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시, 웨딩플래너 사표 낸 후 '밀수'로 받은 수많은 프러포즈 [인터뷰]
"언니 나랑 결혼해. 부산과 대구 지역 무대인사를 하면서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정말 사랑한다'라는 말을 저렇게 귀엽게 하더라고요. 그 외침이 너무 사랑스럽고, 프러포즈 받을 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해요."
배우 고민시가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미소를 지었다. 고민시는 인터뷰에서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놨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배우가 되기 위해, 과거 웨딩플래너 회사에 사표를 낸 그때의 고민시와 다름없는 태도였을 거다. 그 단단한 다짐은 '밀수'에서 더욱 빛이 난다.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막내 멤버를 말할 때 이야기하는 황금 멤버. 그 황금 멤버가 바로 고민시이자 옥분이다.
'밀수'를 선택할 당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중들에게 그는 영화 '마녀',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었다. 이후, 드라마 '오월의 청춘'을 주연으로 호평 속에 이끌었다. 주연작을 호평으로 마무리한 이후 다른 주연작을 기대할 법도 한데, 고민시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밀수'의 막내를 자처했고, 기대했고, 꿈꿨다.
"영화를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 이전에도 '봉오동 전투'나 '헤어질 결심'에 단역 역할로 들어가게 됐는데요. 그렇게라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이 작품에 함께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너무 좋거든요. 영화 자체를 너무 사랑해요. 저는 사실 주연 욕심보다는 영화든 드라마든 더 주체적인 캐릭터나 매력적인 인물에 끌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류승완 감독님의 작품에 심지어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등 대 선배님과 함께 작품을 하게 되다니. 사실 류승완 감독님과 첫 미팅이 오디션 자리인 줄 알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캐스팅 제안을 주신 자리라서 훨씬 더 뿌듯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고, 설레고, 기대됐던 선택이었어요."
류승완 감독은 영화 '마녀' 속 고민시를 보고 '어떻게 저런 친구가 나왔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서 '스위트홈'을 봤다. 언젠가 류승완 감독의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작품에 함께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것이 '밀수' 촬영 현장에서 옥분이에게 '같이 죽자! 이 XX XX야 상'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 대본 분석을 할 때 옥분이의 터닝 포인트가 춘자(김혜수) 언니의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찾아올 사람은 옥분이 너겠지'라고 하는 장면이요. 그 전과 후의 옥분이가 다르게 완급조절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춘자 언니와 진숙(염정아) 언니가 돋보여야 할 때는 거기에 맞춰 준비했었고요. 제가 악어의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더 힘을 줘도 되겠다 싶었어요. 열심히 준비를 해갔는데, 현장에서 그 이상을 요구하시더라고요. (웃음) 감독님께서 '곡소리를 내볼까, 무릎을 꿇어볼까'라는 말씀을 하셔서요. 한 몸 던지듯 질렀던 기억이 있어요. 옥분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한 데에는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많이 첨가됐었고, 선배님들의 조언도 잘 녹아들어 있어요. 덕분에 많은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옥분이는 70년대 다방 마담이다. 공개된 스틸컷에서 고민시의 갈매기 눈썹은 그야말로 시선 강탈이다. 한복 자락을 휘날리며 다방을 운영하는 마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 당시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요. 다방 직원이면 모르겠는데, 마담이라니까 좀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보다 더 성숙한 분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레 여쭤봤는데요. 감독님께서 '70년대 당시에는 어린 나이부터 다방을 시작해서 20대 초반에 마담이 되는 일이 많았다, 걱정하지 말고 비주얼만 원하는 대로 가자'라고 하셨어요. 갈매기 눈썹은 정말 눈썹을 많이 밀었고요. 컨실러로 감추고 분장을 했어요. 구레나루는 실제 제 머리카락을 잘라서 붙인 거예요. 의상 준비 시간만 두 시간 정도 걸렸어요."
"망가짐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 오히려 망가질수록 좋아요. 예쁘게 나오는 작품을 연기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렇게 예쁘게 메이크업하고 연기하면 더 온전히 연기를 못하게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조금이라도 번질까 봐 신경이 쓰이고요. 그런데 캐릭터에 가깝게 분장을 받으면 온전히 집중하는 힘과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망가지는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웃음)"
고민시의 말처럼 '악어의 눈물' 장면을 연기할 때, 웃음에 인색한 언론 시사회 현장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옥분이를 사랑하지 않기가 너무 어려운 장면이었다. 고민시는 "선배님들의 사랑이 옥분이를 완성한 것 같아요"라고 겸손한 한 마디를 전했다.
