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연출한 조영명 감독 / 사진 : 영화사테이크

* 해당 인터뷰에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동명의 대만 영화와 소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고, 선명한 인상을 남겨둔 작품이기도 하다. 선명했던 인상은 새로움을 전하기에 어려움일 수도, 부담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영명 감독은 이를 자신만의 색으로 다시 빚어냈다. 원작이 가지고 있던 '첫사랑'의 설렘은 가져가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의 '그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채워갔다.

조영명 감독은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예능 PD까지 다양한 경험을 자신의 첫 작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 담아냈다. 진우(진영)와 선아(다현)의 다가서기 머뭇거리는 첫사랑은 10대부터 시작된 청춘 속에 촘촘히 심어졌다. 그 시절 자신의 추억, 자신이 들어왔던 다양한 감정의 음악, 예능PD를 쌓아온 인연, 자신이 고민했던 꿈들은 그의 첫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중심축이 되었고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연출한 조영명 감독 / 사진 : 영화사테이크

Q. 첫 장편 연출작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리메이크를 맡게 됐다. 결정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만은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일단 원작이 소녀에게 집중한, 로맨스가 강한 작품이다. 저는 '그 시절, 우리'라는 앞의 두 단어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청춘 성장 드라마의 장르적인 지점을 더 많이 넣어서 각색했다. 처음 리메이크 제안을 받고, 정말 열어놓고 생각했다.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로맨스 장르까지 그대로 가져와야 할까?'라고까지 열어놨다. 과거 좋아했던 작품이지만, 제안받은 후 원작을 다시 봤다. 다시 보니 로맨스적인 서사보다 '이 친구가 어른이 되어가네'라는 지점이 많이 보이더라. 서툴렀던 모습에서 성장하는 느낌이 컸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꿈', '친구', '첫사랑'이라는 세 키워드가 저의 '그 시절'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래서 자전적으로 제가 풀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Q. 자전적으로 풀어냈다는 말씀 속에서 감독님의 '그 시절'이 궁금해진다. 선아의 모습에 가까우셨을 것 같다. 어떻게 감독이라는 꿈을 가졌을지 궁금했다.

"저는 엄청 잘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었고, 조용히 공부하던 사람이다. 선아 캐릭터에 투영됐을 수도 있는 게 빨리 '애 어른'이 되었다. 친구들이 보고 '너 학창 시절 공부하던 모습'이라고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웃음) 연출은 항상 하고 싶었다. 극 연출을 하고 싶어서 대학교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을 하고, 연출하며 글을 쓰다가, 휘발되는 극에 매체 연출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로 진학하게 됐다. 예능 PD로 일했던 것까지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 근방에서 서성였던 것 같다. 영화는 저에게 너무 우상 같은 존재였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 사진 : 영화사테이크

Q. 진우(진영)과 선아(다현)의 학창 시절이 우당탕탕한 느낌이었다. '변태완' 등 별명과 찰떡인 친구들의 캐스팅도 인상 깊었다.

"친구들은 진우와 선아의 주변을 계속 채워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더 많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생각할 때, '왜 친해졌지?'라고 생각하면 모르지 않겠나. 저희 작품에서도 앙상블로 함께 할 때 재미있어 보이는 합이 필요했다. 대사나, 친구들 각자가 가진 목적성을, 레벨을 줘서 시나리오를 썼다. 저희 작품에 저를 포함해서 신인이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저는 이 친구들이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디션 영상을 거의 2천 개 정도를 다 본 것 같다. 밤새워서 모든 영상을 봤다. 자유연기를 하면, 그 앞뒤로 잠깐씩 인물 감독님과 이야기한다. 그걸 계속 보면서 실제 성격과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느낌을 고려해 캐스팅하게 됐다."

Q. 제목은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지만, 진우(진영)가 화자로 등장하지 않나. '소녀'인 선아의 목표점이 궁금하다.

"선아가 전사가 정말 많다. 각색된 버전 중에는 선아의 모든 전사를 밀어 넣은 버전도 있다. 그런데 진우의 시점으로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엔딩에 직업을 가져가지 않나. 라멘가게 사장이 되기도 하고, 원했던 아이돌 댄스 근처에서 업을 찾고. 그런데 선아는 직업이 나오지 않는다. 제가 생각할 때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한쪽은 꿈을 쫓으며 수익에 대한 욕심을 좀 내려놓는다. 다른 쪽은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행복을 얻는다. 어느 쪽이 옳다는 건 아니다. 저는 선아는 삶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친구로 생각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 사진 : 영화사테이크

Q. 예능 PD로 일하시는 동안 마주하게 되었던 진영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과 다현의 모범생적인 면을 꺼내 진우와 선아로 캐스팅하게 됐다. 함께 작업을 한 이후,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없는지 궁금하다.

