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기의' 정유미? "아쉬움이 커졌어요"
"광기도 많이 말씀해 주시는데, 그 반응을 듣고 제 연기에 더 아쉬움이 커졌어요. 더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는 그 표현들이 아쉽거든요. 광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영화 '잠'에서는 '윰블리(정유미+러블리 애칭)'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됐다. 시작은 '윰블리'했다.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 극복해야 할 일이 생긴다. 현수가 수면 중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 그 행동으로 생명을 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수진은 끔찍한 공포감에 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정유미가 '잠'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시나리오였다. 굉장히 간결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유재선 감독이었다. 유재선 감독은 "스릴러의 외피를 둔 러브 스토리"라고 영화 '잠'에 대해 설명했다. 신선했다. 그리고 완성된 '잠'을 본 순간 만족했다. 더해진 사운드까지도 신선했다. 아마도 봉준호 감독이 "최근 10년간 본 작품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고 극찬한 이유와 연결될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님의 칭찬을 듣고 미칠 뻔했어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유재선 감독님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군더더기 없는 지점이 두 분의 비슷한 지점 같아요."
유재선 감독은 영화 '옥자'의 연출부 스태프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했다. 유재선 감독은 자연스럽게 영화 '잠'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고, 봉준호 감독은 '잠'을 연출해 볼 것을 제안했다. 정유미는 간결한 시나리오만큼 간결하게 접근했다. 마침 '잠'은 많은 부분 세트장에서 촬영되기 때문에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됐다. 정유미는 3장으로 구성된 시나리오에서 무언가를 계산하지 않았다.
"수진의 감정이 변하는 포인트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변하니까, 이 정도 감정으로 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세트에서 순서대로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미술, 조명 등 제가 그 세트 안에 들어가면 생각 이상으로 표현이 되기도 했어요. 분장도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날 주어진 상황에 충실히 하려고 했어요. 제 아이디어가 필요 없을 만큼 시나리오에 충분히 다 설명이 되어있었고요. 전체적인 균형도 너무 좋았어요. 그걸 믿고 쭉 간 것 같아요."
'잠'은 묘한 작품이다. 현수가 초반 극적인 공포 분위기를 주도한다면, 극이 전개될수록 공포를 주도하는 건 수진다. '금슬지락(樂)'이 아닌 '금슬지광(狂)'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잠'의 막이 내렸을 때 남는 것은 정유미의 광기 어린 눈빛이었다. '윰블리'가 아닌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의 줄임말)' 정유미의 등장이었다.
"저는 정말 그때 주어진 상황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PPT를 하는 장면이나, 드릴을 든 장면에서나 더 광기를 폭발했어야 했나라는 생각했어요. 많은 분이 '광기'라는 표현을 해주시니 아쉽더라고요. 촬영할 때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잔인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요소가 많아서요. 감독님께서 편집을 잘해주셨지만, 저에게 '혹시나'라는 망설임이 보일까 염려스러웠어요. 더 과감했다면, 더 광기가 잘 담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잠'을 찍고 광기라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예상 못 했어요."
"수진의 감정선에 대해서 불안함이나 불편함은 없었어요. 드라마나 장편 시리즈를 할 때는 종종 제가 이해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극화되어 있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건 없었어요. '시나리오의 글을 그대로 표현해야겠다'라는 것이 처음부터 제가 생각한 지점이었어요. 감정의 진폭이 엄청 겉으로 드러나는 드라마도 어렵지만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잠'처럼 간결한 시나리오 작업도 저에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유미는 이선균과 작품에서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에 이은 네 번째 만남이다. 정유미는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서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회차를 엄청나게 갔거든요. 10년 전이지만 거기에서 훈련이 된 것 같아요. 호흡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요"라고 이선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선균) 오빠랑 현장에서 말을 많이 안 했어요. 둘 다 이 글을 믿고, 감독님 믿고 선택했기 때문에요. 일상적인 평범한 부부의 모습을 담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선균 배우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뭘 해도 다 받아주세요. 그런 점들이 신기해요. 이미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편하기도 하고요. 처음 만나면 제가 긴장도 많이 하고 떨리는데요, 오빠 덕분에 떨리지 않았어요."
정유미는 평소 작품을 선택할 때도 시나리오와 감독님을 중점으로 두고 고민한다. "일단 글이 매력이 있어야 하지만, 글만으로 선택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은 감독님이시니까요"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끌려요. 어떤 장르이건 간에 제가 재미있게 읽고, 관객도 재미있어 할 만한 것들. 호러, 스릴러 등 장르는 상관없어요. 재미있는 것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