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류준열, 프레임 밖에서 바라보고, 안으로 들어오다
배우 류준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아직도 '응답하라 1988'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다. 하지만, 류준열의 시작은 독립 영화였고, 그는 프레임 안에 갇힌 배우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그는 프레임 밖을 꾸준히 바라봐 온 배우다. 11월 27일까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되는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 류준열의 사진 작품이 걸려있는 것은 우연도, 스타의 특혜(?)도 아니다.
잠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 이야기해보자면, 이는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 등이 생긴 지구의 급변하는 환경에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전시다. 류준열은 그 속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걸며 목소리를 냈다. 60년대 근대화의 힘이 되어어 주었지만, 현재는 폐 공장이 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시멘트 공장, 쌍용양회 문경 공장을 사진에 담았다. 모든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다. '무제'. 류준열에게 그 이유를 묻자 "저는 다 '무제'로 해요. 제목을 달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가둬두게 되는 것 같아서요"라고 설명한다.
왜, 류준열의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 사진가 류준열이 '배우 류준열'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인터뷰 한 것은 영화 '올빼미'의 개봉을 앞두고서였다. 인터뷰는 삼청동에서 진행됐고, 류준열은 자연스럽게 전시 이야기를 꺼냈다. 폐시멘트 공장을 사진 속에 담아 목소리를 낸 그가 밝은 빛 아래서는 볼 수 없고, 어두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맹인 침술사 '경수' 역을 맡은 영화 '올빼미'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배우로서, 사진가로서 대화를 건네고 있는 그다.
영화 '올빼미'는 역사 속 한 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인조실록에 기록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에 밤에만 볼 수 있는 '주맹증'을 가진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상상이 더해졌다. 류준열은 "충분히 즐기다 가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올빼미'를 설명하며 도전이었음을 밝혔다.
경수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는 보이는 모습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다. 류준열은 맹인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고, 맹인이셨던 이모를 떠올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 '눈'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습을 했다. 하도 연습해서 눈에 초점을 풀어놓은 까닭에 다시 눈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점까지 왔다.
"기술적으로는 모델들을 많이 관찰한 것 같아요. 모델들이 워킹하고, 화보 찍는 모습을 보면 눈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있거든요. 사실 이런 눈의 시작은 제 친지 중에 맹인이 계셨어요. 정확히 이모는 아니고, 먼 친척인데 이모라고 불렀어요. 그분의 눈이 안 보이신다고 듣고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는데요. 만났을 때, 참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고요.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철학,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함 등이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꿈을 꾸는 듯한 눈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라는 중의적인 느낌도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경수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어의 이형익(최무성)이 경수의 눈으로 침을 확 가져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류준열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CG(컴퓨터 그래픽)와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CG이기는 해요. 저는 아예 침이 없이 최무성 선배님의 빈손을 제 눈앞에 가져오는 거라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침이 있었어요. 그런데 길이가 완성된 장면보다는 짧았던 거죠. 저는 사실 긴장을 많이 안 했거든요. 그런데 최무성 선배님이 자꾸만 '내 옆에 아무도 오지 마. 건드리지 마. 신경 써야 해'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면서 그때부터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눈앞 한 7cm 정도 까진 온 것 같아요. 눈을 깜빡이지 않았던 건,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눈을 안 깜빡이는 훈련을 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초점을 명확하게 두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했어요. 일부러 초점을 잡지 않다 보니까, 어느 순간 초점을 잡아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웃음)
류준열의 말처럼 '올빼미'에는 역설적인 상상력이 담겼다. 밝은 빛 아래서 시력을 잃어버리는 설정은 명백한 진실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현실에 타협해버리고 마는 상황도 연상케 한다. 더 나아가 류준열이 찍은 과거의 영광을 품고 '폐 공간'이 되어버린 시멘트 공장과도 연결 지점이 있다. 과연 '올빼미'는 류준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경수가 가진 인물의 어떤 상징이 있는 것 같아요. 핸디캡이 핸디캡으로만 보이는 게 아니라, 약자에 대한 상징같이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에서 핸디캡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불만이 있고,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잖아요. 인간에 대한 절대 권력, 모든 것을 가진 왕이 있지만, 이 속에서 경수가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 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 상징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경수가 극 중 여러 가지 선택을 하는데, 전 그 선택이 납득이 되고요. 그의 선택 중 저에게 와닿은 지점이 많아 연기하면서도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엔딩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수의 고백이 사실 큰 역할을 하지 못해요. 왕이 바뀐다거나, 죽은 소현세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바로 보는 것, 이야기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있지 않나 싶어요."
류준열은 '올빼미'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작품에서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유해진이 류준열에 대해 "굵은 기둥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였다. 당시를 묻자, 류준열은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쑥스러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쉽게 눈물을 보이는 편이 아니거든요. '진짜 운 거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웃음) (유)해진 선배님의 사랑을 숨길 수는 없죠. 울컥했어요. (유)해진 선배님께서 좋은 이야기를 선뜻 하시는 편이 아니거든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겹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아마도 (유)해진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은 제가 예전에는 휘청휘청 얄팍했다면, 작품을 하고, 부침을 겪으며 조금씩 굵어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감히 저의 해석입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더 굵어져야죠. (웃음)"
어느새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됐다. 류준열은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 "어렸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잘못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배우로서 철이 드는 건 많이 무섭긴 해요. 그런데 철이 안 든다고, 들려진 철을 어디 던질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그래서 다른 부분에서 철이 안 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좋은 쪽만 가져가려고요. 철이 드는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려고요. 천천히, 완급조절을 하려고 하는 편 입니다."
독립영화부터 천천히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류준열이다. 처음에 그가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연극영화과 전공했으니, 연기로 가족과 먹고 살 정도만 되면 좋겠다"라는 꿈을 꿨었다. 그런 그에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요즘에도 류준열은 문득 "내가 어떻게 이 선배님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배우로 갈 길을 정해놓거나, 상상하지는 않았어요. 나름의 비결이라면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니까,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상상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오래오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에요."
순리대로 살아가는 류준열이다.
"'순리대로'라는 말을 너무 좋아해요. 아버지가 '순리대로 살아라'라고 하셨거든요. 아버지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는 빚지면서 투자하고,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사업을 확장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셨거든요. 덕분에 저는 인생에 굴곡이 없었어요.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빚쟁이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거든요. 적당히 부족한 상태에서 '아껴서 살아가면 괜찮겠지'라는 삶의 태도를 익힌 것 같아요. 흐르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좋은 결과에 닿을 거라는 가르침 안에서 살아온 것 같아요."
순리대로 살아왔다고 했고, 자신을 '게으른 배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바로 작품을, 세상을, 지구를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사진가로서 프레임 안에 자기 생각을 담고, 배우로서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관객에게 화두를 던진다.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류준열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