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대학원] 韓 인공지능 선봉장, ‘AI KOREA’ 고려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공동 기획]
②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 AI 빙하기를 깬 퍼스트 펭귄의 아지트
이성환 인공지능대학원장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고대가 간다”
[편집자 주] 한국에 인공지능대학원에 들어선 지 약 5년이 지났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2019년부터 AI 인재 양성과 연구 성과를 독려하기 위해 인공지능대학원 사업을 설립, 지원해왔습니다. 이후 인공지능대학원은 한국 AI 발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려왔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학원에선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인공지능대학원 특집’을 연재하며 대학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2019년 처음 대학원을 설립한 5개 대학(KAIST, 고려대, 성균관대, GIST, 포항공대)을 시작으로 한국의 인공지능대학원의 상황을 심도 있게 보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한국 인공지능(AI) 발전에 선봉에 선 대학. AI KOREA, 고려대다.
고려대가 AI 선봉대학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퍼스트 펭귄’ 역할을 자처해서다. 고려대는 AI 연구에서 바닷속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의 도전정신과 용기를 강조한다. 실제로 2019년 9월 개원 후 1년 뒤, 세계 처음으로 AI 컬링 로봇을 개발해 해외 매체들에 톱으로 소개됐다. 기존엔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짧은 뇌 신호만으로 사람 의식의 깊이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연구 성과 등으로 해외 학회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을 이끄는 이성환 원장(특훈교수)은 “글로벌 AI 인재가 되기 위해선 남들이 다 하는 연구가 아닌,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로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혁신적인 사고력으로 새로운 AI 영역을 개척하는 도전정신을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특훈교수는 고려대가 세계적 수준의 탁월한 교육과 연구, 봉사 등에 업적을 낸 교원에게 그 품격에 부합하도록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실제로 고려대는 2019년 인공지능대학원에서 선정된 후 약 5년간 172편의 SCI(E) 논문과 67건이 우수국제학술대회 논문을 발표했다. 양보단 질에 초점 맞춘 연구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100여 건에 가까운 특허를 국내외에 출원, 등록한 점도 성과다.
AI를 빙하에서 끄집어내고 다양한 길을 만들고 있는 퍼스트 펭귄 연구자들을 양성하는 이성환 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새로운 AI 연구들이 탄생하는 곳
“AI 핵심 인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혁신적인 사고력입니다. 탄탄한 학문적 기초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빠르게 발전하는 AI 연구를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습니다.”
고려대에서 만난 이성환 원장은 AI 인재의 필수 역량으로 혁신적인 사고력을 강조했다. 패스트 팔로워보단 퍼스트 무버가 돼야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이러한 교육 전략으로 인재 양성과 연구를 하고 있다.
고려대의 연구 성과는 양적인 부분도 크지만, 질적인 부분에서 높게 평가된다. 적응형 심층 강화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 연구가 대표적이다. 기계학습 기반의 AI가 새로운 환경에서도 사람처럼 적응해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연구다. 세계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 연구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선보인 AI 컬링 로봇에 연장선으로 이뤄졌다. 평창올림픽 당시 이 원장 연구실은 사람과 대등하게 시합할 수 있는 AI 컬링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후 이 로봇이 온도, 습도, 빙결이 달라져도 사람과 대등하게 시합할 방안을 연구했고, 그 결과 적응형 심층강화 학습을 만들어냈다. 참고로 AI 컬링 로봇은 2016년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 이후 인간을 능가한 로봇으로 여러 언론사에 소개됐다. 알파고는 바둑을 두는 뇌 역할을 했다면, AI 컬링 로봇은 뇌 역할은 물론 스톤을 투구하는 행동까지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 연구는 세계 최고 권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게재됐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1면 등 실렸다.