"일단 다현은 정말 열심히 한다. 만약 우리가 '3을 해야 해'라고 하면, 13을 가져와서 이것저것 해볼 수 있게 준비한다. 제가 예능PD를 할 당시에 '음악방송'에서 보면, 다현은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그 말에 '딱딱' 맞춰 다 준비해 온다. 항상 준비되어 있다. 실제로 저희 현장에서 그랬다. 질문도 참 많이 했다. 일찍 현장에 와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하다가 틈이 나면 늘 질문했다. 너무 열심히 임했다. 항상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해 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진영 역시 열심히 해주셨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딱 현장에서 그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를 확 캡처해서 가지고 간다'라는 느낌이 엄청나게 뛰어나다. 저 사람이 저 그림 속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바꿔놓는다. 예를 들어 촬영 장소가 교실이었다가, 복도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면, 복도에서 벌어지는 연기로 모든 것이 바뀐다. 현장에 먼저 와서 현장을 둘러본다. 그때 분위기와 다른 배우들의 분위기, 그리고 날씨와 기분을 순간에 가져가는 그런 센스가 남다르다. 제가 두 배우분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저도 생각하지 못한 옵션을 많이 준비해서 가져와 주셨고, 현장에서 많이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 사진 : 영화사테이크

Q.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속에는 진영, 다현의 빛나는 모습들이 많이 담겨있다. 편집하면서 수없이 그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셨을 텐데, 가장 두 사람이 빛났던 장면을 꼽아보면 어떤 장면일까.

"두 가지 장면이 생각난다. 진우와 선아가 기마자세로 벌설 때, 진우가 옆에 있는 선아를 쓱 본다. 그 눈빛이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데, 정말 순수하게 소녀에게 갑자기 홀린 듯한 소녀의 눈빛이었다. 그런데 선아를 좋아하게 됐는지, 진우는 모르는 거다. 뒤에 창을 열어놓아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의 진영이 정말 진우스러웠다. 그리고 선아는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진우와 같이 있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선아의 컬러는 화이트였다. 그 버스정류장 하얀 조명 아래 선아가 있었고, 진우가 계속 붉은 등 속으로 선아를 꺼낸다. 그렇게 선아가 주황빛에서 붉은빛으로 같이 물들어 가면서 처음으로 해맑게 웃으며 신이 난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물을 손에 받아서 진우를 바라보는데 그때 선아의 순수함이 비친다. 그리고 선아의 그 모습을 보는 진우가 깨닫는 것 같다. '나, 얘 진짜 좋아하는구나!' 하고."

Q. 장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포장마차에서 진우가 낙지로 뺨을 맞는 장면도 웃음 포인트였다.

"태완이랑 진우가 포장마차에 있고, 버즈의 곡 '가시'가 흐른다. 제 세대에서 이별하면 부르는 곡이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의 마음에 걸릴 수 있는 곡이 필요했다. '가시'의 가사에 '가시가 되어 박히는' 그런 부분이 있다. 그런 가사의 포인트를 가져가려고 했다. 그래서 성게에 찔리고, '끈적끈적하게 떨어질 수 없는 낙지'가 오브제로 등장했다. 가사는 너무 절절한데, 친구의 슬픈 마음을 코미디로 승화시켜 짧게 넘겨보자고 생각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연출한 조영명 감독 / 사진 : 영화사테이크

Q. 어긋난 진우와 선아가 서로의 '그 시절' 마음을 알게 되는 건, 군대에서 전화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있을까.

"대면해서 텍스트로 말하는 것,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만 마음을 전하는 것. 이렇게 세 개의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했다. 그 둘의 통화가 '3분' 정도라는 시간제한을 받고 시작되지 않나.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마주 볼 수는 없지만 같은 달을 바라보며 통화를 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있다. 그 정도로 둘의 이어짐을 표현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을 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나. 그래서 '그 시절 내가 좋아'라는 말은 베터리가 없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았지만, 관객에게 주고 싶은 말로 남겨줬다."

Q.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상대를 향한 수많은 'IF 문(만약~ 그랬다면)'을 써 내려가기 마련이지 않나. 그 결정판 같은, 어떻게 보면 '라라랜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엔딩 속 몽타주 장면이 무작위로 들어간 것 같지만 흐름을 만드는데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초반에는 진우가 추억을 떠올리는 느낌으로 장면들이 이어지면, 과거 상기의 느낌을 준다. 그러다 감정이 조금 올라온 중반부부터 선아도 진우를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한복을 입은 수업에서 진우가 선아를 보고 '예쁘네' 정도 생각했다면, 선아가 진우를 몰래 훔쳐보는 모습이 보인다. 또 창문을 함께 닦거나 하는 장면은 선아가 진우를 마음에 담은 그의 마음이 유일하게 비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 판타지로 넘어가도록 구성을 짜놓았는데 잘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보시고 '짠하다'라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다. 편집하면서 최대치의 감정을 드리고자, 순서를 정말 많이 바꿔봤다."

Q. 늘 이야기의 주변에서 맴돌다가, 이제 장편 영화, 첫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어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을까.

"제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제가 지금 30대인데, 30대 조영명이라는 사람이 진실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40대의 또 다른 제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다. '이런 게 하고 싶다'기보다, 잘 살아가면서, 주변을 잘 둘러보며 진실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려고 한다. 지금의 저에게 그런 소재가 '꿈과 성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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