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菊花)는 향기와 색깔 모두 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 가을날 산길을 걷다가, 들길을 걷다가 만나는 국화는 계절의 축복이다. 단언컨대 가을의 꽃은 국화이고, 국화 향기는 가을 냄새다. 

가을을 타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고양이도 메추리도 국화 옆에서 가을을 탄다.

(왼쪽) <국정추묘(菊庭秋猫)>, 변상벽,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오른쪽)<국순도(菊鶉圖)>, 채용신, 출처=순천대박물관

그림 <국정추묘(菊庭秋猫)>의 주인공은 고양이와 국화다. 고양이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와 천둥이 왜 그렇게 울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묘생을 반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는 한자로 묘(猫, māo)인데, 8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 mào)와 발음이 비슷하여 장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국화의 국(菊, jú)과 거할 거(居, jū)의 중국어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화가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에 ‘여생을 보내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국정추묘>의 고양이는 장수(長壽), 국화는 안거(安居)를 상징하고, 그 뜻은 “편안하게 오래 사세요!”이다.

중국의 전원시인이라 불리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40세가 되던 해에 관직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이 철길 위에서 외친 명대사 “나 돌아갈래!”와 같은 뜻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그는 이 시에서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소용없고, 부귀와 지위도 다 내려놓고 흙과 함께 살겠다며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여산(廬山)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이 여산이 바로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의 그 여산이다. 그는 여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국화를 심고 가꾸며 시를 쓰고, 술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 후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사는 것을 로망으로 삼았다. 오늘날 모든 직장인이 은퇴 후 꿈꾸는 전원생활을 도연명은 이미 1600년 전에 실천했다.

도연명의 영향으로 국화는 은둔의 선비를 뜻하는 꽃이 되었고, 600년 후 송나라 주돈이가 <애련설(愛蓮說)>에서 국화를 은일(隱逸)이라고 노래한 후, 그 이미지가 굳어졌다. 또한 중양절(음력 9월 9일)이면 국화를 감상하고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니, 국화는 장수의 의미까지도 갖게 되었다. 

그림 <국순도(菊鶉圖)>를 보자. 국화와 메추리가 주인공이다. 사실 그림이 나타내는 뜻을 생각하면 제목이 <국암도(菊鵪圖)>가 되어야 한다. 메추리는 한자로 암순(鵪鶉, ānchún)인데, 메추리 암(鵪, ān)과 편안할 안(安, ān)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메추리는 평안(平安), 국화는 역시 거(居)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평안하게 사세요”라는 뜻이다. 

<국정추묘>와 <국순도>는 화가가 그림 안에 제목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만 보고는 속뜻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국화 옆에서 가을을 타는 고양이와 메추리 그림은 모두 ‘안거(安居)’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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