짧은 뇌 신호만으로 의식의 깊이를 정량화할 수 있는 의식 지표인 ‘ECI(Explainable Consciousness Indicator)’ 연구도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의 성과다. 의식의 정량화는 수면 장애 환자,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각성과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마취 심도 측정, 의식 장애 환자의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뇌과학 분야의 핵심 기술이다. 이 원장은 “수술 중 환자의 마취 심도를 측정한다거나 식물인간과 같은 의식 장애 환자의 진단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서 “이런 환자는 데이터를 길게 획득하기 어려운데 짧은 신호로 신뢰성 있는 지표를 계산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술할 때 어려운 점은 환자의 마취 깊이를 정확하게 모니터링이 안 되는 점”이라면서 “마취량이 심하면 부작용이 생기거나 의식이 깨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중간에 마취에서 깨면 큰 트라우마로 연결될 수 있는데 우리 연구는 마취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어 이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세계 권위 과학저널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최근엔 사람이 상상한 문장을 음성으로 출력해내는 ‘BTS(Brain to Speech)’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부분을 별도 작업 없이 음성으로 표현해내는 기술이다. 이 원장은 “BTS 기술은 이제 막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과 음성 합성 기술을 보유한 고려대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우리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음성 합성에서도 단 3초의 음성만으로 원하는 목소리와 말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음성을 실시간 음성으로 번역해내는 ‘Speech to Speech Translation’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퍼스트 펭귄들의 양성소, AI KOREA
이처럼 AI 분야 선봉 역할을 하는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인재 양성에서도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 올해 2월 기준 19명의 박사와 58명의 석사가 졸업했다. 이들은 ‘AI KOREA’의 옷을 입고 빅테크 기업을 포함한 여러 기업의 AI 특전사 역할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한국 AI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200명이 넘는 학생이 AI 특전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 원장은 “2019년 가을학기 28명의 석박사통합과정 선발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는 석사 과정을 신설해 200여 명이 넘는 재학생을 지도하고 있다”며 “아마존, 메타,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네이버, 넷마블, 삼성전자, 엔씨소프트 등 유수 기업과 협약해 공동 연구 기회와 인턴십을 제공하는 등 학생들이 실무형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LG CNS와 공동으로 기업 인재의 AI 수준을 높인 것도 성과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LG CNS와 컨설턴트 육성 과정을 운영하며 지난해 기준 4기에 걸쳐 120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이 과정은 20주 교육을 통해 직원들의 AI 기초 지식을 높여 산업 현장에서 기술 활용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원장은 “산업 현장에선 AI 적용을 강조하지만, 기술과 인력 부족으로 AI 전환이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컨설턴트 과정을 통해 산업이 가진 고민을 대학이 함께 풀고 현장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이 이같이 실무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것도 기존에 없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대학은 미래 AI 핵심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을 위해 교육기관의 틀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산업계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업들도 다양한 산학협력을 통해 우리 인재들이 실제 산업 현장의 실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실용 관점의 연구를 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약 60건의 산학협력을 진행했다. AI 융합 교육 과정을 헬스케어, 게임, 에이전트, 문화콘텐츠, 금융, 국방 등 6개로 지정하고 이 분야에 특화해 산학협력을 진행했다. 이 원장은 “AI의 모든 분야를 단기간에 잘하긴 힘들다”면서 “특화 분야를 정하고 이곳에 있는 기업들과 꾸준히 연계해 학생들이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긴 호흡으로 AI 판 뒤흔들겠다”
이 원장은 AI KOREA를 차별화하기 위해 교수진 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17명의 전임 교수와 3명의 산학협력중점 교수, 1명의 연구교수가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는 ‘AI 학술인재’, ‘AI 산업인재’, ‘AI 기술창업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수진을 구성하고자 했고, 지난 4년 반 동안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교수진을 물색해 임명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 원장은 “우리는 교수진을 물색할 때 세계 수준의 연구 성과와 AI 기술 응용 능력을 중점에 뒀다”며 “2028년까지 전임 교수 25명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데, 신임 교수를 초빙할 때도 이러한 능력을 중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원 확보가 쉽진 않다고 밝혔다. 현재 AI 인재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만큼, 높은 능력이 있는 전문가는 연봉이 높아서다. 이 때문에 연구비와 인력 지원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AI 인재 양성도 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전문가급의 교수 한 명을 채용하는데 학교 입장에선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이 AI 강국이 되기 위해선 R&D를 포함한 예산을 무턱대고 줄이기보단, 학생들이 걱정 없이 우수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인재 양성에는 기다림도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인재는 기초 연구부터 창의적인 연구 등 다채로운 학습이 필요하므로 긴 호흡을 갖고 지켜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석·박사급 AI 핵심 인재 양성으로 세계를 선도할 연구역량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트랜스포머 신경망처럼 세계 AI 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할 인력양성을 한 걸음씩 진행하고 있으니 긴 호흡을 갖고 한국의 AI 경쟁력을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