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P 대신 병 포장?…제약업계, 친환경 포장 전환 ‘제한적’
기후 위기로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약업계도 포장재의 친환경 전환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재활용이 어려운 낱개 포장(PTP, Press Through Package) 대신 병 포장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산업 전반의 흐름은 제한적이며, 아직 점진적인 변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다.
PTP 포장의 한계…재활용 어려운 구조
현재 대부분의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에는 낱개 포장(PTP)이 적용된다.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결합한 이 포장은 약의 변질을 방지하고 복용 편의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보관 안정성 또한 높아 병원 조제, 약국 판매, 수출 등 다양한 유통 환경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하지만 PTP는 서로 다른 재질을 결합해 분리배출이 어렵고, 재활용률도 낮다는 점에서 환경적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친환경성과 생산 효율성을 고려해 병 포장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대용량 제품 중심으로 병 포장 확대…그러나 제한적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알피바이오는 최근 병 포장 전용 설비를 도입해 대용량 제품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일반의약품 브랜드 ‘이지엔6’ 시리즈 중 일부 품목은 알피바이오에서 병 포장 형태로 생산된다. 유한양행 역시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의약품에 병 포장을 적용해 왔으며, 관련 설비를 갖춘 공장을 중심으로 품목 확대를 검토 중이다.
병 포장은 단일 재질로 제작돼 재활용이 비교적 수월하고, 대량 생산 시 공정 효율성이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흐름에 부응하는 방안으로도 주목받는다. 또한 온라인 유통 채널이 확대되면서 장기 보관에 유리한 대용량 포장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부 대기업과 위탁생산 전문기업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업계 전체의 표준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1년 인천시약사회가 국내 주요 제약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병 포장을 적용한 품목 비율은 평균 8.4%에 불과했다. 이후 일부 제약사가 포장 전환을 확대했지만, 시장 전체에서 ‘가속화’ 단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단점도 존재…‘선택적 적용’이 현실적 대안
병 포장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봉 후 산화나 습기 유입 위험이 있고, 복용 단위를 직접 덜어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휴대가 불편하다”라거나 “보관 중 내용물 변질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포장 단가, 공급망 효율, 약국 내 진열 방식 등도 PTP와 병 포장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실제로 일부 제약사는 병 포장의 수요와 공급망 효율성, 소비자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혼합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을 고려한 포장 전환 논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제품 특성과 유통 구조를 고려할 때 전면적인 전환보다는 선택적 적용이 더욱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포장재 전환, ESG 시대의 ‘과제’
포장재 친환경 전환은 제약업계의 ESG 과제 중 하나로, 단순히 PTP를 병 포장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 자원 순환을 고려한 전체 포장 전략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업체는 생분해성 필름, 종이 포장재 도입 등 다양한 방식의 친환경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유인책이나 기준 마련이 업계 전반의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장 방식의 변화는 아직 제한적이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 제약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무분별한 전환이 아니라, 효과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