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적 미학의 정수 ‘생명광시곡 김병종’을 만나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장동광 원장
30년 시각 예술 분야 현장 전문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장동광 원장
K-판타지아 프로젝트, 100년 역사의 서울역에서 한국 예술의 미래를 그리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는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었던 구서울역사를 복원해 2011년 재개관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공진원)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담아 대중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공진원은 올해 ‘K-판타지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병종 화백의 작품을 선보이는 ‘생명광시곡, 김병종’ 전시다.
이번 전시는 공진원의 장동광 원장이 직접 밑그림을 그렸다. 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예술 총감독, 유리지공예관 학예연구실장, 안양문화예술재단 공공예술부장 등을 역임하며 APAP(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했고 경기도자비엔날레를 진두지휘하는 등 30여 년간 시각예술 분야 큐레이터로 자리매김해 왔다.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의미와 전시 이야기 그리고 공진원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장동광 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 K-판타지아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현재 서울에 100년 넘는 근대문화유적은 많지 않습니다. 명동성당 본당, 한국은행 본점과 더불어 경성역으로 준공된 서울역은 역사적, 건축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40여 년 전 철도청 근무 시절 출퇴근하던 곳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감회가 깊은 장소입니다. 이 공간을 프랑스의 오르세 박물관이나 일본의 동경역 미술관처럼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문화예술 분야가 우리나라를 살려 나갈 미래산업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K-판타지아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의 역사박물관이나 공공기관이 할 수 없는 콘텐츠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한국성의 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통섭적 차원에서 모더니즘 시대에 분리되었던 학제 간 연대, 복합과 융합성을 통해 그 미래상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미술의 조형 예술성, 공연과 미디어아트 등 시간 예술성, 건축과 패션 등 공간 예술성을 아우르면서 우리다운 한국적 예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공간 즉 ‘코리아 판타지아’라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콘텐츠를 발굴, 연구하여 연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생명광시곡, 김병종’ 전은 선형적으로 기획된 개인전이 아닙니다. 김병종 화백을 통해 50년 동안 국제적 미술과의 교섭사이자 개인적 아카이브를 망라한 한국현대미술의 변천사로 이를 제가 명명하기로 ‘아트 아카이브’ 전이라 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와 서양화, 미술과 문학, 작품과 작가 자료, 한지 재료와 지필묵 컬렉션과의 관계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한국성의 미학을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나아가 내년부터는 꼭 개인전 형식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예술과 역사, 철도와 근대문화를 돌아보는 그룹전이 될 서울역 개장 100주년 기념 기획전을 준비 중이고, 이는 다시 세 번째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번 전시가 ‘아트 아카이브’ 전시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원본성으로 작가가 걸어온 길에 궤적처럼 남겨진 대표 작품들을 중심에 두고 그 작품의 생성과 창작 동기, 주제 의식의 근거를 추출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자료들과 함께 재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예술 작품이라는 결과 중심의 천착(穿鑿)에서 벗어나 작품 생산의 동기, 배경, 주제 의식의 흐름을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 중심의 접근 방식, 해부학적 접근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제 의식의 변모에 관한 원류를 찾아보는 탐사적 접근 형식입니다.”
- 이번 전시에는 회화 170점, 아카이브 자료 200여 점 등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이 있다. 가장 추천하는 곳이 있다면.
“기획자로서 한 곳을 추천하기보다 관람자 한분 한분이 제1악장 ‘심상의 숲’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장까지 음악을 듣듯이 여행을 가는 것 같은 마음으로 감상했으면 합니다. 김병종 작가의 작품을 애호하는 분들이라면 그의 대작들이 문화역284 공간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가 새로운 볼거리일 것입니다. 3등 대합실의 ‘송화분분’, 중앙홀의 ‘풍죽’ 등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 대작이 근대에 건축된 기차역과 어울리는 모습은 새롭고 즐겁습니다.
또한, 80여 점의 미발표 삽화가 전시된 ‘제4악장: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서’에서는 김병종 작가의 새로운 면모와 함께, 그의 기행과 메모, 스케치가 어떻게 신문에 연재되고 어떻게 책으로 출간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기획자로서 이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가장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병종 작가의 대표작들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무색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작품들 대부분은 동양 전통에 발을 딛고 서양의 기법까지 수용하거나, 지역을 떠나 현대적 미학을 접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산수를 패턴화 시키고 강렬한 붉은 꽃을 전면에 부상시키는 ‘화홍산수’, 사군자의 여백이 사라지고 댓잎의 색 대신 마음의 색을 담아 추상화에 가까워진 ‘풍죽’이 그렇습니다. 작가가 긴 세월 어떤 공부와 수행을 해왔고, 무엇을 추구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자료와 오브제가 우리 전시 곳곳에 작품과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자가 이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며 화첩 기행에 동행하는 듯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한국성의 맥을 작가의 50년 그림 작업에 재조명하고 기획했는데, 기획자가 본 작가의 한국적 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병종 작가는 시서화 일체라는 동양적 가치를 품고 살아온 마지막 세대이면서 활발하게 현대적 조형 어법을 탐색해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가입니다. 또 미술뿐 아니라 문학, 비평,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통섭의 예술가이고요. 즉, 그는 자신의 동양적 철학을 깊게 파고들면서도 그 표현과 소통에 있어서는 문학, 연극, 시각예술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달리며 다양한 업적을 쌓아 왔습니다. 동시대, 그리고 세계와 닿아 있는 한국적 전통의 표상화(表像化)가 김병종 미학의 특징입니다. 한국적 바탕에서 그려졌지만, 동양화, 서양화 구분이 이미 무화되는 경계가 그의 대표적 회화작품들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 문화역서울284 전시를 즐겨 찾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옛 서울역의 크고 작은 여러 공간을 여행하듯 작품과 함께 즐기시되 관람을 마치실 때쯤, 한국적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현대미술에서 한국적인 것은 어떻게 표상될 수 있을까, 김병종의 작품세계가 과연 한국성의 맥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지 하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내년 서울역 개장 100주년 기념전과 더불어 이후에도 계속되는 문화역서울284 K-판타지아 프로젝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공진원의 비전과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은 공진원 설립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공진원이 걸어온 25년사’ 백서를 발간하고, ‘25주년 기념 아카이브 회고전’을 준비 중입니다. 또한, ‘한국성의 맥’을 주제로 서울역 개장 100주년 기념전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예술과 철도, 근대문화를 결합한 기획전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공예와 공공디자인, 한복, 한지 진흥을 위한 사업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예이론가상을 신설해 공예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올해부터 올해의 공예상에 공예이론가상을 신설하여 ‘2024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시상하는데 ‘공예콜로키움’과 더불어 국제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시상금도 후원기업을 물색하여 대폭 상향시키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한국공예, 공공디자인, 전통문화의 전담 기관으로서 국제적으로 우뚝 서서 국가 위상을 견인시키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