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덕 S2W 대표이사. 서상덕 S2W 대표이사.

인공지능(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혁신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중심엔 데이터가 특정 조직 안에서 배타적으로 저장되고 관리되며 다른 부서 및 시스템과는 연결되지 않는 ‘데이터 사일로(Data Silo)’가 자리한다. 이는 제조, 정보기술(IT), 금융, 유통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며, 부문별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일수록 오히려 심각한 경우도 많다.

데이터는 AI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양분이다. 그러나 신체가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지 못할 경우 정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듯, AI 역시 제한적인 데이터 환경에서는 ‘의사결정 고도화’와 ‘운영 효율성 강화’라는 본래의 취지를 충실하게 구현하기 어렵다. 트렌드를 쫓는 데 급급해 데이터 사일로를 선결하지 않고 기술 도입을 서두른다면, 결국은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될 공산이 크다. ‘비즈니스 목표 달성’과 ‘기술 구현’ 간 우선순위가 역전된 본말전도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내 전반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관통하는 통합 정보 플랫폼을 구축한 국내 철강 대기업의 사례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과거 이 기업은 창업 이래 70여 년 동안 축적된 비즈니스 데이터의 방대성 및 사업 확장 과정에서 비롯된 데이터 사일로와 비효율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스템 변화를 추진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필자가 속한 기업의 산업용 생성형 AI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내 지식정보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서비스는 설비, 엔지니어링, 품질, 마케팅 등 기업 내 다양한 도메인의 데이터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며, 제조업계 AI 혁신의 선도 사례로 호평받기도 했다.

최근엔 직무를 넘어 산업 간 데이터 공유와 결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모빌리티 기업과 보험사가 주행 데이터를 공유해 고객의 운전 습관에 기반한 보험 상품을 개발하거나, 통신사와 금융사가 각 기업의 데이터를 상호 결합해 신용 평가 모형을 개선하는 식이다. 이처럼 이종 산업 간 데이터 융합의 결과물은 기존의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것을 넘어,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차별화된 수익 모델을 개발하는 밑거름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데이터 사일로는 기술적 한계 외에도 조직 간 이기주의와 이해관계 상충, 공유·협력 문화의 결여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결과이기 때문에 IT 시스템과 인프라를 고도화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도메인 간 데이터 공유를 저해하는 내외부 요인을 정밀하게 진단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부서 간 협업 장려 정책을 마련하거나 데이터 공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조직문화적 접근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데이터가 조직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연결되고 융합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데이터 사일로를 타파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과 문화적 토대를 마련할 때, 비로소 AI가 지닌 잠재력이 온전히 발현되며 진정한 비즈니스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상덕 대표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티맥스소프트에서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그는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전략 및 기술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쌓았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롯데미래전략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이노베이션랩 총괄을 맡아 기업의 미래 전략 수립에 이바지했다. 이후 디자이어랩 공동대표를 거쳐 2018년부터 현재까지 S2W의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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