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효섭, 자신의 작품을 보고 처음 눈물 흘린 이유 속으로
* 해당 인터뷰에는 '너의 시간 속으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안효섭은 자신이 "눈물이 없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의 마지막 화를 보고 같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왜 눈물을 흘리게 됐을까.
'너의 시간 속으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 연준(안효섭)을 그리워하던 2023년의 준희(전여빈)가 우연히 받은 카세트를 통해 1998년에 살고 있는 18살 소녀, 민주(전여빈)의 몸에서 깨어나며 연준과 꼭 닮아있는 시헌(안효섭)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큰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안효섭은 극 중 연준과 18살 소년, 시헌 역을 맡았다. 나이도 다르고, 살아가는 시대도 다른 두 인물을 관통해야 했다.
"두 명이었지만, 연기를 해야 하는 나이대가 많았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보여지는 것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저희끼리 디테일들을 구별해 놓긴 했는데요. 고등학생인 시헌이는 제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머리 감고 툴툴 털고 나온 것 같은 생머리 느낌으로 연출했고요. 20대 때는 좀 더 꾸며서 가르마를 탄 머리로 했어요. 30대 때는 자연스럽게 쓸어 넘기는 머리로, 40대 때는 고되었던 시헌이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러프하게 가자고 생각했어요. 시헌이라는 인물이 한평생, 아니 두 평생에 거쳐 준희와 인규의 죽음을 막기 위해 에너지를 부은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자기 모습을 챙길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하며 완성한 모습이고, 후회는 없어요."
"사실 외모보다 중요한 건 감정선이었어요. 상상을 해야 하는 작품이었거든요. 이 나이에 시헌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하며 임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얼굴에서 바꿀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눈빛'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이 때마다 시헌이의 눈빛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최대한 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고, 몰입하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변화의 시기마다 눈빛의 깊이가 달라 보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안효섭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준희와의 만남의 순간마다 뇌리에 각인되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편의점에서 옆에 있는 준희를 보며 서서히 눈물이 고이는 연준의 모습은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안효섭은 눈물 연기를 계획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최대한 시헌이의 삶을 상상했어요. 편의점에서 연준이 준희를 만나게 되는 장면은 '10년 동안 못 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제 계획은 살짝 글썽이는 정도였는데, 눈물이 흘렀어요. 감독님께서 눈물을 줄여보자고 하셔서 지금의 장면으로 완성됐어요."
40대 시헌과 30대 연준이 만나는 순간에도 안효섭은 벅차올랐다. 이틀은 40대 시헌의 모습으로, 이틀은 30대 연준의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다.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로 보면서 대화의 감정선을 고민했다. 연준이 비행기에 타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40대 시헌은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줬음에도 30대 연준은 비행기에 오른다. 자신이 사랑하는 준희와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말 어려웠어요. 자신이 죽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거고요. 원작에서는 쿨하게 걸어 들어간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많은 대화로 만들어 간 장면이었어요. 제가 쿨하게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감정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눈물도 흘렀고, 두려움도 느꼈고요.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사실 그 의도는 '우리만의 게임이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이해할 그림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이 정도의 감정과 표현이 맞나요?'라고 계속 대화를 하면서 완성했어요."
많은 대화로 만들었고, 많은 고민으로 임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안효섭은 시헌과 연준에게 깊이 녹아있었다. 결과물을 봤을 때, 그가 눈물을 흘린 이유이기도 하다.
"제가 처음으로 제 작품을 보면서 마지막 화에 같이 울었던 것 같아요. 진짜 잘 안 울거든요. 그런데 시헌이라는 인물이 마음 깊이 남아 너무 아프고, 아련해요. 긴 세월 동안 얼마나 혼자서 외로웠을까. 그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시헌이의 삶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안효섭으로도 외로운 시절이 있었고, 혼자 어떻게 저걸 버텼을까 공감하며 눈물이 난 것 같아요."
