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배우부터 출판사 '무제' 대표까지…극진히, 박정민
* [인터뷰①]에서 '전,란' 속 종려와 천영의 이야기를 했다면, [인터뷰②]에서는 좀 더 종려와 '박정민'에게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은 조선의 사상가 정여립이 주장한 '천하는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마무리된 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보통 주연부터 순서대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전, 란'은 '등장 순'으로 올라간다. 마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만든 것처럼 '영화의 주인이 따로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 박정민'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민은 배우이자 감독이자 전직 서점의 주인이자, 출판사 '무제'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의 출판사에서는 현재까지 '살리는 일', '자매일기'라는 두 권의 책이 출판됐고,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그는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소외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밝혔다. 그 마음으로 박정민은 '여러모로' 극진히 살아가고 있다.
Q. '동주'도 시대극이긴 했지만, 단편영화 '일장춘몽' 이후, 제대로 선보인 사극이다. 말투는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말투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옛날 옛적에 '왜 사극에서는 저런 말투를 쓰지?'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대가 지나며, 그런 말투를 쓰지 않는 사극도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극에서 사극 말투를 쓰는 게 그리워지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극이 영화 '남한산성'이거든요. 단단하고, 묵직하게, 선배님들께서 쫙 이끌고 가시잖아요. 그 영화를 보면서 '사극은 이 맛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전,란'을 준비하며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 하는 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연습해서 가보자'라고 생각하고, 말투와 사극 톤에 대해 연구하고 많이 연습했습니다."
Q. '전, 란'을 보면, 수직으로 가르는 검술에서 유독 많은 감정이 실려있다. 그 찰나의 감정은 어떻게 보여주려 했나.
"제가 액션을 안 해본 건 아니라서요. 액션스쿨에 가서 연습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하라는 대로 했거든요. 합을 짜놓으면, 제가 그대로 연습해서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감정을 보여줄 수 있게 동작을 고쳐달라'라고 액션 팀에 요청을 드린 것 같아요. 또 울분 섞인 액션을 만들어달라고 요청드리기도 했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액션 팀에서 만들어주셨습니다."
Q. 말투처럼 박정민의 처음 보는 표정들이 있었다. 특히,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일그러지는 표정이 천천히 보이는데, 그 순간으로 종려의 모든 변화의 지점이 탁 설명이 되는 듯했다. 고속촬영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나.
"고속촬영이 계획이 되어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장면을 찍고 모니터할 때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던 것만 기억나요. 어쨌든 파트가 넘어가는 장면의 꼭짓점이 되는 표정이 표현되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현장의 촬영 여건이 쉽지 않았거든요. 고민이 많았는데, 형님이 잘 해주셔서 된 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종려가 다시 양반으로 확 돌아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특권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확 돌아오는 모멘트라고요. '종려는 어쩔 수 없는 양반이구나', '천영과 나눈 마음이 무의식적으로는 호의라고 느끼고 있었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천한 것에게 마음을 줬더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벽하게 의도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왔습니다."
Q. 스스로 생각하게 된 '전, 란'이 주는 화두가 있었을까.
"모든 인간 사회, 하다못해 넓게 봤을 때, 숨 쉬는 모든 것에는 어쩔 수 없이 계급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본성인 것 같아요. 지금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본성이 없어졌죠.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좋은 구성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Q. 연결된 지점에서 '전,란'의 엔딩크레딧이 주연배우 순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등장순'으로 올라가는 것도 끝까지 영화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어요. 대본을 볼 때부터 좋았어요. 저는 영화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심지어 '전, 란'의 메시지는 저에게도 동의가 되는 내용이었고요. '더불어 살아간다'라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아 지는 것 같아요. 현시점에 이 작품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확실히 있던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Q. 배우이기도 하지만, '쓸만한 인간'의 작가이기도 하지 않나.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본인의 책을 낼 계획도 있나. 원래의 목적대로 출판사는 잘 운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계획은 하고 있는데요. 한 글자도 쓴 게 없습니다. 자꾸 '쓸만한 인간' 책을 가지고 오셔서 사인을 받으시는데요. 거의 10년도 넘은 세월이 흘렀거든요. 20대 중반의 제 생각이 담겨있는 책인데, 10년이 지나도 그 책 속의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어 좀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써봐? 라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제가 나태해서 뒷전에 두고 있었는데 최근 '자매일기'가 발간되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여러 작가님과 계약했고,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년 봄에도 나올 예정입니다. 지금은 많이 서툴러서 배워가는 과정 같은데요. 내년에는 조금 인지도 높은 작가님과도 작업을 하거든요. 그분들의 책은 얼렁뚱땅할 수 없으니, 칼을 갈고, 극진히 대접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웹 예능을 통해 '내년 휴식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도전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까.
"언급하지 않으면, 제가 안 지킬 것 같아서요. 제가 다시 뭔가를 채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동어반복을 하지 않기 위해서요. 하다못해, 어떨 땐 어떤 말을 쓰고, 어떨 땐 어떤 표정을 쓰고, 이럴 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런 것들을 채집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실 도전을 좋아하지 않아요. 누군가 도전을 시키니까 하는 거지, 스스로 도전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지금 목표가 있다면,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어엿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