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성균관대 인공지능대학원장.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인공지능(AI) 투자 열기로 뜨겁다. 최근 중국의 딥시크(DeepSeek) 같은 사례는 이 열기를 한층 더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식어가던 열기를 다시 불태우기 위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왜 세계적 AI 강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부족하다. 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는 인공지능대학원 사업을 이끌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AI 인재가 부족한가?” 이 질문은 간단하고 표면적인 현상에 대한 것 같으나, 사실은 AI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AI 인재는 언제나 부족하다. 첫째 이유는 AI가 현재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성장은 새로운 프런티어의 개척을 의미하고, 그 안에서는 언제나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둘째, AI는 다른 공학 분야와 달리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기보다는 인간의 상상을 구현하는 영역이다.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 때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AI에서는 그 한계가 곧 인간의 상상력과 노력의 범위로 결정된다. 그래서 AI에서의 인재는 단순한 기능 숙련자가 아니라,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챗GPT는 전에 없던 한계를 넘어선 프런티어 개척의 산물이며, 딥시크는 시간과 비용 효율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도전의 결과물이다. 이런 혁신은 기존 방법의 ‘복사-붙여넣기’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AI의 성장은 창의와 도전에서 나오며,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바로 그 프런티어를 개척할 사람들이다.

그러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나라 교육은 이런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가? 한국의 AI 인재 양성 시스템은 정부 정책 덕분에 외형적으로는 잘 구축돼 있다. AI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 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논문의 양은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AI 인재 부족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교육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육의 질, 특히 도전과 창의의 환경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AI 인재 양성 시스템은 그동안 다양한 정부 정책을 통하여 외형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측정 가능한 성과에 치중했다. 이제는 인재 양성 시스템을 한 번 더 개선해 인재의 양적 양성보다 인재의 질적 양성으로 변환해야 한다. 도전적이고 창의적 인재는 교육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이 되도록 교육할 수는 있지만, 도전과 창의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인가. 또한 도전과 창의를 측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을 측정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환경, 도전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실패를 허용하는 재미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들에게는 ‘좋은 교육’보다 ‘재미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들에게 스스로 배우고 탐색하고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놀이터’다. 자유롭게 탐색하며 창의적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 그것이 바로 최고의 인재들이 성장하는 토양이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끝과 미지의 시작 사이에서 활동할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재 양성 시스템은 그들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인재들의 질적 성장에 맞춰 변화돼야 한다.

하지만 인재 양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인재 양성의 진짜 목적은 AI 산업과 기업의 성장에 있기 때문이다. 인재 교육 과정을 하나의 파이프라인이라고 한다면, 파이프라인의 입구에 인재를 넣는 ‘push’ 압력이 있어야 하고, 파이프라인의 출구에서는 인재를 끌어당기는 ‘pull’의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공지능대학원 같은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입구의 ‘push’ 압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 왔다. 장학금과 지원으로 많은 인재를 모았고, 그들은 양성 파이프라인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 인재들이 파이프라인의 출구에서 증발하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의 파이프라인을 통과한 인재가 실제 현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파이프라인의 출구에서 나오는 그들을 끌어당겨 흡수하는 ‘pull’의 흡인력이 약하다. 우리 기업의 pull 흡인력이 약하면, 우리가 양성한 인재들이 출구에서 다른 곳으로 누출될 수밖에 없다. 요즘 AI 인재의 해외 유출이 이슈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졸업생이 가고 싶어 하는 AI 기업이 충분히 있는가?

바로 양성된 인재들을 흡인해 줄, 양성된 인재들이 가고 싶어 하는 바로 그곳이 부족하다. 졸업생이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AI 기업이 충분하지 않다. 물론 기업도 수익을 생각해야 한다. AI에는 엄청난 투자금이 들어가고 수익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옛날 정주영 회장은 뭐가 있어서 배를 만들었고, 이병철 회장은 뭐를 갖고 있어서 반도체를 만들었을까? 지금 우리의 AI가 그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업이 혁신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해야 비로소 인재도 남는다.

양성된 인재가 현장으로 연결되어야, 그들로 인하여 현장에서 AI의 성장이 오게 되고, 이것은 다시 더 많은 인재의 수요를 발생시켜 더 많은 AI 인재 양성과 더 큰 AI의 성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정부는 지금까지 AI 산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고, 인공지능대학원 등 다양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성과를 산출해 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국은 AI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금까지의 접근은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집행했는지, 몇 명을 교육했는지 같은 손쉽게 측정 가능한 숫자로 성과를 설명하려는 데 지나치게 치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AI는 단순히 양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AI의 본질은 창의와 도전이라는 질적인 문제에 있고, 따라서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고,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를 창의적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단지 투자 금액이나 인재 수를 늘리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학교와 기업이 과감하게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는 것, 그것이 정부의 핵심 역할이다. 정부의 연구개발(R&D)은 단순히 단기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AI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담대한 목표 아래 설계돼야 한다. 또한 기업의 새로운 시도를 막는 법적·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면 이런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규제를 혁신하고, 불필요한 제약을 줄이며, 실패에 관대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정부도 먼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가지고 AI 산업과 인재 양성을 바라봐야 한다.

AI의 본질은 창의와 도전이다. 이제 학교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과감한 연구를 해야 하고, 기업은 인재들이 가슴 뛰게 도전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단지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혁신과 도전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제는 더 세련되고, 뾰족하고, 대담한 전략이 필요하다. AI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프로젝트들이 필요하다. 학교, 기업, 정부가 함께 창의와 도전의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우리나라 AI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의 중심은 인간의 창의적 도전이며, 그것이야말로 AI를 움직이는 진짜 엔진이다.



이지형 교수는 성균관대 인공지능대학원 책임교수이며, Open-ended AI Alignment 연구센터(ITRC) 센터장과 컨버전스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AI, 기계학습, 딥러닝, 자연어처리, 컴퓨터비전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AI 분야 최우수 국제학회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성균가족상, 변증남학술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인공지능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인공지능학회 회장과 인공지능대학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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