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창피해서 사서보기 시작한 3,900원 DVD…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인터뷰]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배우 주지훈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MBC 드라마 '궁'으로 정말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 당시를 주지훈은 "힘들었다"라고도 이야기하고 "행운"이라고도 말한다.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이 됐다. '지금'이라는 단어에는 내포하고 있는 말들이 많다. '신과 함께'로 천만 배우가 됐고, '아수라'로 정우성, 박성웅 등의 형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킹덤' 시리즈로 전 세계에 '갓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화 '비공식 작전'의 개봉을 앞두고 판수 역을 맡은 주지훈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비공식 작전'은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현지 택시 기사 ‘판수’의 버디 액션 영화다. 납치된 외교관을 구하는데 요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오합지졸 두 사람이 투입됐다. 주지훈에게 판수는 "되게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대사에도 나오잖아요. 월남전도 갔다가 왔다고요. 1987년이면, 제가 6살 때인데요. 타지에서 군 생활을 하면 사람들이 다 풀어져요. 실제로 예비군 훈련만 가도, 변호사, 검사 이런 사람들도 달라지거든요. 판수는 타지에서 무지에서 나온 잘못을 여러 번 했을 거예요. 사기도 당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가진 돈도 모두 잃고 해외를 전전하다 레바논에 자리를 잡는 거죠. 거기에서 '굿럭'이라는 시그니처 동전을 만들어서 손님에게 영업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친구예요. 심지어 현지인도 안 쓰는 전통 모자를 쓰며 호객 행위를 하잖아요.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동인 거죠."
'비공식 작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준과 판수의 케미였다. 이를 과거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통해 합을 맞춘 바 있었던 하정우와 주지훈이 맡아 신뢰를 더 했다. 하지만 '신과 함께'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케미를 좋게 봐주셨다면, 저희가 촬영 전부터 너무 많이, 자주 만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일 거예요. 물론 '첫 번째 장면에서 나는 이렇게 할게'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죠. 하지만, 그 장면의 느낌은 '양양 서퍼 비치에 비가 미스트같이 내리는 날 혼자 앉아있는 느낌'이라는 식으로 비유하며 맞춰가는 거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를 찍을 때는 시나리오에 캐릭터가 잘 보이게 글이 쓰여 있었고, 거기에 집중해서 연기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아' 하고 깨달은 게 있어요. 보통 버디무비를 하면 캐릭터가 돋보이잖아요. 작품 자체에 인물이 중심에 놓이고요. 연출가가 자기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인물에 많이 기대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완성된 '비공식 작전'을 보고 깨달았어요. '이건 인물 중심의 영화가 아니구나'라고요. 외교관이 납치된 사건 자체가 엄청 커다란 사건이잖아요. 판수가 훔친 '돈'이 그저 돈이 아닌 거죠. 한 사람의 목숨이고, 국가 사이의 핫라인이고, 많은 것들이 얽혀있는 거죠. 그래서 '이건 이야기가 주인공이구나'라는 생각을 저 혼자서 하게 됐어요."
주지훈은 하정우와 '비공식 작전'에 대해 자주 만나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도 했다. 가볍게 리딩을 하는 자리였는데, 하정우가 홀로 리딩을 해보겠다고 했다. 주지훈은 당시를 떠올리며 "좋은 건 배워야죠"라고 바로 자신에게 적용했음을 전했다.
"저는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요. 드라마 '궁'으로 행운아처럼 시작했으니까요. 당시 황인뢰 감독님은 경력도 오래됐고 존경받는 감독님이셨잖아요. 현장에서 배우가 그렇게 의견을 내고 주체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너가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하)정우 형이 홀로 캐릭터들의 대사를 모두 읽어내려가는데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저는 쭉 듣고만 있었죠. 그랬더니 신기하게 제가 읽는 거랑 다르더라고요. 몇 번을 해봐도 찾지 못한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많이 읽고, 안으로 들어와 있는 주연 배우가 쫙 읽어보니 '다르게 보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다음부터 주지훈도 모든 작품에 적용했다. 문제는 하정우는 영화 시나리오를 읽었다는 점이고, 주지훈은 시리즈 대본을 읽었다는 점이다. "장태유 감독님이랑 네 평짜리 방 안에서 대본 리딩 작업을 12시간 동안이나 했어요. 둘이 신나가지고. 재미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성훈 감독과 주지훈도 두 번째 만남이다. 두 사람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주지훈은 김성훈 감독에 대해 "되게 좋아하는 감독님이자, 동경하는 영화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힘들 때, 현장에서 그냥 놓아버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인서트(화면과 화면 사이에 신문, 편지 등 사물을 끼워넣는 컷) 하나도 그냥 놓치지 않으세요. 그래서 물어본 적도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시냐고. 자기가 사랑하는 일, 생활이니까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야기는 이렇게 하지만, 주지훈 역시 작품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다. 12시간 동안이나 네 평밖에 안 되는 방안에서 대본을 읽는 것, "자신을 가장 육체적으로 고생시키는 감독님"이라고 표현한 김성훈 감독을 동경하는 영화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반대로 '왜 그렇게까지 하냐'라고 물었다.
"목표는 재미예요. 흥이 난다고 하죠. '웃기다'가 아니라 흥미예요. 어떤 작품은 위트가 흥미고, 어떤 작품은 스릴, 공포가 굉장한 흥미와 쾌감을 주기도 하죠. 저는 마음이 잘 맞고, 바라보는 바가 같으면, 고통스럽지 않아요. 어릴 때, 땡볕의 밖에서 축구를 6시간씩 했거든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죠. 그런데 얼마나 즐거우면 그걸 하루도 안 빠지고 하겠어요. 저에게 영화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너무 신나요."
처음부터 연기에 빠져있던 건 아니었다.
"제가 모델 일은 너무 사랑했어요. 그리고 남부럽지 않게 열심히 했어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러다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연기 전공도 아니었고, 영화나 드라마를 크게 접하고 자라지 않았어요. 작품을 마치고 인터뷰를하러 나왔는데 너무 창피했어요. 전문적인 질문을 받으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드라마가 잘 됐으니, 인터뷰는 많이 하는데, 창피하더라고요. 그때부터 DVD를 사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예술 영화 DVD들은 비교적 더 저렴했어요. 3,900원짜리 DVD를 많이 샀는데 다 베네치아, 칸 영화제 수상작이었어요. 아직도 끝까지 못 본 작품도 있어요. 그래도 계속 봤어요. 그러다 보니, 왜 처음에는 싫다가 빠져버린 고수처럼, 좋아지더라고요. 영화라는 장르와 매체가 재미있어졌어요."
"또, 저는 너무너무 행운아라서요. 되게 멋진 역할도 주시고, 판수처럼 껄렁한 친구도 주시고, 세자 역할도 주시고, 완전히 삶에 찌들어 곤궁에 몰려있는 역할도 주시니 너무 감사하죠. 연기자 입장에서 결과물은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인정받아야겠지만, 제가 연기하는 사람으로서는 참 재미있어요. 산해진미도 하루 이틀이지, 우리 몸에 안 좋은 거 알면서도 햄버거 먹잖아요. 너무 신나요."
주지훈은 2004년 시트콤 '압구정 종갓집'에서 단역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06년 MBC 드라마 '궁'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데뷔한 지 약 18년이 됐다. 그런데 여전히 연기할 때 "너무 신나"는 그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주지훈의 미래를 대중 역시 '신나게' 기대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