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라미란'이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
'정직한 후보'는 2020년 2월에 개봉해 153만 명이라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코로나 초기의 상황이라는 점을 미뤄볼 때, 관객수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라미란은 '정직한 후보'로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사상 코미디 장르로 처음 받은 여우주연상이었다.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으로 "저에게 왜 이러세요"라고 입을 열었던 라미란은 사실 '처음'을 만들어가는 배우다.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다, 서른이라는 어찌 보면 배우로서 빠르지 않은 나이에 '친절한 금자씨'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아직도 레전드라고 꼽히는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응답하라 1988', '덕혜옹주', '부암동 복수자들', '걸캅스' 등의 작품에서 연이어 사랑받았다. 그의 캐릭터는 카리스마와 유머를 오갔고, 옆집 아주머니의 반란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쾌감을 선사했다. 여우주연상 수상 역시 연장선상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다.
'정직한 후보2'는 여우주연상 수상소감 당시에도 언급됐다. 라미란은 "'정직한 후보' 1편이 사랑받아서 2편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언론시사회 당시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정직한 후보' 1편 개봉 당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어요. 호의적인 기사와 반응이 꼭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마음이 다시 올라왔어요. 진심이었어요. 그때 혹평이었으면 무슨 2편을 할 수 있었겠어요. 힘을 받았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라미란은 1편에 이어 주상숙 역을 맡았다. 주상숙은 시장 선거에서 낙마하고 고향 강원도로 내려와 생선 손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시민을 구하게 되고, 이를 발판으로 강원도지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도지사가 된 후 초심을 쉽게 내던진 주상숙은 건설교통과 국장 조태주(서현우)의 손을 잡고 매 순간 자신의 지지율을 위한 결정을 하는 흑화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진실만을 말하게 되는 '진실의 주둥이'를 얻게 된다. 1편에서 주상숙을 수습해준 박희철(김무열) 역시 함께 진실의 주둥이를 얻게 돼 우당탕탕 면모도 두 배가 됐다.
"저는 '주상숙'의 유경험자니까요. 이걸 헤쳐 나가는 방법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거죠. 박희철과 대화할 때도 '내가 한번 해봤잖아'라고 하잖아요. 노하우가 있는 거죠. 관계에서 나오는 신선한 재미는 (김)무열 씨에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을의 반란 같은 느낌으로요. 시원함을 안길 포인트가 더 많아진 거죠. 좀 더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쌍이 된 진실의 주둥이에 라미란은 "부담감이 나누어 가지니, 확실히 좀 덜어진 것 같아요. 많이 의지가 됐죠"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무열이 "힘들어하면서도 막 하더라고요"라는 의견을 보태면서다.
"주상숙에게 박희철이 하는 대사 중에 '3등신'이라는 말도 애드리브에요. 대본에는 '그 가발도 마음에 안 들어' 까지였거든요. 그런데 붙이더라고요. 뭔가 계획하고 온 것 같지 않은데, 그래서 제 표정도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요. 평소에 (김무열이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라미란은 '주상숙' 역을 맡아 몸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수중촬영, 몸싸움, 막춤 등 라미란의 표현에 따르면 "애쓰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라고 할 정도다.
"수위 조절은 감독님이 하시는 거죠. 큰 틀을 보고 붙여나가는 건 감독님이시니까요. 더 오버한 것도 있고, 덜한 것도 있을 텐데요. 감독님께서 장면을 선택해서 이어가시는 거니까요. 현장에서 보면 난장판이에요. 하다가 실패한 것도 있고요. 나중에 그런 제 모습이 풀릴까 봐 너무 무섭네요. 원래 김 위원장과 주상숙이 전화하는 장면도 없었어요. 다음 장면에서 진돗개 발령됐다는 말만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가장 수위가 낮은 장면으로 전화 장면을 붙이신 것 같아요. (웃음) '3차 대전 나면 어떻게 해?'라는 장면도 원래는 전화 통화 한 이후 대사인데 뒤쪽으로 붙이셨더라고요."
