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현주 역을 맡은 배우 박성훈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제가 03학번이거든요. '오징어 게임' 촬영 현장 슬레이트에 2023년 10월 며칠이라고 쓰여 있던 걸 보고, 20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세어보니, 완전히 조·단역이었던 시절부터 다 합쳐서 세어보니 50편 정도의 작품에 출연했더라고요. 50번째 작품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고, '현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 박성훈이 말했다. 그의 인터뷰 현장은 밝지만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 무거운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일본 성인 비디오 표지를 업로드하고 바로 삭제하게 된 것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답했다.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저는 따끔하게 질타해 주셔도, 저희 작품은 따뜻하게 봐주시길 하는 마음"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극 무대부터 매체 연기까지 활동을 이어온 그의 말이었다. 50번째 작품에서 그는 온전한 여성의 몸을 갖기 위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 '현주' 역을 맡았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현주 역이 공개되었을 때, 굉장히 고운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아직도 대중에게 '전재준'('더 글로리' 속 박성훈의 캐릭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 않나. 황동혁 감독님께 캐스팅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 바 있을까.

"제가 예전에 촬영한 '희수'라는 작품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주'를 떠올리셨다고 하셨다. '희수'에서는 평범한 가장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어떻게 '현주'를 떠올리셨는지 의아했다. 제가 사실 숨기고 살아가지만, 제 안에 많은 여성성이 있다. 그걸 감독님께서 꿰뚫어 보신 느낌이 있다. 놀랍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감독님께서는 실제로 트랜스젠더 배우분과 미팅도 해보셨는데, 적임자를 찾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저랑 미팅하게 되셨던 것 같다.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에 대해 준비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Q. 현주의 외적인 모습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어갔나.

"황동혁 감독님, 분장 팀장님과 셋이 먼저 상의를 하고 레퍼런스를 찾아봤다. 그리고 분장 테스트를 하며 조금씩 다듬어 갔다. 제 기억으로 황동혁 감독님은 처음에 좀 더 긴 머리를 원하셨고, 분장 팀장님께서는 짧은 머리를 원하셨다. 그 부분에서는 분장 팀장님의 의견 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것 같다. 제가 낸 의견은 앞머리가 이렇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에 손톱 색깔이나, 액세서리는 거의 감독님의 의견에 따라서 설정이 된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현주는 '오징어 게임2' 제작발표회에서 황동혁 감독이 예상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그 내면을 어떻게 만들어갔을지 궁금하다.

"현주는 강인함도 있지만, 참가자 중 드물게 이타적이고, 배려심 있고, 통솔력 있고, 용맹한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마냥 그렇지만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목숨을 걸고 게임에 임하며 원하지 않는 살생도 범하게 되는 인물 아닌가. 또, 총격전을 펼칠 때도, 거침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내재되어 있는 감정의 레이어들이 층층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주의 전사는 게임을 계속할지 멈출지를 묻는 'O/X'에서 계속한다는 선택을 한 이후 금자(강애심)에게 설명하는 장면에 모든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 독백을 바탕으로 현주의 전사를 상상해 나갔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황동혁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고 고급스러운 디렉션을 주셨다. 원래 있던 대사에 '엄마가 많이 우셨어요'라는 대사를 추가하시면서, 처음 현주의 성향을 알게 되었을 때가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면 좋겠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울컥하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장면 찍을 때 감정이 감독님의 말씀처럼 흘러갔다. 배우로서 특별한 순간이었다."

Q. 영미(김시은)와의 관계성은 현주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영미와의 관계, 영미의 결말이 현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했나.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감사하게도 거의 순차적으로 촬영했다. 자연스럽게 김시은과 밥도 같이 먹고, 대기시간도 긴 편이라 대화도 나누며 실제로도 많이 가까워지고 유대가 생겼다. 장면별로 저희끼리 눈을 한 번 더 맞출까, 팔짱을 한 번 껴볼까, 손을 잡아볼까, 이런 걸 상의하며 영미와 현주의 유대감이 조금씩 쌓이는 것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현주에게 영미는 그 시간보다 훨씬 두툼한 애정이 생긴 것 같다. 특히 현주의 마음을 가장 울린 대사인 '언니도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해주지 않나.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현주는 '영미가 나를 마음속 깊이 이해해 주고 있구나'라는 것을, 한마디를 통해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영미랑은 눈만 봐도 교감이 쌓여간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현주 역을 맡은 배우 박성훈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현주는 게임을 계속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프론트맨을 향해 가는 기훈(이정재)의 총격전에 합류하게 된다. 어떤 이유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현주가 총격전에 가담하게 된 건, 기훈의 신념이나 의지에 조금 동의를 하게 된 것 같다. 지금 여기에 오늘 남아있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이 게임이 반복되면 정말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게 되지 않나.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기훈의 신념에 동의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Q. 현주 역을 맡은 배우로, 그리고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시청자로, 각각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

"현주로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언니도 너무 예뻐요'라고 영미가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다. 시청자로서는 3부 엔딩에서 001번인 오영일이 등장해 버튼을 누르고,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끝날 때였다. 그때가 좀 짜릿했던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현주 역을 맡은 배우 박성훈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Q. '이름을 잃어버린 배우'의 대표주자다. '더 글로리'가 공개된 이후 오랜 시간 '전재준'으로 불리다가, '오징어 게임' 시즌2 속 캐릭터가 공개된 후 '전재순'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좋지만, 내 이름을 더 많이 알리고 싶은 양가적인 욕심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전혀 없다. 물론 '제 이름도 잘 알려지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은 있다. 예전에는 저를 설명하려면 '그 작품의 누구'라고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전재준'이라는 세 글자로 제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전재순'이라는 반응도 재미있게 봤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또 '현주 언니, 현주 누나'라고 불러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것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배우로서 역할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Q. 과거 영화 '곤지암' 개봉 당시 공포물을 무서워한다고 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 소극적인 편이라고 하면서 '전재준'이라는 희대의 악역을 각인시켰다. 자신에게 없는 면을 연기할 때, 어떻게 준비하는지 또 그 과정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하다.

"제가 대학로에서 성소수자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을 때, 주변에 실제로 성소수자도 있음에도 사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래서 제 그릇이 너무 작다고 느껴졌다. 그때 만난 작품이 '두결한장'(2014)이었다. 저의 사고가 180도 뒤집혔고, 저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앞으로 또 이런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또 제가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라, 공포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곤지암'을 촬영한 이후, 귀신을 무서워하거나 이런 점은 많이 극복이 된 것 같다."

Q. '오징어 게임'이 자신의 50번째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작품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촬영 현장에서 슬레이트를 연기하기 전에 치는 경우도 있고, 컷하면 치는 경우도 있다. 제가 5인 6각 경기 촬영 때였는데, 슬레이트가 들어와서 '몇씬에 몇'이라고 말하며 '탁' 쳤다. 그 슬레이트에 2023년 10월 며칠이라고 적혀있더라. 그걸 보는데 제가 03학번이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지 20년 만에, '오징어 게임'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작품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20년 동안 고생하고 즐거웠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했다. 50번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고, 글로벌한 작품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은 것도 의미가 남다르다. 저는 종교는 없지만, 제 앞에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도 다시 초심을 잡고 뒤를 돌아보며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배우 생활에 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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