같은 결에서 '너의 시간 속으로' OST 중 한 곡인 故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역시 애정하는 곡이었다. 안효섭은 "어릴 때부터 즐겨 부르고 좋아했던 곡"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세상을 떠난 故 서지원 님도 해외에서 혼자 넘어와서 음악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동질감도 느껴졌어요. 보자마자 '이 노래로 하면 안 될까요'라고 할 정도로요. 과거로 돌아가는 모티브가 되는 여러 곡의 후보가 있었거든요. 저도 캐나다 토론토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시간을 보냈어요. 사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외롭다고 느끼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어릴 때 혼자 한국에 나와 있으니, 친구 어머님들이 걱정해 주시고 챙겨주려고 하셨거든요. '난괜찮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힘들었던 마음들이 쌓였던 것 같아요. 그것이 아마도 시헌이의 삶에 투영된 것도 같고요."
'너의 시간 속으로'를 '안효섭의 속으로' 깊이 담고 있었기에 나온 아이디어도 있었다. 겉으로는 40대 시헌이의 직업도 그랬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40대 시헌이의 직업은 '웹툰 작가'가 아니었다.
"원래 시나리오 속 40대 시헌이의 직업이 배달 앱 회사 CEO 였어요. 미래를 알기에 성공할 분야의 CEO가 된다는 콘셉트였는데,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웹툰을 추천했어요. 왜냐면 시헌이가 고등학교 때, 만화책 보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그 연결을 살려서 낸 아이디어였어요. 다행히 작가님께서 받아들여 주셨죠."
"준희와 시헌이 바다에서 헤어질 때 '너의 시간 속으로'라고 내레이션이 나오잖아요. 원래 그 대사가 없었어요. 네가 어디에 있든지 찾아갈 거라는 대사가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대너에 이어서 '너의 시간 속으로'를 붙여도 되는지 작가님께 여쭤봤어요. 큰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제목도 주제도 '너의 시간 속으로'잖아요. 콕 집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감독님, 작가님께서도 좋다고 해주셔서 넣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화 속에서 이어진 아이디어였다. 그만큼 시헌의 삶에 이입했고, 고민했기에 나온 말들이었다. 안효섭은 "감독님과 의견을 많이 주고받고, 가볍게 말하면 수다 떨면서 나온 아이디어 같아요"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그 속에도 고민의 깊이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 말은 사랑에 대한, 그리고 운명에 대한 안효섭의 생각과도 이어진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기적이어도 안되고, 이타적이기만 해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신뢰를 발판으로 서로의 노력이 같이 쌓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희생하는 거나, 사랑하기에 무조건 바라는 건 언젠가 균형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사랑은 찾아오는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랑을 공부하는 거라 생각해요. 연습도 필요하고요."
"운명을 믿어요. 그런데 그 운명을 제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요즘 마음이 편해진 이유가 있는데요. 제 선택으로 인해서 모든 게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지금 마시는 물이 그냥 물 한 모금일 수도 있지만, 물 마시는 것에 감사하기로 선택한 순간 굉장히 소중해지는 것처럼요. 많은 분이 알고 있는 당연한 말 같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계속 노력하고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효섭은 데뷔 후, 열심히 활동을 이어왔다. 몸도 마음도 지칠 법했다. 스스로를 잘 다독이고 있을까.
"일단 많이 못 챙겼어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생각은 없었는데(웃음) 좋은 대본이 있으면, 하고 싶어지니 하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아도 제 컨디션이 안 따라주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쉼'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낙천적인 편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인정을 안 해요. 인정하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매 순간 재미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하는데 체력적으로 부침이 오면 제 모습도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되게 건강합니다."
안효섭은 현재 차기작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을 검토 중이다. 또 다시 그 앞에 새로운 도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안효섭이 '선택'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더해진다. '선택했기에, 그 소중함'을 더없이 즐길 준비가 된 안효섭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