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수박과 덩굴
우리나라 여름도 동남아시아 못지않게 덥다. 기온이 높아도 습하지 않으면 그래도 견딜 만한데, 너무나 습하다. 이제 우리도 아열대기후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화채를 한 사발 들이키던 옛날이 그립다. 수박도 귀하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 수박 한 덩이를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붉은 속살을 퍼서 함지박에 담는다. 그사이 가까운 얼음 가게로 달려가 얼음 한 덩이를 사면 주인아저씨가 새끼줄에 얼음을 묶어 주었다. 얼음이 녹을세라 잽싸게 집으로 오면 아버지가 송곳이나 굵은 바늘을 얼음에 대고 망치로 쳐서 얼음을 잘게 쪼개 함지박에 넣었다. 수박은 하나인데 입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붓고, 수박의 단맛을 높이기 위해 귀한 설탕까지 넣고는 휘휘 저었다. 이렇게 만든 수박화채를 대접에 가득 담아 들이켜면 더위도 잊고 행복했다.
수박 값이 비싸 맘 놓고 맛보기 힘든 올해 여름, 대신 옛 그림 속 수박의 의미를 음미해 보자.
허형(許瀅)의 <수박> 그림은 수박만을 그리지 않고 수박의 덩굴까지 생생하게 그렸다. 수박은 덩굴식물 중의 하나다. 대표적인 덩굴식물로는 칡, 오이, 호박, 포도, 수세미, 완두콩, 등나무, 담쟁이 등이 있다. 이런 식물들은 줄기가 곧게 서지 않고 다른 물건을 감거나 거기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덩굴식물이라고 한다. 덩굴을 한자로 만대(蔓帶)라고 하는데, 만대(萬代)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덩굴식물은 자손이 만대까지 이어져 번성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책가도>를 보면 책 앞에 수박이 놓여 있다. 비현실적인 배치다. 수박은 마치 뚜껑을 열어 놓은 듯 수십 개나 되는 씨가 드러나 보인다. 씨앗 자(籽)는 아들 자(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자손을 상징한다. 이 또한 자손 번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박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고구려 온달, 신라 김유신, 백제의 계백도 여름날 수박을 쪼개 먹으며 더위를 식혔을까?
수박은 중국어로 서과(西瓜)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서역(西域)에서 전래되었다. 수박은 원래 아프리카가 원산지인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5년(1423) “환관 한문직(韓文直)이 주방(酒房)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수박을 훔쳐 사용하였으므로 장(杖) 100대를 맞고 유배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정조 21년(1797) “고구마를 심으면 10년이 못 되어 지금의 담배나 수박처럼 고구마가 온 나라 안에 두루 퍼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까지 수박은 일반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으로 수박이 재배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박을 먹으면서까지 뭔가를 공부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지만, 전통 그림에 덩굴식물이나 수박이 등장하면 그 의미가 자손 번성이라는 것만은 기억하면 좋겠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