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동휘가 첫 누아르 도전작 '카지노'에서 대표작을 새로 썼다. 그동안 코믹한 생활 연기로 입지를 다진 그는 특유의 소화력에 거친 매력을 더해 '카지노' 속 '양정팔'을 완성했다.

'카지노'는 카지노의 전설이었던 '차무식'이 위기를 맞이한 후, 코리안 데스크 '오승훈'의 집요한 추적에 맞서 인생의 마지막 베팅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극 중 이동휘가 연기한 '양정팔'은 필리필 카지노의 전설 '차무식'(최민식)의 오른손 격인 인물이다. 무식의 사업장을 관리하며 지내던 정팔은 시즌2에 접어들면서 욕망을 표출하고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한다.

글로벌 OTT 서비스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카지노'는 최민식의 25년 만 드라마 복귀작이자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극 초반엔 늘어지는 전개 탓에 혹평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필리핀 배경에 카지노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통하긴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카지노'는 점점 입소문을 탔고,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과 탄탄한 세계관 덕에 흡인력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종영 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동휘를 만났다. 정팔을 벗어낸 이동휘는 한층 부드러운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이날 이동휘는 '카지노'를 통해 변화한 점으로 호칭을 꼽았다. 기존엔 자신을 '응답하라 1988' 속 '동룡이'라 부르는 이가 많았다며 드디어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고 웃어 보였다.

"사실 저희들끼리는 '카지노'의 소재 자체가 많은 분들의 관심을 사기에는 한정적이지 않나 싶기는 했어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아재분들의 열렬한 성원이 있었어요.(웃음)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요즘 트렌드와는 안 맞는 약간 옛날 감성의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많이 좋아해 주시는 걸 느꼈어요. 예전에는 지나가는 분들이 '동룡이'라고 하셨는데 이젠 '정팔이'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정팔이는 무식의 오른팔이자 고객을 모집하는 카지노 에이전트다. 카지노에 고객을 데려오면 카지노가 얻게 되는 돈의 일부를 수수료처럼 나눠 받는다. 사설 도박장 정킷방의 생리를 잘 몰랐던 이동휘는 그들의 생태와 특성을 연구하면서 '양정팔'을 만들어갔다.

"캐릭터적으로는 현지에서 정킷방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참고한 점도 있어요. 처음에 정팔이는 차무식 옆에서 보조만 하면서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자기가 일에서 배제된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쌓이면서 딴 맘을 먹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삐딱해지고,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겐 중요한 일을 맡겨주지 않지' 그런 것에 대한 반항심이 커졌을 것 같아요. 십 년 동안 같이 일한 사람이니까. 현실적으로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고민을 잘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이동휘에게 정팔이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직업적인 성향은 둘째 치고, 시즌2에서 보여준 정팔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인간적' 자체였다. 큰돈을 빚져 놓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동안 이동휘는 이해하는 대로 소화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커버하며 연기해야 했고, 대중을 설득해야 했다. 곤욕이었다.

"정팔이는 이제껏 제가 한 작품 중에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라 애를 많이 먹었어요. 정팔이 식대로 보자면 뭐든 '비벼보는 거'잖아요. 자기 그릇보다 넘치는 욕망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컨트롤하지는 못하고요. 그래서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던 게 정팔이가 계속 빚을 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는 '다 해결된 거 아니었어요?'하면서 넘어가려는 거였어요. 정팔이는 정말 나쁜 사람에 가깝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제가 시청자분들에게 어떻게 설득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저도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어요. 예전에 손절한 친구인데, 돈이 필요하다고 제 앞에서 막 우는데 눈물은 안 나오고 있더라고요. 잘 보면 보여요. 죽는 소리를 하면서 슬퍼하면서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는데도 가만히 보면 진정성이 없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양정팔을 만들 때 그 친구를 연상하면서 연기했어요."

'카지노' 시리즈의 가장 큰 반전은, 바로 믿었던 동생 정팔에게 차무식이 살해되는 부분이다. 무식의 그늘 속에 지내던 정팔이 그를 배신한 것. 열흘 붉은 꽃 없다는 '화무십일홍'이 작품이 주제인 바, 무식의 최후를 장식할 일은 정해져 있었으나 그게 정팔일 줄은 이동휘도 몰랐다.

