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명가게'로 '칭찬의 맛' 본 김설현 "점점 연기에 진심이 된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나를 칭찬해 주지 못한다. 연기를 할 때 특히 그렇다. 지적받으면 주눅이 들게 되는 게 있고, 칭찬받으면 신나서 더 잘하고 싶어진다. 저에게는 칭찬이 더 도움 되는 것 같다."
사람은 각자에게 맞는 성장 동력이 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점차 입지를 다지고 있는 김설현에게는 주로 채찍이 따랐다. 스스로 "따끔한 조언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늘 이전보다는 나은 연기를 보여드리자"라는 각오가 성장을 이끌었다. 그 진심의 연장선에서, 김설현은 '조명가게' 속 '지영'이 됐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최고 흥행작 '무빙' 이후 선보이는 강풀의 동명 웹툰 원작 드라마로 제작 단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극 중 김설현은 매일 밤 퇴근길 흰옷을 입은 채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여자 '지영'을 맡았다. '조명가게' 첫 회부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주요 인물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우수에 젖은 눈까지. 설현은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맞추면서 현실적인 연기를 더했다. 그 결과 연기 호평이 이어졌다.
지난달,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설현은 살짝 긴장한 기색에도 수줍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그간 화려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던 김설현은 '조명가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 참여를 결심했다.
"일단 원작도 정말 재밌게 봤지만, 지영이는 제가 해보지 않은 모습을 가진 캐릭터다. 대중분들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영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보면서 지영이가 굉장히 임팩트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 역할을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새로운 김설현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었다."
대중에게 변신을 보여준 후, 김설현은 매일매일 검색창에 '조명가게', '지영이', 그리고 '김설현'을 검색했다. 반응을 하나하나 챙겨봤다는 그는 많은 호평에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매 드라마 할 때마다 늘 반응을 찾아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히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보람이 있었다. 주변 분들도 제가 먼저 얘기하지 않아도 '잘 봤다', '너무 슬펐다'라며 후기를 들려주셔서 '내가 잘 소화하기는 했구나. 목표한 지점을 이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 초반 지영은 의뭉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점점 현민(엄태구)과의 서사가 드러날수록 처연함이 더해지는 인물이다. 김설현은 그런 지영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과정이었다고 운을 뗐다.
"지영이가 (생전) 장애가 있고 표현에 제한적인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장르적 특성 때문에 초반에는 현민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드러나면 안 됐다. 그걸 감추고 연기하는 게 어렵더라. 5부 이후부터는 지영의 의지가 확 드러나야 해서 그 강도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감정의 정도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 지영이가 우는 신이 많은데 '슬프다'라는 감정도 어느 정도로 가져가야 할지 찾는 것 때문에 가장 고민이 많았다."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눈 건 연기 선배이자 감독 김희원이었다. 김설현이 본 김희원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를 잘 이해해 주는 연출자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제 연기를 하나하나 뜯어 보실 것 같아서 긴장이 됐다. 막상 함께 해보니 오히려 하나하나 짚어주신 덕에 고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감독님들마다 연출 방식이 다 다르시지만, 김희원 감독님은 진짜 배우의 연기를 같이 고민해주신다. 모든 연기를 본인이 직접 다 해보시고, '내가 해봤는데 이런 건 동선이 불편하더라. 너는 어떠니'하고 물어봐 주셨다. 그렇게 함께 고민해 주시는 점이 가장 좋았다."
상대역 엄태구와는 영화 '안시성' 이후 재회했다. 김설현은 '조명가게'를 하면서 엄태구와 소울메이트가 됐다며 호흡을 언급했다.
"저랑 (엄태구) 선배님이랑 되게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배우마다 긴장을 푸는 방법이 다른데, 저랑 선배님은 같은 유형이다. 신 들어가기 전까지 자기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분들은 저희를 보면서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아직도 어색해?'하시지만, 저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린 억지로 다가가면 더 어색해진다고 생각했다. 말을 안 해도 통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텐션 덕분에 서로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 후반부를 넘어가며 지영과 현민의 안타까운 서사가 서서히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연기했다. 행복에 겨운 모습보다 슬프고 애절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했던 김설현은 "원래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되게 좋아하는 편"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영이에게는 현민이가 인생의 전부다. 지영이는 부모님도, 친구도 없지 않나. 현민이는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일하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드라마 속 현민이가 원작과 다르게 표현된다. 조금 더 지영이를 사랑하는 느낌으로 그려지는데, 그 지점이 더 좋게 느껴졌다. 엄태구 선배님이 그렇게 표현해 주신 덕분에 더 애틋한 사랑이 돼서 저는 만족스럽고 좋다.(웃음)"
걸그룹 AOA 데뷔와 함께 배우를 겸했던 김설현은 점점 연기에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가 처음 연기를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마음속에 간직한 한 줄이 지금의 '배우 김설현'을 만들었다.
"작품 할 때마다 점점 더 잘하고 싶고, 연기에 대한 생각이 진심이 되는 것 같다. 연기를 막 시작할 때 다짐한 게 있는데 '무조건 전작보다 잘하자'라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연기하다 보니 점점 더 진심이 된다."
"연기를 해보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둔 사람으로서, 기다림이 가장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선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차기작이 없는 상태에는 되게 불안하기도 하다. 기회가 온다면 저에게 주어지는 대로 다 하려고 하는 편이다. 작품 하나 끝날 때쯤이면 '연기'라는 걸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촬영을 쉬다 보면 그 생각들이 휘발된다. 그래서 '이제 알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 때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
김설현은 다사다난한 20대를 거쳐 본격적으로 30대에 들어섰다.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까 어른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라며 미소 지은 김설현은 "그래도 20대보다는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하고 있다. 더 여유가 있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김설현은 불안함 속에도 나름대로 빈틈을 잘 채운 것 같다며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조명가게'를 통해 성장을 입증한 김설현이 차기작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한층 단단해질 배우 김설현의 30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