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 류승룡 "신선한 것에 끌려…韓 배우로 사는 것 감사해" [인터뷰]
류승룡에게 '닭강정'은 배우 인생에서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귀중한 존재다. 코미디 연기가 익숙한 그에게도 '닭강정'만큼 강렬하고 도전적인 작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호불호, 작업의 어려움은 차치하고 그저 좋아서 한 작품이었다며 '닭강정'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그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의 주역 류승룡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 속에 들어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찾기 위한 아빠 '최선만'(류승룡)과 인턴사원 '고백중'(안재홍)의 모험기를 그린 작품이다. 류승룡이 연기한 '최선만'은 아내와의 사별 후 어린 딸을 홀로 키운 아버지이자 회사 '모든기계'의 사장이다. 욕심 없이 하루하루의 행복과 안정만을 바라며 살던 그의 삶에 위기가 닥친다. 하나뿐인 딸이 하루아침에 닭강정이 되어버린 것. 어이없는 상황도 잠시, 선만은 딸을 되찾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소재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이었다. 박지독 작가의 원작 웹툰 '닭강정'을 드라마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실현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만화적 세계관을 현실로 끌어오는 게 최대 난관이었다. 류승룡은 어려움을 생각하기보다도 스토리의 힘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처음 한 줄 로그를 봤을 때는 '엥?'했다. 이병헌 감독님이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다.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내용을 보고, '감독님이 많이 힘들구나' 싶었다.(웃음) 그런데 몇 개월 뒤에 진짜 대본을 주셨다. 웹툰이 있다는 걸 알고 봤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충격 플러스 재미가 있었다. 이걸 내가 한다는 기대감도 있었고, 보시는 분들에게도 쇼킹함이 있으실 거라 생각했다."
"배우 인생에서 이런 작품은 딱 한 번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원한다고 해서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실까 설렘이 있었다.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겠지만 혹시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면 박지독 작가님의 '감자마을'도 해보자라고 얘기했다."
류승룡 역시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병헌 감독을 믿고 시작했다. "이병헌 감독님을 ('극한직업'에서) 한 번 경험해 보지 않았나. 모든 작품이 다 잘될 수는 없다. 배우건 감독이건 기복이 있다"라고 운을 뗀 류승룡은 "그럼에도 시도가 좋았다. 이런 독특한 소재를 만화처럼, 2D를 4D처럼 만들 수 있는 감독님은 이병헌 감독뿐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굉장히 크게 작용해서 출연을 결심했다"라고 굳은 신뢰를 드러냈다.
베일을 벗은 '닭강정'은 소재적으로도, 극적인 대사와 연기톤도 극 초반 적응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호불호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묻자 류승룡은 "제게는 극호였다"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저는 우리 작품이 다양성에 분명히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극 중에 나온 '민초단'(민트초코단)이나 파인애플 토핑 피자처럼 ('닭강정'은) 취향이 분명하게 작용한다. '1화만 잘 넘어가면 쭉 보실 텐데'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화를 못 넘긴 분들이 계신다더라. 그 문턱을 잘 넘으면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혹시 그걸 못 넘은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시도를 해보시면 괜찮을 거다. 고수와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는 고수를 못 먹었지만, 한 번 맛을 보니 고수만의 매력이 있더라. '닭강정'이 약간 그런 느낌이다. 막상 먹어보면 괜찮다"라며 "보시다 보면 (앞 부분이)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 같다는 걸 느끼실 것"이라고 설득했다.
류승룡과 안재홍의 콤비 활약은 '닭강정'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닭강정'을 통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수년간 함께 해온 이들처럼 찰떡궁합을 선보였다. 류승룡은 안재홍과의 현장을 떠올리며 "놀랍고 신기한 경험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작발표회 때도 우리는 '자웅동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마치 내가 꼬집혔는데 쟤(안재홍)가 아파하는 느낌이었다. 팀워크로 표현한다면 안재홍 배우가 말한 것처럼 랠리가 긴 탁구를 치는 듯했다"라며 "안재홍 배우가 정말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다. 곰인척하는 여우 같다. 모든 센서나 세포가 열려 있는 배우다. 저보다 16살 어리니까 앞으로가 훨씬 더 기대된다. 그의 스펙트럼이 정말 놀랍다"라고 극찬했다.
실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류승룡은 만약 딸이 있다면 안재홍이 사윗감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장인인 나와도 티키타카가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안재홍 배우가 굉장히 순정파다. 재밌고 책임감도 있고 건강한 진지함도 있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라면서도 "내일 (안재홍이) 내 얘기 잘 해줘야 할텐데"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류승룡은 배우로 산 지 30여 년, 매체 연기만 해도 20년 경력자다.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 '극한직업'으로 4천만 배우 타이틀을 썼고,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디즈니+ '무빙' 등을 통해 글로벌 흥행작에서 활약했다. "'천만 배우' 타이틀은 (스스로) 지운지 꽤 됐다"라고 말한 류승룡은 "제게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다작 배우'였다. 여태껏 뭔가를 이룬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다"라며 배우의 삶 그 자체에 만족해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지막 작품까지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거다. 어디에 국한되지 않고,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저는 '이런 작품은 안 나올 것 같아', '신선한 것 같아'하는 것들에 끌린다. '이걸 보여주면 깜짝 놀라실 것 같아. 도전해 보고 싶다' 하는 그런 미션들이 제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꾼이 많은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