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사이, 아내와 배우 사이…탕웨이의 '원더랜드' [인터뷰]
영화 ‘원더랜드’는 한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을 떠났거나 의식 불명 상태의 사람을 AI로 만들어 영상통화처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그 속에서 탕웨이가 맡은 바이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진 어린 딸을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하게 되는 엄마다. 딸아이는 바이리(탕웨이)의 모습을 영상통화로 만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이리의 엄마(니나 파우)다.
탕웨이는 지난 2014년 김태용 감독과 결혼해 슬하에 한 명의 딸을 키우고 있다. ‘원더랜드’는 그에게 남편인 김태용과 ‘만추’(2011) 이후 감독과 배우로 만나게 한 작품이었고, 동시에 딸과 자신의 엄마 사이에 서 있는 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이 막연히 ‘원더랜드’를 떠올린 시기부터 꾸준히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리고 캐스팅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처음 읽어봤을 때 “AI라는 소재로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고, 그걸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을 펼쳐나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김태용 감독은 글자 하나, 픽셀 한 개까지도 고민하고, 연구하며 작품에 넣으려고 했다. 탕웨이는 “그분이 그런 시도를 하는 걸 옆에서 보는 걸 즐겼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마 그 시기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의 대화 주제는 ‘원더랜드’가 아니었을까. ‘탕웨이가 많은 질문을 했다’라는 김태용 감독의 말을 전해 들은 그는 발끈했다. “제가 언제 질문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분이 저에게 더 많이 했습니다”라며 “제가 실험 대상인 것처럼 계속 물어본다.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사람의 어린 시절 꿈은 뭐였을까?’ 등의 질문을 했다. 제가 이야기하다가 운 적도 있는데 그것까지도 녹음했다. 감독님께서 제 안에서 계속 뭔가를 파내고, 꺼내려고 한 것 같다”라고 귀엽게 억울함을 토로해 현장을 웃음 짓게 했다.
바이리는 모성애를 중심에 둔 캐릭터였다. 자기 딸을 위해 결정했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딸로 성장한다. 실제 엄마의 딸이고, 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탕웨이는 그런 바이리의 모습을 이른바 ‘신파’로 담아내지 않았다. 딸에게는 묵묵한 응원을 전했고, 엄마에게는 꾹 눌러 담은 감사를 전했다. 눌러 담은 그 감정은 관객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제 가정을 보면, 엄마도 외동딸, 저도 외동딸, 제 딸도 외동딸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과 셋이 함께 있을 때 바이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실 바이리가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건, 딸에게 자기 죽음을 모르게 하기 위한 모성애 때문이었다. 동시에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의 마음을 보살피기 위함이기도 하다. 영화를 볼 때, 바이리의 엄마(니나 파우)가 영상통화를 끊고, 만두를 먹는데 흰머리 한 가닥이 뚝 떨어진다. 그때 마음이 찢어진다고 할까. 실제로 제 엄마는 저와 영상 통화할 때 늘 발랄하게 이야기하며 끊는다. 그런데 그 통화 끝에 엄마는 혼자 쓸쓸하고 고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제 여건이 허락하는 가능한 엄마와 딸이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영화에서 바이리의 엄마(니나 파우)는 다 식어버린 만두와 굳은 빵을 먹지 않나. 그러면 안 된다. 최대한 (엄마에게) 신선한 요리 재료를 보내서 신선하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게 한다. 엄마가 지금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최대한 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제가 제 딸에게 ‘외할머니는 지금 네 살 반이야. 할머니는 네가 보살펴줘야 해. 네가 언니니까’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딸이 저희 엄마가 운동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고, 잘 먹는지 안 먹는지 검사한다. 영화 속에서 운동하고, 잘 먹고. 그 대사처럼 말이다.”
세상을 떠난 바이리와 세상에 남겨진 엄마와 딸. 세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탕웨이는 엄마 역에 니나 파우를 추천했고, 딸 역의 오디션에 직접 참여했다. 탕웨이는 니나 파우에 대한 질문에 “제가 정말 죽도록 사랑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원더랜드’ 시사회에 실제로 저희 엄마를 아시는 분이 오셨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에게 ‘너희 엄마와 닮았다’라고 이야기 해줬는데, 그 말에 행복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 캐릭터에 왜 니나 파우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지 비로소 알았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니나 파우는 탕웨이의 부탁에 코로나 시국에 한 달이 넘는 격리기간을 거쳐 가며 촬영에 임했다. 탕웨이는 “만약 니나 파우가 없었다면, 지금 담긴 공항 장면은 없었을 거다. 정말 큰 소망이 있다면, 니나 파우를 모시고 와서 손 붙잡고 극장 다니며 관객을 만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바이리(탕웨이)와 성준(공유)의 관계성도 ‘원더랜드’를 보는 재미였다. 특히 탕웨이와 공유의 만남은 다음 ‘원더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낼 정도로 강렬했다. 탕웨이는 “저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 그래서 감독님께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기계로 생각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조립해야 하는 건 감독님 아닌가. 공유와 찍을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분량이) 부족했다. ‘바이리와 성준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저는 김태용 감독과 아이 문제 외에 싸운 적이 없다. 그래서 AI가 싸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라며 바이리와 성준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부부이지만, ‘원더랜드’ 현장에서 두 사람은 배우와 감독이었다. 특히 두 사람은 결혼 발표 당시 직접 쓴 글 속에서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기에 ‘원더랜드’ 현장에서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탕웨이는 “인간이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며 전환점이 있다.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큰 변화가 아이의 탄생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가 세상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 시간을 받아들이는 힘이 달라졌다. 감독님과 과거 ‘만추’ 작업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처음 이야기하고 어느 지점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지금은 빨라졌다.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저는 이 지점이 너무 좋다. 한 작품을 통해 잘 맞았던 호흡을 가지고, 다른 작품에서 만나 연장해 가는 작업이 참 좋은 것 같다. 김태용 감독님이 관심을 갖거나, 흥미를 느끼는 것에 저도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가끔 제가 생각을 던지면, 감독님께서는 거기에 더해서 사고를 공유해준다. 행운이다.”
탕웨이는 국내에서도 영화 ‘색, 계’, ‘만추’, ‘헤어질 결심’ 등의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헤어질 결심’으로 외국인 최초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함은 없다. 탕웨이는 바이리를 위해 고고학 관련 서적으로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작은 것 하나도 작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 열정은 매 작품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탕웨이는 여전히 겸손하게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번번이 좋은 캐릭터를 맡기가 힘든데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한다. 그 겸손함과 열정이 지금의 탕웨이를 만든 건 아닐까. ‘헤어질 결심’ 속 대사처럼 늘 탕웨이에게 붕괴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