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8년' 이민호, '아이 빌리브 유'로 시작된 '파친코' [인터뷰]
"'파친코'의 캐스팅이 결정되고 30분 정도 코코나다 감독님과 미팅 자리가 있었다. 딱 한 마디 하고 끝났다. 'I believe you(난 당신을 믿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존중을 많이 받았다. 제가 생각한 '한수'를 존중받았다."
배우 이민호가 지난 23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에서 진행된 Apple Original Series '파친코' 시즌2 프레스 컨퍼런스이후 김민하와 가진 공동 인터뷰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이민호는 코코나다 감독이 연출한 '파친코'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한수'로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우리나라 역사를 두 아들의 어머니 '선자'의 삶을 통해 담아낸 작품이다. 그 속에서 한수는 선자의 첫사랑이었고, 그를 더 넓은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사람이었으며, 첫째 아들 노아의 아빠였다. 시즌 1은 1936년을 배경으로 막을 내렸고, 시즌 2는 1945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Q.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등의 작품을 통해 오랜 시간 한류스타로 불렸다. 그런데 중국과 합작 작품이 아닌, 글로벌 작품은 첫 도전이다. 역사적인 상황 속 나라 별로 다양한 평가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점에서 오는 고민은 없었나.
"지금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 않나. 글로벌적으로 신선할 수 있지만 여태까지 한국 콘텐츠를 계속 접한 입장에서 신선하지 않을 수 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문화나 관점, 그리고 감정 표현 등을 시도하면 배우로서 더 풍성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한류스타'라는 타이틀을 제가 만든 건 아니지 않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한류'라는 단어가 붙은 배우가 됐다. 그렇기에 결국 '한류'라는 타이틀을 벗는 것도 제 영역은 아니다. 인간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런 것들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
Q. 중년의 모습이 된 '한수'를 위해 체중을 5~6kg 정도 증량했다고 알려졌다. 남다른 노력에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총 책임자 수휴랑 초반부터 중년의 남성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수휴 작가는 20kg 정도 찌우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못 알아볼 것 같아서 5~6kg 정도 찌웠다. 한수라는 인물이 나왔을 때, 화면을 뚫고 위스키 냄새가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술잔을 든 연기를 한 것 같다. '파친코' 결정할 때 이미지 변신을 꾀한 건 아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어떤 작품, 캐릭터든지 해보고 싶다, 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인드의 배우였다. 다만 사랑받고 주목받은 작품이 잘 정돈되어 있고, 돈 많고, 청춘, 이런 캐릭터였던 것 같다. 그런데 '파친코'를 시작으로 30대 초중반을 거치며 그런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때 작품을 만나게 돼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
Q. 함께 연기한 김민하와의 호흡이 궁금하다.
"김민하와 처음 오디션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선자다'라고 생각했다. 늘 놀라움을 주는 배우다. 선자를 현장에서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좋겠고, 그런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시즌1 때는 대화를 많이 나눈 것 같다. 여러모로. 한수의 입장에서 선자를 알아가는 과정들의 장면이 많았다. 의도하지 않아도 '어떻게 생각해?'를 물었다면, 시즌2 할 때는 그런 대화를 한 기억이 없었다. 의도가 아니고, 필요성을 못 느낀 것 같다. 이민호, 김민하로 있다가 현장에서 한수, 선자로 만났을 때 긴장감이나 달라진 모습에서 주고받는 느낌이 강렬했다."
Q. 한수가 느끼는 선자(김민하)와 노아를 향한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임했나.
"결국 '나를 존재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하게 될 때가 있다. 열심히 일하다가 '왜 이렇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본인 스스로도 답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한수는 '열망했으나 결국 갖지 못한 불행한 인간'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한수에게 선자와 노아는 그를 존재하게 해주고, 그를 대변해 주는 관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Q. '파친코'에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시즌 1에서 경험했기에, 언어적으로 힘든 점은 덜했나?
"현장에 가면 혼돈의 도가니다. 거의 모든 국가의 언어가 사방에서 들린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전달하면, 다시 올 때는 한국어로 온다. 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던 지점이 많다. 제가 잠시 놓는 순간, 소통의 공백이 생기고, 오류가 생긴다. 현장을 가면 계속 모든 레이더를 켜고 있었다."
Q. 대규모 촬영장의 경험을 했다. 또한 뉴욕 프로모션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이 캐나다에서 큰 시장 거리를 만들어놓은 세트장이다. 아침에 몇 톤 정도 되는 트럭이 10대 정도 도착했다. 해산물을 진짜 아침에 공수해서 시장에 세팅하시더라. 그 거리를 걷는 순간 비린내 같은 정취가 싹 느껴지며, 캐나다였음에도 단숨에 몰입했다. 뉴욕에서 홍보하며, 극장 프리미어 했던 경험이 새로웠다. 유명하신 분들을 초청해 성대하게 했다. 약속된 것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준비돼 있었다."
Q. 지난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이후,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로 존재했다. '이민호'로서의 삶도 어떻게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열심히 찾아가는 중이다. 데뷔 18년 차가 됐다. 그 시간 동안 저를 안정적이게 해준 모든 것들에 너무 감사하다. 그런 것들 덕분에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볼 때,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무언가 반대되는 것들도 돌아보려고 한다. 결혼, 자녀 등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다. 제가 결혼도 진지하게 고민할 나이가 됐고, 자녀에 대해서도 그렇다. 살면서 느껴질 무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고 있다."
Q. '파친코'를 보며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의미를 떠올리는 작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기를 바라는가.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지금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이 작품을 보고 무언가 끓어오르고, 느껴지는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을 둘러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