을 봐주며 도움을 준다.
치파오를 입고 거울을 보는 순간, 마치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아한 곡선미를 살린 치파오의 실루엣이 주쿠이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주쿠이주는 그야말로 포토존의 천국이다. 바로크 양식의 아치형 회랑,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기둥, 중앙의 넓은 중정까지 어느 곳에서 셔터를 눌러도 그림 같은 사진이 나온다. 특히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압권이었다. 치파오를 입고 난간에 기대어 포즈를 취하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드라마틱한 사진이 완성되었다. 중정의 분수대 앞에서 찍은 사진도 동화 속 공주가 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치파오 체험 후에는 '향수 만들기' 체험에도 참여했다. 주쿠이주의 '聚講堂'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 체험은 대만 특유의 향료들로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특별한 경험이다.
강사는 "여러분이 만드는 이 향수는 대만만의 특징을 담고 있다"며 오롱차, 편백나무, 감귤류, 허브, 한약재 등 대만 고유의 향료들을 소개해주었다. 특히 편백나무 향은 모기 퇴치 효과도 있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향수 제작 과정은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20방울의 기본 향을 선택하고, 6방울의 보조 향(허브, 한약재, 원목 향 중 선택), 마지막으로 14방울의 추가 향을 더해 나만의 조합을 완성한다. 알코올 베이스로 희석한 후 2주간 숙성시키면 더욱 깊은 향이 난다고 한다.
완성된 향수를 뿌려보니 처음엔 원액의 강한 냄새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은하고 독특한 향이 퍼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나만의 향수"라는 강사의 말처럼,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향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주쿠이주 방문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평일 10:30-17:00, 주말 10:00-18:00에 개방되며,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치파오 체험은 현장에서 신청할 수 있지만, 인기가 많아 미리 문의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식 사이트에서 직접 신청할 수도 있지만 클룩 등의 OTA를 통해 입장권과 의상 체험을 패키지로 예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40년 역사가 숨 쉬는 정원 '청메이 문화공원(成美文化園)'
타이중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청메이 문화공원'은 10헥타르 규모의 거대한 문화공원으로,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좌우로 펼쳐진 화단은 마치 자연이 그려낸 수채화 같다.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실제로 이곳에서는 웨딩촬영,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 공원에서 꼭 봐야 할 건물은 1885년부터 시작된 역사적 건물인 웨이청메이 홀(Wei Chengmei Hall, 成美公堂)이다. 웨이청메이 홀은 전형적인 하카(客家) 건축 양식으로 지었으며, 푸젠 전통 건축과 하카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이다. 하카족 특유의 실용성과 견고함을 추구하는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대만이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재해석된 독창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건물의 구조는 전통적인 삼합원(三合院) 형태(ㄷ자 형태의 건물 배치)를 기본으로 하되, 하카족의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반영된 공동체 중심의 공간 배치가 특징적이다.
중앙의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소통을 중시하는 하카 문화의 정신을 공간으로 구현한 것이다.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세월의 흔적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벽돌 하나하나, 기둥의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장인정신과 당시 사람들의 삶이 느껴졌다. 특히 하카 건축 특유의 견고한 벽돌 구조는 1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건물의 튼튼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청메이 문화공원에 방문할 때에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아침 일찍 가면 더욱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 '루강' 옛거리 걷기
루강 옛거리(鹿港老街)는 대만 장화현 루강진에 위치한 역사적인 거리로, 좁은 골목길과 전통 가옥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곳이다. 아스팔트 도로가 붉은 벽돌길로 바뀌고, 2~3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루강 거리의 가장 큰 매력은 미로 같은 골목길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볼거리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골목을 걸으면 끊임없이 코를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만나게 된다. 골목 곳곳에 작은 노점들과 전통 음식점들이 숨어있다. 그 중에서 '치구관(齊古館)'이라는 작은 빙수 가게에 들어갔다. 전통적인 간판과 함께 운치 있는 외관을 가진 이 가게는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더위에 지친 상황에서 마신 시원한 빙수는 정말 꿀맛이었다. 가게 내부도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마치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전기자전거 타고 편하게 즐기는 '호우펑 철마도'
타이중 호우펑 자전거길은 폐선된 옛 철도길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새롭게 단장한 코스다. 총 4.5km로 경사가 완만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에 완벽한 코스다.
평소 자전거 타는 걸 즐기지만 이번에는 일반 자전거 대신 전기 자전거를 선택했다. 페달을 살짝 밟기만 해도 모터가 작동하며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호우펑 철마도의 하이라이트는 9호 터널이다. 1908년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9호 터널은 길이 1,269m로 터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1.2km의 터널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전기자전거 덕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화량강교(花梁鋼橋)가 모습을 드러낸다. 1908년 완공된 이 다리는 거센 강물을 가로지르는 철교로 총 길이는 382m다. 교량 위에서 전기 자전거를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 역시 전기자전거와 함께 인증샷을 남겼다.
무료입장으로 가볍게 둘러볼 만한 곳 '국가가극원'
타이중 시내에서 차로 여러 장소를 이동할 때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건물이 타이중 국가가극원이다.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설계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짓기 어려운 건물'이라는 별명답게, 어디에도 직선이 없는 신기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입장료가 무료라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도보로 산책하듯 건물을 가볍게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다.
1층은 거대한 동굴 같은 로비와 현지 작가들의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샵이 있다. 2~3층은 곡선형 복도를 따라 걸으며 건물 구조를 감상할 수 있다. 창밖 풍경도 건물의 독특한 구조 덕분에 액자 속 그림 같다. 5층은 카페와 갤러리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곡선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국가가극원의 6층 공중정원에서는 탁 트인 타이중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팔괘산 대불'
해발 74미터의 언덕 위에 앉은 팔괘산 대불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검은 불상이 금색 연화좌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완공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이 불상은 지금도 대만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힌다.
대불 정면 아래쪽에 위치한 구룡광장은 타이중에서도 최고의 전망 포인트로 꼽힌다. 이곳에 서면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구룡광장의 진짜 매력은 해질 무렵에 드러난다. 태양이 서서히 지평선으로 내려앉으면서 시내의 건물들이 금색 빛에 물든다. 석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야경이 시작된다. 이러한 광경이 워낙 아름다워 '괘산석조(卦山夕照)'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도 이곳이 주목받고 있다.
최고의 야경을 즐기며 족욕할 수 있는 '부엉이광장'
팔괘산 대불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함께 들르기 좋은 곳으로는 '부엉이광장'이라는 곳이 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발의 피로를 풀기 위해 미리 계획해둔 족욕 힐링 코스였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자 시내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부엉이광장의 족욕조가 대부분 야경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족욕을 즐기며 동시에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 1열석'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물의 온도는 개인이 조절할 수 있다.
족욕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몸 전체가 나른해졌고, 시원한 저녁바람이 불어와 더욱 상쾌했다. 멀리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하루의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여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