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지훈, 체지방 3% 만들 때보다 더 노력해서 담아낸 '현실 같은 판타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완전히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마냥 착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 흑심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저의 선의가 타인에게는 선의가 아닌 경우도 있거든요. 그게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요."
대중이 느끼는 배우 '주지훈'에 대한 인상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뷰로 여러 번 만나본 주지훈은 일단,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인터뷰 자리라서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느낀 것은 그만큼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생각을 곱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주지훈'의 큰 매력이다. 앞서 착함에 관한 말을 하면서도 주지훈은 '늘 남을 돕는 좋은 일을 하시는 사람이 과연 그의 아내에게도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했다. 평소 그가 생각하는 선은 "행동이 아닌 서로의 이해"라는 결론과 함께다. 바로 나온 말이 아니다. 예전부터 곱씹어 온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 영화 '젠틀맨'의 지현수를 만들었다.
지현수는 의뢰받은 사건은 100% 처리하는 흥신소 사장이다. 영화 속에 나온 대사처럼 "나쁜 놈들에게 불법, 합법이 어딨어?"라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향한 펜션에서 지현수(주지훈)는 괴한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현수는 범인으로 몰려있다. 그리고 검사에게 연행되던 중 갑작스런 차량 전복 사고가 발생했다. 눈을 떠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검사로 생각한다. 검사로 위장해 '지현수'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는 그 모든 이야기의 반전이 공개된다.
주지훈은 의를 위해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현수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경원 감독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정의롭다는 그 자체가 판타지라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차용한 방식은 리얼 톤을 가지고 가잖아요. 지현수의 팀원들도 어딘가 빈틈이 있어요. 그 빈틈을 통해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시민 영웅들이 있잖아요. 길 가다가 강도를 잡고 이런 분들 중에 평소에도 무예를 단련한 유단자는 극소수일 거라 생각해요.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다가 악이 눈에 보이는 순간 '잡아야 해'라는 생각이 결과를 뒤바꿔 놓은 거죠. 배우가 완전히 재단된 캐릭터를 맡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도 선과 악이 명확하게 재단되지 않은 채 살아가잖아요. 그냥 우발적인 감정과 정의감, 그런 것들이 발휘되는 순간 그 자체가 판타지라고 생각했어요. SF나 마술이 아니더라도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현수가 도청기도 이용하고 했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젠틀맨'인 거잖아요. 그런 지점이 좋았어요. 정의와 불의를 완전하게 나누지 않는 시각도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주지훈은 재단된 캐릭터보다 더 노력했다. 그가 말한 "체지방 3% 만들 때보다 더 운동을 많이 했어요"라는 말은 그 단면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지현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인계도 좀 쓰고, 고객 접대도 하고, 술도 좀 먹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짧은 샤워 장면이지만, 그런 '지현수'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미술작품처럼 조각 같은 몸이 아니라, 손이 가는, 이왕이면 술자리에서 내 옆에 앉았으면 좋겠는 느낌의 친구로 만들고 싶었죠. 디테일한 전사는 없지만 이 친구가 풍기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젠틀맨'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스타일리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와 리듬감 있는 템포의 편집으로 완성됐다. 특히 팝송 '마이웨이(my way)'를 배경으로 지현수가 탄 차가 360도 전복되는 장면은 슬로우 장면으로 디테일한 주지훈의 표정을 잡아내 시선을 끈다. 실제로 차를 360도 돌리며 촬영한 장면이다. 그리고 주지훈의 표정을 잡아내기 위해 고속카메라를 활용해 2,000프레임 정도의 초고속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속에서 제가 지나가는 유리를 보고, 강아지를 보고, 앞에 사람을 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1초 만에 그 세 가지를 다 해야 해요. 360도 회전하는 차 안에 한 30번 넘게 들어갔던 것 같아요. 차 안 깨진 유리는 CG로 완성됐는데요, 시선 방향이 유리보다 선행됐어요. 기술만 가지고 할 수도 없고, 감정만 가지고도 할 수도 없고요. 여러 찍어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성된 장면입니다."
강아지 윙은 '젠틀맨'의 반전의 힌트가 되는 큰 요소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강아지가 지현수의 얼굴을 핥으며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지훈에게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주지훈은 "강아지를 만지고 이런 건 괜찮아요. 그런데 신기하게 강아지가 얼굴 쪽을 핥거나, 수염 같은 게 얼굴에 닿으면 빨갛게 올라와요"라고 했다. 해당 모습을 주지훈은 그대로 사용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완성된 '젠틀맨'에는 CG 기술을 사용해 깨끗하게 지워졌다.
주지훈은 이정재의 첫 연출작인 영화 '헌트'에 엑스트라로 이름을 올렸다. 해당 작품에서 주지훈은 정우성과 이정재의 만남에 김남길, 정만식 등과 함께 의리를 지켰다. 영화계에서 만난 주지훈의 형들은 그에게 삶의 다른 면을 보게 해주고, 다른 방식의 생각을 열어준다.
"모든 순간, 모든 걸 배우고 있어요. 제가 살지 않은 순간을 살고 계신 분들이잖아요. 엄청나게 영향을 받아요. 같이 연기할 때도 '어떻게 저렇게 해석이 될까? 왜 나는 저런 생각을 못 했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참 많아요. 삶의 태도 같은 면에서도요. 더 살아온 날들로 인한 담대함, 좋지 않은 컨디션 속에서의 여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는 것 같아요. 그게 제 삶을 많이 평온하게 해줘요. 부질없는 욕심도 내려놓게 됐고요. '연기를 이렇게 해서 이런 걸 꼭 표현해야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면, 형들에게 시스템을 배워요. 영화는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혼자 깨달으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요. 형들을 만나 빨리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한 분들이에요."
주지훈은 연출에는 관심이 없지만, 제작에 대한 꿈은 꾸고 있다. 워낙 영화 한 편에 참여를 결정하면, 스태프의 회의에도 참석하는 그다. 이번 '젠틀맨' 작업 때도 김경원 감독과 촬영 감독 등이 모여 하는 콘티 회의 때도 매번 참석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고,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배우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지훈은 "재미있지 않으면 피곤한 일이잖아요.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여도, 저는 못 속이잖아요. 제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한 연기를 저는 알거든요. 그 감정을 마주하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요. 그런 게 에너지가 되는 거죠"라고 말한다.
"저는 모든 종류의 장르, 작품에 열려있어요. 다큐멘터리도 보고, 완전히 실화 기반의 사회 고발 프로그램도 좋아해요. 그러면서도 완전히 우리 삶의 단면을 옮겨내는 작품도 좋아하고, 코미디, 시트콤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정말 관객으로 선입견이 없어요. 열려있어요."
그래서일까. 주지훈은 오는 20일 첫 고정 예능프로그램 티빙 '두발로 티켓팅'의 공개를 앞두고 있다.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함께한 장태유 감독의 형의 제작사에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다. 장태유 감독과 식사 자리에서 나온 한 마디가 연이 되었고, 하정우와 통화하며 "형 하면 하고요"라고 한 주지훈의 말에 두 사람의 합류가 어영부영 결정됐다.
"투덜대다가 뭘 하고 있어요. 듀스 노래 중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딱 그대로예요. '이걸 왜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미션이 되면 너무 행복해요. 사람이란, 참 신기해요. 아직도 초코파이에 열광을 해요."
주지훈의 너스레에 다시금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평소 사람에 대한 생각과 애정이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예능 플레이어로서의 고유한 주지훈을 만들어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