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민아, 천천히 뜨겁게 올곧게
영화 '3일의 휴가'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3일의 휴가를 얻어 딸을 보러 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이미 애잔함이 더해지는 영화에 처음으로 모녀 호흡을 맞추는 김해숙과 신민아가 마음을 더한다. 약 2달 동안 함께 지내며 음식 취향부터 성격까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이다. 그 교감은 고스란히 엄마 복자(김해숙)와 딸 진주(신민아)가 된다.
신민아는 과거 인터뷰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영화 '3일의 휴가'를 통해 이뤘다. 신민아는 "누구나 이별을 하기에,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본이 더 심플하게 느껴졌고요"라고 당시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사실 되게 센 영화들이 많잖아요. '3일의 휴가'는 그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질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도 딸이잖아요. 그래서 고스란히 엄마를 향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어요.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보다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반가웠고, 그 뜨거운 느낌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해숙 선생님께서 먼저 캐스팅되셔서, 시나리오를 볼 때 자연스레 선생님을 떠올리며 읽었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3일의 휴가'는 복자가 진주를 보러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복자와 진주가 가진 사연은 과거 회상을 통해 전개된다. 이에 신민아는 육상효 감독과 감정선에 대한 대화를 통해 진주에게 다가갔다.
"진주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잖아요.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 시간도 있었을 거고요. 진주가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있잖아요. 현재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복용하고 있고요. 진주의 감정 상태에 어떻게 선을 맞춰갈지 이야기했고, 대사의 뉘앙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극본보다 조금 더 현실감 있게 하려고 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저와 생각이 비슷했고, 제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셨어요."
진주가 엄마를 추억하는 방법은 바로 '음식'이었다. 엄마가 있을 때는 혼자 사는 집에 그렇게 바리바리 싸왔다고 구박하던 그 '음식'이 엄마를 떠올리는 가장 큰 매개체가 됐다. 그래서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두고 엄마가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와 엄마의 백반집을 운영한다. 신민아는 "대단한 스킬보다 칼질 정도만 연습해서 맛있게 요리하는 손의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이라고 자신을 낮췄지만, 그를 도운 제이킴 스타일리스트는 "신민아는 요리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열심히 배우고 따라 하면서 쉴 새 없이 노력했다"라고 감탄했다.
감정적으로 표현적으로도 많은 고민 후에 임했지만, 역시 현장에서 감정을 주체하긴 힘들었다. 눈물을 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눈물을 참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들이 쌓였다. 신민아는 그중 두 장면을 언급했다.
"햄버거 가게에서 진주가 엄마랑 대면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회상하는 장면 속에 아이스크림을 두고 있는 엄마가 등장하잖아요. 엄마는 '벌써 다 잊었는데, 별것도 아닌 것 같고 힘들어하냐'라고 하시지만,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울컥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눈물이 너무 나서 대사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많이 올라왔어요."
"선생님께서도 '너 어떻게 해, 불쌍해'라고 딸의 마음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감독님께서도 계속 '지금부터 울면 안 된다'라고 하셨고요. 진주도 꿈을 꾸면서 알았을 거예요. 이 좋은 꿈이 깨지 않기를 바랐을 거예요. 그 모습을 강조하려고 했어요. 잠들지 않으려고요. 그런데 신기하게, 엄마를 계속 그리워하는 진주를 연기하다가 엄마의 손길이 스치는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약간은 해소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3일의 휴가' 시사회 현장에서 김해숙의 딸과 신민아의 엄마가 마주하는 순간도 있었다. 신민아는 김해숙의 딸에게 '딸 뺏길 수도 있어요'라고 했고, 김해숙의 딸은 '벌써 뺏긴 것 같은데요'라고 이야기했다. 반대로 김해숙은 신민아의 엄마에게 ''딸 뺏을 수도 있어요'라고 했고, 신민아의 엄마는 그에게 '가지세요'라고 쿨하게 답했다. 영화를 중심에 둔 묘한 지점들이었다.
"저는 엄마랑 친구같이 친해요. 복자와 진주 정도의 이야기는 없지만, 그래도 엄마와 딸의 관계 속에 있죠. 고민 상담도 편하게 하는 모녀예요. 어렸을 때는 엄청 혼났어요. 엄마가 진짜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무서운 엄마가 한 여자로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걸 좀 빨리 느낀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느껴서, 그때부터는 친구같이 친하게 지내요."
'3일의 휴가' 속 진주는 엄마를 잃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후,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우울증으로 남편과 이혼하고 양육권까지 뺏길 위기에 있는 선아 역을 맡아 힘들어하는 마음을 영상에 옮겨냈다. 해당 모습은 당시 실제 우울증에 있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신민아는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캐릭터들의 마음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물에 빠진 솜처럼 무거운 느낌이라면, 진주는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없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뭔지 잘 모르겠는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선아가 더 잠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진주는 더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던 중에 과호흡 증상을 느끼고, 냇가에 소리치기도 하잖아요. 조금의 무게감이 달랐던 것 같아요."
"사실 사람들이 우울증은 아니더라도,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울한 감정은 가지고 있잖아요. 차가운 걸 만지면 차갑다고 느끼고요. 진주도 엄마와의 과거가 없더라도,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이 있잖아요. 그런 큰 아픔이 있으면, 우울한 감정이 뒤따라오는 게 당연한데 '이상한 건 아닌가?'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정산질환 관련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며 그것이 상황이고 질병일 수 있다는 인식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신민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활짝 웃는 미소가 떠오른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배우,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착 붙는 느낌의 사람인데, 사실 '배우 신민아'를 떠올리면 영화 '경주', '디바', 드라마 '보좌관'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처음 마주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신민아의 묘한 지점들은 도시라는, 정치계라는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특히, 영화 '경주'는 신민아가 노개런티로 참여한 작품이었던 만큼 그 애정을 짐작하게 한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마음가짐은 비슷했던 것 같아요. '보좌관' 때는 '이 연기를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보지 않았던 연기였어요. 찍을 때도 낯선 부분이 있었고요.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경주'는 예산이 엄청 적은 영화로 시작했어요. 그때의 저는 아마 지금의 저와는 또 다른 열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장률 감독님이랑 박해일 선배님이랑 너무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20대 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는 작품도 예술 영화에 가까운 작품이었고요. 대중적인 작품에서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면,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여러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할 때는 '집중해'라고 저를 몰아치게 되지만, 하고 난 후에는 그 재미가 있더라고요."
신민아는 영화 '3일의 휴가'에서 함께했던 김해숙의 인터뷰를 읽어보며 느낀 바가 있다고 했다. 여전히 배우로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도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점, 그 열정에 대해서다.
"제가 17살 때 데뷔하고 지금까지 꽤 많은 생활 동안 '배우'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사실 저는 취미나 이런 것도 참 오래 못 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에는 몸은 지칠 때도 있지만, 마음은 참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요즘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아직 더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이 남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인터뷰를 보니 선생님께서도 그러시다고 하셨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선생님이시니까 저도 선생님 나이가 되어서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신민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는 고민 후 천천히 답변을 이어갔고, 때로는 자기 생각을 길게 이어갔다.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미소 속에 여유가 더해졌다. 그 모습 그대로 '배우 신민아'가 걸어가고 있다고 느껴진 순간이다. 천천히, 뜨겁게, 그리고 올곧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