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아이 보는 만화에 어른도 빵빵"…'브레드이발소' 아버지, 정지환 대표를 만나다
처음에는 아이가 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TV 끌 것을 종용하다가 같이 보기 시작했다. 깔깔 웃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빵빵 터졌다. '브레드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았다. 열정은 넘치지만, 태생부터 '밀크(Milk)'가 아닌 오자 '윌크(Wilk)'는 사회 초년생의 내 모습 같았고, 일은 잘하지만 퇴근만 기다리고 있는 초코는 일에 좀 익숙해진 내 모습 같았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직원들, 그리고 베이커리타운의 귀여운 '빵'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브레드이발소'를 만든 정지환 감독이 궁금해진 이유다.
'브레드이발소:셀럽 인 베이커리타운'은 브레드 사장님과 직원 초코, 윌크를 비롯해 브레드이발소가 있는 베이커리타운의 셀럽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지난 2019년부터 시즌제로 방송된 TV 애니메니션 '브레드이발소'의 첫 극장판으로, 상영시간 73분 동안 다양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첫 극장판을 내놓는 제작사 몬스터 스튜디오의 CEO 정지환 감독을 만나 '브레드이발소'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들어봤다.
Q.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만으로 지난 25일 일일 박스오피스 5위, 개봉 하루 전 예매율 4위에 오르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개봉을 앞둔 느낌이 궁금하다.
"감독이기 이전에 회사의 대표이다 보니, 아무래도 관객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매일매일 예매율을 체크하며 살 떨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웃음) 시사회 때 통영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를 만나 뵌 적이 있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고, 제가 자란 곳과 가까워서 통영이 얼마나 먼 곳인지 알고 있다. '브레드이발소'를 극장에서 보려고 아이 셋과 상영 시간보다 몇 시간이나 먼저 서울에 와서 시간을 보냈더니, 아이들이 너무 정작 극장에 들어갈 때 너무 피곤해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아이들이 잠도 안 자고 끝까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성공했다'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셨다더라. 첫 극장판을 준비하며 경험하지 못한 스트레스도 받고 있지만, 사람들이 제가 만든 작품을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말 좋다. TV로 방영할 때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우리가 콘텐츠를 만드는 목적은 이거였구나'라고 관객을 만나며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Q. 처음 극장판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보통 극장판이라고 하면 주요 캐릭터들이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브레드이발소'는 과감하게 기존 에피소드 구성을 고수했다.
"저는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건 사람들에게 내놓을 수 없다'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원래 90분 정도 분량의 긴 스토리를 극장판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스토리를 끝까지 재미있고, 완성도 있게 끌고 나가라면 지금 회사의 모든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감독으로는 욕심이 나지만, 사장으로는 망설여졌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접근했다. 극장에 내놓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구성의 에피소드를 내놓게 됐다. 그게 아이들에게도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조금 더 역량을 키워, 다음에 풀 에피소드로 전개되는 오리지널 극장판도 계획하고 있다."
Q. 보통 아이들이 보면 애니메이션을 보면 동물부터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에는 공주나 마법 소녀,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에는 공룡과 로봇 등이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빵'이라는 소재와 '이발소'라는 공간을 처음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제가 유학 후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엄청나게 디저트 문화가 발전해 있더라. 빵과 디저트로 캐릭터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처럼 동물이나 로봇이 나오지 않는다고 초반에는 무시도 받고, 불이익도 받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브레드이발소'만의 차별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유와 식빵의 디자인도 귀엽게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경험들 덕분인지, 저는 '스토리로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 제 통장 잔고는 500만원뿐이었는데, 자신감은 빵빵했다. '빵과 우유라서 안 돼', '애니메이션이라 안 돼' 등의 이유로 약 2년 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그걸 극복하니 길이 뚫리더라."
Q. 말씀처럼, '브레드이발소'의 가장 큰 무기로 '스토리'를 꼽고 싶다. 저 역시 딸아이가 보는 애니메이션을 옆에서 같이 보다가 빠져든 경우다. 처음부터 어른들까지 시청 폭을 겨냥하고 만든 건가.
"스토리에 자신있던 포인트가 그 지점이었다. 어른들이 봐도 재미있고, 아이들이 봐도 유해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제가 과거 아이코닉스에서 '뽀로로', '타요' 등의 작업에 참여하며, 아이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스토리에 트레이닝이 됐다. 어른들 쪽에는 제가 유학을 마친 후 라이엇 게임즈에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어른들도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더럽게 웃기지 말자, 야하게 웃기지 말자, 폭력적으로 웃기지 말자'라는 세 개의 원칙은 아이들을 위해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봐도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된 거다."
Q. 에피소드마다 완성도가 높다. 한 회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아서 묵혀두었다가 3년 만에 완성된 에피소드도 있다. 기본 파일만 보면, 한 에피소드를 완성하기까지 약 50번 정도 수정 과정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수첩을 들고 다닌다. 수첩에서 에피소드마다 자체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개선할 방향을 메모한다. '브레드이발소' 시즌마다 유튜브를 통해 반응을 체크했다. 시즌 3이 패러디가 많아서 시청자들에게 안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저에게 굉장히 아팠던 댓글이 '시간 더 줄 테니까 완성도를 높여라'라는 뉘앙스의 장문이었다. 그래서 시즌 4는 더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Q. 브레드 사장님은 열정적이지만 모자란 직원 윌크에게 쓴소리를 많이 하지만, 아이들도 그것이 미움이 아닌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더라.
