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녕, 카카오브레인
얼마 전 카카오브레인(이하 브레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헬스케어 부문은 분리돼 신규 법인으로 독립하고 브레인은 디케이테크인에 인수합병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1일이 바로 그 인수합병 예정일이다. 이 글이 독자 여러분께 닿을 때쯤이면, 아마 브레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브레인은 2017년 2월에 설립됐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2016년 말에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CTO였던 분과 스타트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 스타트업이 브레인이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브레인의 설립 멤버가 됐다. 당시 구글의 AI 연구 조직이었던 '구글브레인'에서 이름을 따온 '카카오브레인'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설레고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브레인은 빠르게 인재를 모으고 인지도를 쌓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AI 연구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는 2016년 3월 있었던 알파고 충격으로 각 IT 기업이 AI 연구 조직을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던 시기였다. 브레인이 설립된 시기와 비슷하게 SKT는 티브레인, 네이버는 클로바를 만들었다. 이 세 조직은 경쟁하듯이 AI 인재들을 영입하고 때로는 서로 뺏고 뺏겼다. 면접을 볼 때 물어보면 세 곳에 동시 지원하는 지원자도 많았고, 브레인에서 불합격한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렸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브레인의 구성원 중 절반 정도는 학위를 갓 마친 열의에 찬 연구자들이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기업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들이었다. 연구자들은 연구하고 논문을 읽고 발표하는 데 익숙했으며 실제로 그런 활동이 활발히 이어졌다. 회사에 나와 동료들과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라운지의 빈백에 비스듬히 기대 벽면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를 보며 논의하는 그 낭만적인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엔지니어들은 뭔가 프로젝트를 만들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다. 초기에는 알파고의 영향으로 바둑 연구가 프로젝트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늘고 관심사가 다양해지며 곧 여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부에서는 이를 '버스'라고 불렀는데, 누군가 새로운 프로젝트 주제가 있으면 그가 버스 기사가 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자유롭게 올라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각 버스의 성과는 한 달에 한 번 전 구성원이 라운지에 모이는 '미니콘'을 통해 모두에게 공유됐다. 이날은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와 낭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내심 불안해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유와 낭만은 결국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돈이 부족해지면 자유는 방만이 되고 낭만은 사치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우리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늘 있었다.
2020년 6월 GPT-3가 발표된 이후로는 이러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GPT-3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 사람들이 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주장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 기술이 과대평가 된 것이며 수익성이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누가 답을 알고 있으랴. 혼돈의 시기를 지나, 나는 이듬해 초 브레인을 나와 창업의 길을 택했다. 직후 브레인은 신임 CEO가 선임되며 KoGPT, 칼로 등 거대모델 개발을 시작했다.
나는 브레인을 떠난 이후로 멀리서 브레인을 응원하며 일부러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이후 4년간의 브레인 행보에 대해 알려진 것 외에 아는 것이 많지는 않다. KoGPT를 비롯한 언어모델, 칼리 등 이미지 모델, 그리고 비 디스커버와 같은 서비스들이 출시되었고, 여러 외부 기관의 협업도 꾸준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많은 회사가 그랬듯이, 브레인 역시 오픈AI,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숨 가쁜 기술 러시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잃지 않을지 고민했을 것이며 이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네이버, SKT처럼 카카오도 서비스에의 집중을 천명하며 브레인 인력을 대거 흡수했고, 이제 브레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많은 기업들이 AI를 통해 수익을 내야 하는 미션을 안고 있다. 투입된 자금을 생각하면 그것도 큰 수익을.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여유가 적은 국내 AI 기업들이 2017~2020년처럼 연구 중심 체제를 다시 도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 해도 연구와 서비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은 과거보다 더 경계하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 논문 제출 마감일을 앞두고 모두 회사에 모여 충혈된 눈으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추억이 아련하다.
안녕, 카카오브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