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시완,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자신에게도 '프로약속러'
임시완에게 '프로약속러'라는 애칭이 붙었다. 지나칠 수 있는 "밥 한번 먹자"라는 스쳐지나갈 수 있는 말을 가정 방문을 하면서까지 지켜낸 임시완의 면모가 선배 배우 이병헌, 하정우의 입을 통해서 공개되면서다. "제가 생각보다 어색한 시간을 잘 견디는 것 같아요. 그게 제 강점이 되겠네요"라고 임시완은 인터뷰 중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참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임시완은 영화 '1947 보스톤'에서 서윤복 역을 맡았다. 서윤복은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가정 형편으로 '제 2의 손기정'이 되고 싶었던 꿈을 가슴에 묻어놓은 인물이다. 하지만 손기정이 해방 후, 세계대회에 나갈 후배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발탁되며 꿈에 가까워진다. 서윤복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나선다. 국제 대회에 선 그는 어찌 보면 다시 찾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역사적인 면보다 그분의 마음가짐에 대해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그 목표를 '완결지어야 한다'라는 생각은 국가대표 분들처럼 저에게도 매 순간 작품에 임할 때마다 갖게 되는 생각이거든요. 그 마음을 극대화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목표 지점이 다르잖아요. 국가대표는 한 스포츠 종목이고, 저는 배우이다 보니까요. 하지만 열정이나 마음가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는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국가대표 마라토너 서윤복을 담아야 했다.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졌다. 촬영 전부터 마지막까지 약 8개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체지방 6%에 이르기까지 식단과 훈련을 병행했다. 마라토너의 몸을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틀이나 물을 끊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임시완이 표현한 것은 잘 달리는 마라토너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마라톤에 타고난 갈라진 근육, 턱 끝까지 숨이 찬 모습, 후들거리는 다리 등을 관객의 마음에 전했다.
"숫자에 대한 목표치보다는 서윤복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생각했어요. 몸이 되게 다부지시더라고요. 그걸 따라가야 서윤복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형적인 걸 따라가고자 하다 보니 체지방 6%까지 도달한 거죠."
"단수를 하게 된 것도 수분이 마르면서 근육이 더 쪼개진다는 말을 듣고 나서 였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데, PT 전문 트레이너님과 상의한 후, 이왕 하는 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겠다고 했어요. 웃통 벗고 운동하는 장면을 앞두고 이틀 단수를 했는데, 아찔한 경험이었어요. 이틀 동안 물을 끊으니, 눈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스스로의 만족도를 위해서 극한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인생에 한 번,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촬영하는 동안에는 "내가 국가대표 마라토너다"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그런 마음은 더욱 그를 집중하게 했다. '1947 보스톤'은 호주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당시 임시완은 약 1달 동안의 촬영 동안 촬영지인 작은 동네에서 매일 달리기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러너의 로망이 새로운 공간에 가면, 그곳을 뛰어보고 싶어요. 그게 제 로망이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호주의 작은 도시에서 촬영했는데, 개인적으로도 많이 뛰었어요. 마냥 뛰는 게 힘들지만은 않았어요. 그런데 좀 신기했던 건,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는데 거기 지역 신문 1면에 저희가 나왔어요. '한국인들이 여기에서 촬영하고 있다, 우리 마을이 예뻐서 촬영지로 선택했다'라고요. 제가 뛰는 모습이 1면으로 대서특필이 되니 되게 신기했어요."
손기정 역의 하정우는 영화 '국가대표'(2009)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선보인 바 있다. 임시완은 '국가대표'에 한정되지 않은 "좀 더 포괄적인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라고 남다른 감사를 전했다.
"(하)정우 형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분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복합적인 상식과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하)정우 형에게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었거든요. 저는 연기할 때, 하나에 몰입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진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저때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고요. 그런데 (하)정우 형은 컷과 컷 사이에 완급 조절을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내려놓는 작업에도 능하시고, 그렇기에 촬영 때 집중도도 극대화되시고요. '저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죠."
이병헌이 '유퀴즈'에서 밝혔던 것처럼 임시완은 하정우의 집에 찾아가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하정우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1년 중 굉장히 중요한 날, 남자 둘이 집에서 보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프로약속러' 임시완의 행보였다.
"제가 촬영 중에 몸을 유지해야 해서 먹는 게 자유롭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하)정우 형이 '소고기 사줄게. 소고기 먹자'고 하셨어요. 소고기는 그래도 닭가슴살 대안이 되니까요. 일반식 중 그나마 죄의식이 덜어지는 음식이었어요. 그때가 1월 1일이었나, 그즈음이었어요. 제가 시간이 된다고 해서 갔어요. 사람을 처음 사석에서 만나면 어색하고 서먹한 시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있어요. 어색한 시간을 잘 견디는 것 같아요. (웃음)"
임시완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데뷔해 로맨스, 청춘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장르와 결을 선보여 왔다.
"연기자로서, 어떤 작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기회가 어떻게 올지 모르니, 어떤 것이라도 담아낼 수 있게 나를 만들어 놓자'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배우로서 제 방향성이기도 하고요. 백지화하는 과정이 제일 주안점인 것 같아요. 이것도, 저것도, 다른 새도 할 수 있는 거요. 그게 제 목표였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임시완'이라는 배우가 가진 색과 방향성이 정해지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집중하고 극대화해서 임시완이기에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죠."
"저는 연기가 너무 좋아요. 작품 속에서 저만이 가진 숙제가 있고, 저만이 내놓는 답이 있잖아요. 어떤 감정과 과정을 거쳐서 눈에 보여지는 결과가 연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기에 저만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그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숭고한 것 같아요. 또, 그 연기를 본다고 해도 제 내면을 다 파헤칠 수는 없고요. 제 고유한 영역을 지켜갈 수 있다는 점이 연기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임시완은 차기작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 합류했다. 아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임시완은 글로벌 진출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경계가 허물어졌잖아요. 잠재적 시청자분들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