"사실 '브레드이발소'는 모두의 성장 스토리다. 브레드는 천재적인 재능은 타고났지만, 사장으로는 미숙하다. 윌크는 애사심은 강하지만 모든 일에 서투르다. 윌크에게는 저의 20대 때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저는 처음부터 잘했던 게 하나도 없었다. 늘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다. 그런 윌크는 이발사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나아간다. 시즌 5, 6쯤 예상하는데 초코는 결핍된 사랑이 채워지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성장할 거다. 초코의 가족이 언급된 게 없었다. 시즌 1부터 시즌 5~6까지 스토리 라인을 계획하고 설계했다. 브레드, 초코, 윌크는 부족한 모습을 채우며 성장한다. 그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 보는 이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다."
Q. 첫 극장판의 제목이 '브레드이발소: 셀럽 인 베이커리타운'이다. 셀럽을 중심에 둔 이유가 있을까.
"시즌 1이 브레드의 성장, 시즌 2가 윌크의 성장, 그리고 시즌 3은 오락적인 면을 생각했다. 시즌 4는 초코의 스토리로 가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풀기 위해 마카롱과 셀럽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마카롱 무대와 초코를 연결시키기 위해 셀럽 스토리를 넣게 됐다. 개인적으로 팝콘 감독을 좋아하는데, 많이 등장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웃음)"
Q. Mnet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를 모티브로 한 '쇼미더머랭'이 등장한다. 해당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가져온 이유가 있을까.
"제가 랩은 못 하는데, 힙합을 좋아한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흑인들의 억울함과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장르이지 않나. 그걸 윌크가 하길 바랬다. 실수해서 구박받는 거지만, 그 마음을 랩으로 승화시키자고 생각했다. 왜냐면 랩은 그렇게 탄생한 거니까. 그러다 보니 '심사위원은 누가하지?'라고 생각하다가 시즌 9를 모티브로 삼게 됐다. 릴보이가 우승을 했던 시즌이다. 윌크는 래원을 모티브로 했다. 래원은 대중들에게 호응과 질타를 함께 받으며 상위권으로 올라간다. 윌크와 비슷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래퍼 스윙스, 기리보이, 자이언티, 그리고 도끼를 모티브로 심사위원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도끼를 생각하고 만든 '토끼'를 보고 릴러말즈라는 반응도 있더라. 그것도 재미있었다."
Q. 윌크가 부르는 곡에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살다 보면 되게 열심히 했는데도 원하는 걸 못 얻는 경우도 많다. 7전 8기라고 하지만, 사실 9번 놓치고, 10번째에 얻어도 정말 성공한 삶이지 않나. 저는 극소수의 1등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원래 세상은 힘들어, 그런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살아. 그러다 보면 좋은 날도 오는 거야.' 그런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Q. 그런 의미로 윌크의 '월요일 송'이 등장한 건가. '오늘은 즐거운 월요일,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가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윌크에 대해 저의 20대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말씀드렸는데, 전 이상하게 진짜 출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매일 학교에 있었는데, 직장 다닐 때도 그랬다.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서 아무도 없는 회사에서 일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이상했던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 (웃음)"
Q. 실제 '브레드이발소'를 언급한 셀럽들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영화 '보호자' 개봉 전 인터뷰 당시 김남길은 조카가 보는 '브레드이발소'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남길 같은 훌륭한 배우님이 언급해 주셔서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마 말씀해 주신 게 프레첼 경찰이 구멍이 뚫려있어, 초코볼 총알을 피하는 장면인 것 같다. 조승우 배우님의 반려견이 '브레드이발소' 캐릭터와 사진 찍은 것도 감사했다. 그리고 시사회 때 와주신 가수 이지혜 님 가족에게도 감사하다. 사실 셀럽뿐만 아니라 앞서 말씀드렸듯이 '브레드이발소'를 행복하게 봐주신 모든 관객에게 감사하다."
Q. '브레드이발소' 극장판 상영으로 수많은 굿즈를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브레드이발소'의 미래는 어디까지일까.
"먼저 회사의 역량을 키워서 풀 에피소드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 그때는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모두 쏟아부을 생각이다. '왕좌의 게임'이라는 시리즈 속 호도라는 캐릭터가 있다. 시즌 1부터 나오는 캐릭터인데 시즌 6에서 그 캐릭터의 이름이 왜 '호도'인지가 밝혀진다. 그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로 촘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레드이발소' 역시 촘촘한 서사로 이어질 예정이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캐릭터들의 성장 스토리가 앞으로의 시즌에 이어질 거다. 큰 흐름으로 빌드업하고 있다. 기대해달라. 아마도 오는 9월 새로운 시즌이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브레드이발소:셀럽 인 베이커리타운'은 개봉을 하루 앞둔 29일 오후 4시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예매율 4위에 오르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을 비롯해 아직 극장이 서툰 아이들에게까지도 좋은 선물이 될 것. 3월 1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7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