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멎 추격극과 핫한 청춘물이 만났을 때…이제훈X구교환 '탈주' [리뷰]
숨을 참았다. 방향은 오로지 남쪽, 한 방향. 방법도 다른 게 없다. 오로지 달린다. 달리는 걸음이 다른 무엇 때문에 멈추지 않기를 손을 꼭 쥐고 응원한다. 그 달리는 걸음에는 사실 나도 있고, 너도 있다. 꿈을 가진 모두가 있다.
꿈이라는 건 분명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 영화 ’탈주‘ 속에서는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북한 병사가 남쪽으로 질주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것.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 제대 후에는 나라에서 정하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삶, 여기에서 규남(이제훈)은 탈주하기로 결심했다. 남으로 가도 별 볼일 없을 거라는 말에 규남이 하는 말은 뼈아프다. “내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 꿈을 꾸는데, 실패는 중요치 않다.
규남(이제훈)은 남들이 잘 때 눈뜬다. 돌아오는 시계를 맞춰놓고, 철조망을 넘어 남쪽으로 향한다. 중간에 지뢰밭은 몸을 낮춰 기어가며 지뢰가 묻혀있는 위치를 표시한다. 그렇게 지도 한 장을 완성했다. 그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같은 꿈을 꾸는 후임병 김동혁(홍사빈) 때문이다. 김동혁은 규남에게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한 후 그의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탈주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발각되고, 이를 조사하러 온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으로 인해 규남의 예상과는 다른 길로 향하게 된다. 과연 그는 남으로 갈 수 있을까.
‘탈주’는 기존 추격극의 문법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 추격극은 범죄와 연결되어 있고, 선과 악의 구도로 나뉜다. 하지만 탈주는 배경을 북한으로 가져오며 선과 악의 구도를 지웠다. 그렇다고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구도에서도 벗어난다. 계급이라는 배경은 가져와서, 이데올로기 대신 꿈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즉, 횡단으로 내달리는 영화다. 방향을 잃지 않는다.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명확성은 추격극에서 가장 필요한 긴장감을 흐트러지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주’에서 1초도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건 배우 이제훈, 구교환 등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다. 규남(이제훈)은 분명 꿈을 향해 질주하는 명확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를 쫓는 현상(구교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고위 간부의 아들이지만,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던 인물이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날을 기다리며 동시에, 선우민(송강)으로 인해 내면적 탈주를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연기한 구교환이라는 배우의 리드미컬한 모호함은 오히려 그 자체로 ‘탈주’의 실을 느슨해지지 않게 팽팽하게 당긴다.
이종필 감독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박하경 여행기’에 이어 ‘탈주’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그리고 잘 아는 것을 꺼냈다. 바로 청춘이다. 청춘은 질주한다. 그리고 꿈을 꾼다. 내일을 위한 꿈이다. 이종필 감독은 “주인공은 아프리카의 청년일 수도 있고,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모두일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탈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그리고 싶었다“라며 ”매혹적 악몽“을 연출한 이유를 전했다. 북한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한 뒤, 군복과 정복 등의 색을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바꾼 것은 ‘탈주’를 꿈 속처럼 표현하려 한 이유이기도 하다.
'탈주'는 묘한 작품이다. 긴박한 추격극의 옷을 입은 청춘물은 "행복합시다"라는 말을 가슴에 심어준다. 가슴에 품은 꿈 한 조각 쥐고 힘든 오늘의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는 청춘을 위한 헌사로 읽히는 이유다. 오는 7월 3일 개봉. 러닝타임 94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