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에 해당한다. 

예술가, 운동선수, 과학자, 시인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법칙의 예외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1만 시간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옛날 글쓰기의 달인 한석봉도, 현대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모두 1만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학업에는 왕도(王道)가 없다고 한다. 공부에도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림이 있다.

(왼쪽) <삼여도(三餘圖)>, 제백석,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민규, (오른쪽) <삼어도(三魚圖)>, 작자미상, 브루클린미술관

두 그림 모두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렸다. 하나는 <삼여도(三餘圖)>이고, 다른 하나는 <삼어도(三魚圖)>다. 언뜻 보면 제목이 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여’ 다르고 ‘어’ 다르다. <삼여도>에서의 물고기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 같기도 하고 복어 같기도 하지만 물고기의 종류는 이 그림의 뜻과 관련이 없다. 그런데 <삼어도>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잉어다. 물고기를 잉어로 그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삼여도>를 보자. 물고기 세 마리를 한자로 쓰면 삼어(三魚)인데, 물고기 어(魚, yú)와 넉넉할 여(餘, yú)의 중국어 발음이 같고 우리말 발음은 비슷하다. 그래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세 가지 여유’라고 읽는 것이다. 그럼 세 가지 ‘여유(餘裕)’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 위나라의 어환(魚豢)이 쓴 《위략·유종전·동우(魏略·儒宗傳·董遇)》에서 찾을 수 있는데, 동우(董遇)에 대한 이야기를 각색하면 이러하다.



동우는 노력형 천재였다. 밥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도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나라에서 가장 박식한 인물이 되었다. 이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와 가르침을 청했다. 동우는 “책을 100번 읽으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되니 책을 열심히 읽으세요”라고 충고했다. 이 말이 아직까지도 회자하는 ‘독서백편, 기의자현(讀書百遍 其義自見)’이다. 동우의 충고를 들은 사람이 다시 “근데요, 제가 좀 바쁘거든요. 100번이나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동우는 “시간이 없다니요? 비 오는 날, 저녁 시간, 겨울 이 세 가지의 여유 시간 동안만 책을 읽어도 충분합니다”라고 답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이니 당연히 농업 사회였다. 옛날 농사일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은 비 오는 날, 해진 후 저녁 시간, 그리고 농한기인 겨울이었다. 이 세 가지 시간을 삼여(三餘)라고 콕 집어 말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삼여도>다. 

그런데 <삼어도(三魚圖)>에서는 물고기 세 마리를 모두 잉어로 그렸다. 굳이 잉어를 그린 이유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를 그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황하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협곡이 있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큰 물고기도 이곳을 오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단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되었다고 한다. 즉, 부단한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여도>가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인데, <삼어도>는 출세까지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여도>나 <삼어도>는 어디에 걸어 두어야 가장 어울릴까? 공부하는 사람이 그림을 보면서 꾸준히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데 적합하니 서재, 도서관 등이 가장 좋다. 혹시나 물고기가 튼실하고 싱싱해 보인다고 횟집이나 매운탕 집에 걸어 두면 절대로 안 된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