"사실 현장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있어요. 어떤 선배님들은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선배님은 후배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시는 분도 계세요. 김혜수, 염정아 선배님은 정말 이름만 들어도 너무 꿈같은 선배님들이시잖아요. 그래서 안 그래도 조심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저희를 너무 예뻐해 주셨어요. (박)정민 오빠, (박)경혜 언니, 그리고 저를 막내라인으로 부르시며 더 챙겨주시려고 했어요. 하루에 여섯 끼씩 먹으면서 촬영했어요. 다 같이 색깔별로 우비를 입고 바닷가 산책을 하기도 하고, (염)정아 선배님 숙소에서 선배님이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면서 (김)혜수 선배님의 영화 '11번째 엄마'를 보면서 같이 울었던 기억도 있어요. (염)정아 선배님이 '혜수 언니는 저 때 어떻게 저렇게 숏컷도 잘 어울리고 예쁘냐'라고 감탄하셨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소소한 추억이 너무나도 빼곡하게 담겨 있어요."
빼곡한 추억 속에는 그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고민시'가 있다. 아직 데뷔한 이후 6년이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빠르고 큰 성장 폭이다.
"예전에는 감정의 기복이 순간순간 크게 변했어요. 좋은 일이 생기면 너무 많이 좋아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너무 힘들어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하면서 평정심을 그래도 많이 찾게 된 것 같아요. 좋은 순간에도, 힘든 순간에도 적당히. 이런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게 제가 성장한 부분인 것 같아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제 연기의 부족한 지점에 대해 날이 서서 모니터하는 편인 것 같아요. 아직도 못 보겠는 작품이 있거든요. '마녀' 때도 시사회 때 제 얼굴을 보면서 식은땀을 정말 많이 흘렸어요. '영화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못 보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작품 하며 만난 선배님들의 조언 등을 통해 '어떻게 하면 내가 맡은 캐릭터의 최대치 매력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미워 보일 수 있는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며 연구해요. 그 사이 작품이 쌓여가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 '밀수'에서는 감독님께서 주시는 예상치 못한 디렉션을 그때그때 빨리 흡수해서 최대치로 해내야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요. 흡수해서 받아들이고 연기하는 속도감을 기르고 훈련하는데 굉장히 좋은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김혜수는 고민시를 보며 "내 어릴 때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라고 이야기했다. 스스로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을 주는 성향 때문이었다.
"부산과 대구 지억 홍보 일정 첫날 (김)혜수 선배님 방에서 새벽 6시까지 수다를 떨었어요.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 순간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도 제 고민도 털어놨어요. 그랬더니 선배님께서 '자기는 스스로 너무 채찍질하며 일하는 스타일이다, 내 어릴 때 모습과 비슷해서 놀랐다'라고 하시면서 경험담을 들려주시고 '컨디션을 돌볼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스스로 체크하고 쉬어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나요."
고민시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의 꿈을 꾸며 한 발씩 걸어 나온 배우는 아니다. 그는 과거 웨딩 플래너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를 꿈꾸고 회사에 바로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때 꿈꿨던 배우 김혜수, 염정아와 함께 작품을 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는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뒤돌아보지 말자'라고 결심하고 서울로 와서, 그때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제가 원했던 것, 하고 싶었던 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꿈을 찾은 느낌이에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요즘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모두 영화 '밀수'와 관련돼 있다. 선배님들과 함께 홍보 일정을 다니는 순간들도 그에게는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다. 당연히 MBTI에서 E 성향일 줄 알았던 고민시는 사실 'INFJ'다. 하지만 그는 MBTI보다 혈액형을 더 믿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J 답게 더 멀리 커나갈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그 그림의 한 부분은 아마 차기작인 '스위트홈' 시즌 2와 3,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되지 않을까.
"'스위트홈' 시즌2는 훨씬 퀄리티가 좋고요. 세계관이 확장됐어요. 여러 장소에서 나오는 새로운 괴물들과 새로운 선배님들의 짱짱한 라인업까지 보는 재미가 확실히 더해졌을 거예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실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고요. 지금 촬영 중인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도 너무 재미있어요. 행복하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렇게 우리는 '고민시'라는 이름에 신뢰가 더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