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가지와 방아깨비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보러 갔다가 한 번쯤 둘러보는 곳이 강릉 오죽헌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오죽헌을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자녀들이 이율곡처럼 똑똑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죽헌 율곡 기념관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가 전시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신사임당이 그린 8폭 병풍 중 하나인 <가지와 방아깨비>다.
그림 안에 있는 식물과 곤충은 모두 열 가지나 된다. 그래서 조금 복잡하게 보이긴 하지만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나방은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의미한다. 애벌레에서 날개를 가진 나방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라는 의미에 가깝다. 나비도 나방과 마찬가지로 애벌레가 환골탈태한 것은 같지만, 나비 접(蝶, dié)과 80세 질(耋, dié)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장수(長壽)를 의미한다. 그리고 가지는 한자로 가자(茄子)인데, 가지 가(茄)와 더할 가(加)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加子(아들을 더하다)’, 즉 ‘연달아 아들을 낳다’라는 뜻이 된다. 특히 흰색 가지는 의미가 특별하다. 흰 사슴, 흰 호랑이 등이 매우 이례적이며 길상의 의미가 강한 것처럼 흰 가지는 아들 중에서 매우 훌륭한 인물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그래서 조선의 엄친아, 공부의 신(神)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났고, 대학자가 되었나 보다.
개미와 벌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그래서 개미와 벌은 ‘열심히 공부하거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세히 봐야 보이는데, 오른쪽 가지 줄기의 중간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붉은 색 곤충, 무당벌레가 있다. 등딱지가 단단한 무당벌레는 갑(甲)을 상징하고, 장원급제를 의미한다. 가지 아래에 있는 딸기는 덩굴식물로 덩굴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덩굴은 한자로 만대(蔓帶)인데, 만대(萬代)와 발음이 같다. 즉, 딸기는 자손이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딸기 뒤에 있는 쇠뜨기 풀은 어느 들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생명력이 강한, 빙하기도 견뎌냈다는 풀이다. 쇠뜨기 역시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아깨비 앞에 있는 풀은 바랭이다. 바랭이도 생명력이 억세게 강한 풀이다. 그래서 이 역시 쇠뜨기의 의미와 같다.
마지막으로 방아깨비는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어렵다. 《시경(詩經)》의 <국풍·주남·종사(國風·周南·螽斯)>에 “곤충이 모여들어 날개를 펴고 ‘웅웅’ 소리 내는 것처럼 자손이 번성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옛날 많은 화가가 그린 곤충은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 <초충도>를 읽으면, 그 속뜻은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하여 장원급제하고, 관직에 나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대대로 자손 번성하고 장수하기 바랍니다”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나방은 야행성이고, 나비와 벌, 방아깨비는 낮에 활동할 텐데 같이 등장할 수 있을까? 전통 그림은 간혹 자연의 이치와 맞지 않는다. 그 이유는 특정한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연의 이치를 비껴갔기 때문이다.
<가지와 방아깨비>에는 소재도 많고, 소재가 많은 만큼 뜻풀이도 길다. 다른 <초충도>를 감상할 때 위의 내용을 기억하면 그림의 속뜻을 대부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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