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리즘 서승완 칼럼] 메타버스, 사이버펑크의 유산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를 기억한다. 불과 10년 전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확산은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 배달을 시키기 위해 수화기를 들지 않고,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게 되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자사전이나 MP3 플레이어도 ‘구시대의 유산’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기술 발전사를 들여다보면 ‘스마트폰의 등장’은 사실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드론, 3D 프린팅, 메타버스 등이 우리의 일상에 더 많은 변화와 혁신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과거에는 공상과학소설(SF)에나 나올 법한 소재였지만, 이미 현실이 되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 것들이다. 거듭되는 기술의 발전을 두고, ‘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전언이 유령처럼 나돈다. 특히 팬데믹 이후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 ‘메타버스’에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정말이지 10년 뒤의 미래에는 더 꿈같은 일이 펼쳐질 것만 같다. 과연 그럴까?
80년대에 처음 등장해, 늦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공상과학소설(SF) 장르가 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근미래 사회를 조명한 이 장르는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와 같은 명작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바로 사이버펑크(Cyberpunk)다. 사이버펑크가 그리는 미래 세계는 ‘화려함’ 그 자체다. 홀로그램을 활용한 영상이 길거리 곳곳을 장식하고, 신체의 일부를 전자 부품으로 교체한 사이보그(Cyborg)가 그 거리를 누빈다. 끝없이 펼쳐진 마천루 사이로 바퀴 없는 자동차, 호버카(Hover Car)가 날아다닌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도배되어 감탄만을 자아내는 야경은 덤이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사이버펑크 속 세계 묘사는 사실 ‘빈 껍데기’다. 사이버펑크는 그 ‘이면’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지만, 그 기술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술을 가진 거대 테크 기업이 모든 자본과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을 부품처럼 다루고 노예화한다. 기술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격차가 심화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조리하고 혼란한 현실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피를 선택한다. 그들이 선택한 도피처는 다름 아닌 ‘온라인 가상공간’, 즉 메타버스다.
사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가 사이버펑크의 유산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메타버스’는 1991년작 사이버펑크 소설인 '스노우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다. 어쩌면 메타버스는 태생부터 불운하고, 디스토피아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아시스(작중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었어’라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대사처럼, 사이버펑크 속 메타버스는 ‘기술이 가져다준 장밋빛 미래’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2020년을 기점으로 사이버펑크 장르가 다시 유행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메타버스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시기와도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해외에서는 메타버스의 대중화와 거듭되는 기술의 발전을 두고, ‘사이버펑크는 바로 지금이다(Cyberpunk is Now)’라는 밈(meme)을 확산시키고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를 꿈꾸고, 기술의 혁신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지금, 디스토피아적인 사이버펑크 속 미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들의 몫이라고 본다. ‘과연 오늘날의 기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기술이 우리의 많은 부분을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끝까지 남겨야 하는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다. 기술이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상에만 매몰되어, 그 이면에 있을지 모르는 어두움과 불편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연 메타버스가 ‘희망찬 미래 공간’이 될지, 아니면 ‘암울한 현실의 도피처’가 될지는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서승완 대표] 서승완은 유메타랩 대표이자 전국 대학 메타버스 연합회의 회장이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전공인 철학과 메타버스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수의 대학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인스타로 보는 동양고전’ 등이 있으며 최근 메타버스 전문 미디어 플랫폼 ‘메타플래닛’,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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