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절벽 시대] “집도 못 사는데, 결혼은 무슨”… ‘내 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숙제
최근 국내 합산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15년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정책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에서 비판 받는 걸까? 정부가 제시한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차피 집 못 사”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어처럼 퍼졌다. 갖고 싶었던 비싼 물건, 먹고 싶은 음식 등을 위해 과도한 지출을 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월 전국 만 19~34세 청년 4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2%가 “내 집 마련의 필요성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약 76.3%가 “자신의 소득만으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라고 응답했으며, 31.3%는 자신을 ‘주거 빈곤층’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편성한 2024년도 예산 중 9조 원을 청년층의 주거 지원 항목에 편성했다. 전체 예산인 15조 4000억 원의 약 58.4%에 달하는 규모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층 인식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 이러한 정부의 대책은 기혼자를 위한 처우 개선에만 머물러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결혼이 여전히 출산의 전제 조건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인 주거환경의 확보는 청년들이 결혼을 결정하고 이후 자녀 계획을 세우는 데 가장 큰 기준이며,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청년층 ‘결혼 패널티’ 해소
정부는 청년층의 결혼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신혼부부와 맞벌이 가정의 ‘결혼 페널티’를 없애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청년이 더 이상 주거 문제를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결혼 페널티란 결혼하면 1인 가구일 때보다 각종 지원이나 복지 혜택 등을 적용받는 데 불리해지는 사례가 많아 마치 결혼이 벌칙 같다는 뜻을 나타내는 신조어다. 청년층은 1인 가구일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2인 가구보다 다양하다. 각자 일을 하는 남녀가 결혼으로 2인 가구가 되면, 기본 소득이 올라가 저금리 대출이나 청약 자격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결혼 후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재 신혼부부가 내 집 마련을 위해 저금리의 ‘디딤돌 대출’을 받으려면 부부합산 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청년 1인 가구의 경우 조건이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혼인신고 시에는 대출 지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또한 미혼과 기혼 관계없이 소득 수준 5000만원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결혼 패널티’를 해소한다고 해도, 출산율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부부가 된 이들이 모두 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비중은 53.5%이며, 2018년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비중도 지난 10년 간 꾸준히 증가해 2022년에는 39.6%의 청년이 비혼 출산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출산 가정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 자체에 초점을 맞춘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다양한 형태의 ‘출산’ 지원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방안으로 ‘신생아 특공’을 제시했다.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출산 가구에 연 7만 가구를 특별공급 또는 우선 공급하는 정책이다. 특히 공공분양주택 ‘뉴홈’에 신생아 특공(특별공급)을 신설해 연 3만 가구 가량을 공급하기로 했다. 입주자 모집 공고일로부터 2년 이내 임신·출산 사실을 증명하면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특공 자격을 부여한다. 소득 요건은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소득 150% 이하로, 자산이 3억 7900만원 이하여야 한다.
민간분양의 경우 생애최초·신혼부부 특공 시 출산 가구에 우선 기회를 부여한다. 우선공급 물량은 연 1만 가구로, 소득 요건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60%다. 공공임대주택 3만 가구 또한 출산 가구에 우선 공급된다.
또한 주택구입자금의 경우 ‘신생아 특례 대출’을 도입해 소득요건을 기존 대비 약 2배로 상향한다. 기존에는 미혼·일반 가구가 6000만원 이하, 신혼 부부는 7000만원 이하의 소득요건을 요구해 현실적으로 맞벌이 신혼 부부는 지원을 받기 어려웠으나, 신생아 특례 대출을 도입함으로써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가구는 1억 3000만원 이하의 소득 요건을 제시해 지원 대상 범위를 대폭 늘렸다. 주택 가액도 기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대출 한도도 4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한다. 자산 요건은 기존 구입자금 대출과 동일한 5억 600만원 이하다. 대출 금리는 소득에 따라 연 1.6~3.3%로 5년간 적용된다. 시중은행보다 1~3%포인트 저렴하다. 또 아이를 더 낳으면 한 명당 금리를 0.2%포인트 인하해 주며, 특례금리도 5년간 연장해 준다.
주택 청약의 경우 배우자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합산하기로 했다. 지금은 청약 시 신청자 본인의 청약통장 가입 기간만 산정하는데, 배우자의 가입 기간도 합산해 미혼보다 신혼가구가 유리하도록 한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가점이 더해지면 청약 질서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배우자 가입 기간의 50%가 합산되며 최대 3점까지 가능하다.
다만, 해당 대책은 주택 착공과 인허가 건수가 최근 급격히 감소하며 정부가 약속한 ‘신생아 특공’ 등의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10만 229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 3082가구)보다 54.1%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주택 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경우 서울이 67.9%, 인천이 63.2%, 경기가 38.3% 줄었다.
주택 인허가 물량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7월 주택 인허가 물량은 20만 727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29만 5855가구)보다 29.9%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34.4%, 경기는 32.9% 감소했다.
부자 감세?...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두고 갑론을박
정부는 신혼부부 주거 안정을 위해 ‘결혼 시 증여세 최대 3억 원 공제’ 방안도 내놓았다. 지난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혼인신고 전후 각 2년 이내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1억 5천만 원에 대한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어 신랑과 신부를 합쳐 최대 3억 원의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방안은 이른바 ‘부자 감세’라는 비판과 함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결혼을 위한 청년층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자녀가 결혼할 때 3억 원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는 극히 소수라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또 초부자 감세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라며, “증여를 못 받아서 결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안으로 혜택을 볼 계층은 극히 적고 많은 청년에게 상실감과 소외감을 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는 ‘물가 상승을 감안한 조정’이라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전세자금 마련 등 청년의 결혼 관련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한다”며, 추가 공제 범위를 1억 원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주택과 아파트, 수도권과 지방의 전셋값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액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