"저도 그렇고 시청자분들 입장에서는 구제불능이던 캐릭터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납득이 안되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작품을 설계하면서부터, '화무십일홍'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허무한 결말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를 한 부분이었어요. 차무식의 끝을 누가 맺을 것인가 여러 차례 회의를 했는데 마지막쯤에는 민식 선배님께서 '가장 믿는 사람에게 당하고 싶다'고 정리를 해주셔서 정팔이가 하게 됐어요. 근데 제가 시청자 입장에서 봐도 정팔이는 정말 죽어야 하는 인물이 맞죠.(웃음) 길 지나가다 돌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겁을 잔뜩 먹고 찍었어요."

'카지노' 배우들이 입을 모아 말한 고충은 바로 필리핀 촬영이다. 진이 빠지도록 더운 날씨도 그렇고, 코로나19 상황이었던지라 조심성도 필요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숙소를 떠날 수 없으니 배우들끼리 모여 작품에 빠져드는 일밖에 없었다. 이런 노고 덕분에 '카지노'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필리핀 로케이션을 해야 했는데 무슨 전지훈련 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당시엔 코로나19 때문에 현지에서도 격리를 해야 해서 계속 거기에만 있었거든요. 취미 생활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대본 보는 것 밖에 없었어요. 배우들끼리도 할 게 없으니까 모여서 대본 보고 이야기하고, 다음에 찍을 거 연습하고, 그러다 보니 어떤 작품보다도 가장 밀도 높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극 중 무식과 가장 많이 붙는 인물이 정팔이다. 덕분에 이동휘는 존경하던 선배 최민식의 옆에서 공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최민식과의 첫 촬영을 떠올리면 아직도 어질하다고 말한 이동휘. '카지노'는 이동휘의 연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민식 선배님은 일단 제가 감히 입에 올리기도 참 어려운, 정말 저에게는 너무나 전설적인 배우시죠. 존재만으로도 배울 점이 정말 많았어요. 선배님이 기본적으로 현장에 한 시간씩 일찍 오시기 때문에 모든 배우가 지각이라는 걸 안 하게 됐고요. 선배님과 첫 촬영했던 당시를 회상하면 아직도 어지러울 정도로 에너지가 대단하세요. 부드럽게 현장을 이끌어가면서도 방심할 수 없게 하시는, 기본적으로 배우가 가져야 하는 덕목을 모두 가진 분이세요. 하루하루가 정말 돈 주고도 받을 수 없는 값진 수업 같은 느낌이었죠. 제 평생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배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나른한 눈빛에 어리바리한듯 코믹스러운 말투. 이동휘는 확실히 차별점을 가진 배우다. 그런 이동휘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는 연기는 단연 코믹 연기였다. 특히 2015년 '응답하라 1988' 속 '동룡이' 이후에는 줄곧 비슷한 캐릭터 제의만 들어왔다. 배우로서 변화할 지점을 찾고 있던 이동휘에게 찾아온 작품이 '카지노'다.

"그동안에는 호감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어요. 코믹 연기를 하는 게 스스로도 행복하고 보람이 있었거든요. 극장에 몰래 가서 제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만 한 보람이 없어요. 하지만 배우 일을 하다 보면 틀을 깨고 나아가야 하는, 도전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평생 이거만 하면 되겠다 싶은 순간 배우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슬 새로운 모습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저도 연기를 10년 정도 해보니까 잘 된 작품 속 캐릭터와 비슷한 쪽으로만 대본이 많이 들어왔어요. 개인적으로 다양한 작품,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녹록지 않아서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많이들 모르시겠지만, 제가 '극한직업' 하기 전에 1년 정도 연기 활동을 전혀 안 하고 있었고, '놀면 뭐 하니?'로 인사드리기 전에도 1년 반 정도 편중된 장르만 들어와서 작품을 하지 않고 독립영화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누아르 장르는 못 해봤는데 감사하게도 제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이동휘에게 '카지노'는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었다. '카지노' 덕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을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동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며 겸손해 했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이동휘는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변신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도전하자는 마인드 셋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떻게 성공이 될지는 가늠이 안되잖아요. 저는 큰 숙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배우 같아요. 어떤 배우는 한순간에 탈바꿈이 되기도 하는데 저는 그 시간이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되는 사람 같아요. 그런 점에서 보는 분들도 '저 배우는 참 되선을 다하고 맡은 바를 잘 해내는 배우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당장으로서는 시청자분들께도 참 죄송스러울 정도로 여전히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요. 저를 봐주시는 분들께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 시간을 줄이는 게 제 몫이겠죠. 어떻게 해서든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많은 분들이 납득하실만한 연기를 하는, 그런 배우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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