막춤 장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해당 장면은 대본에 '춤추다 말고 정신을 차린 후'라고 쓰여 있었다. 라미란 인터뷰 당시 옆에 있던 장유정 감독은 대본을 보며 정확하게 워딩을 읽어줬다. 대본에 한 줄 정도 쓰인 말을 표현하기 위해 라미란은 현장에서 1~10까지 강도로 여러 번 춤을 선보였다.
"안무가 있는 춤도 아니고, 저도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태였죠. 그 안을 다 돌아다닌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카메라를 최대한 뒤로 빼서 촬영하고, 어느 정도 정해지면 타이트하게 가까이 찍고 하셨던 것 같아요. 유준상 선배님께서도 제가 난리법석 떠는 것 보고 창피하셨는지 돌아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끌어당겼는데 받아주시더라고요. 감사했죠. (웃음)"
라미란은 '정직한 후보2'의 개봉을 앞두고 다양한 매체에서 홍보 요정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유튜브 예능 '미노이의 요리조리'에 김무열과 함께 출연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특히 그 속에서 눈길을 끈 것은 라미란이 미노이의 곡을 모두 듣고 "너 곡에는 음란성이 있다"라고 말했고, 미노이는 "그걸 발견해준 사람이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던 장면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라미란은 최선을 다했다.
"예의 같은 거죠. 미노이가 가수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민망하잖아요. 이런 식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 정도는 알고 가는 거죠. 제가 노력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게으른 사람 쪽에 가깝거든요. 방송에서는 미노이의 '비지 가이'를 말했는데요. 사실 염따와 부른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좋아해'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에서 사실 미노이도 '되게 사랑을 갈구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일이 없을 때, 거의 누워만 있어요. 눈이 빠질 때까지 TV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쉴 때, 거의 모든 드라마, 예능, 영화를 다 보거든요. 음악도 TOP 100으로 듣고요. 저는 요즘 뉴진스 민지가 최애인데요. (웃음) 누군가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제가 모르지 않도록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게으른 편입니다. (웃음)"
사실 라미란은 지난해 6월 래퍼 미란이와 함께 '라미란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가사는 많은 부분 썼으니까요. 작사 저작권료를 받고 있습니다. 한 달에 1,700원 정도"라고 웃으며 답했다. '라미란이'라는 곡 속에는 '크게 숨 한 번 쉬고 내뱉어 거울 속에 비친 네 모습을 봐/ 너무나 눈부셔/ 믿을 수 없다면 내가 보여줄게/ 네가 얼마나 빛이 나는지'라는 가사가 있다.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곡은 어쩌면 제목처럼 라미란의 모습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제가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제 가족들이나 아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두 별일 없이 살아야 전화가 안 오니까요. (웃음) 제발 안 아프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고요.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제가 행복해야 제 주변 사람들도 행복할 거라 생각해요. 이기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다가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살고 싶어요. 노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제 목표예요. 여한 없이, 원 없이 살자. 그런 면에서 연기라는 것이 참 재미있어요. 정말 다행이죠. 일도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이번엔 주상숙의 삶도 살았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다른 인물의 삶을 살게 되잖아요. 너무 재미있어요. 지금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22년 라미란은 뜨거울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 '정직한 후보2'와 '컴백홈'이 개봉하고, '고속도로 가족'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가 바쁘다는 것은 관객들이 그만큼 라미란을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대감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되게 무겁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부담갖지 않으려고요. 눈에 보이고, 그 모습이 좋으면, 봐주실 테니까요. 제가 가진 부담감 보시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대를 하시는 것도, 평가를 하시는 것도, 작품이 공개되고 제 손을 떠난 이후예요. 그래서 임할 때 최선을 다해서 고민하고 임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직한 후보2'를 보는 관객에게 바라는 점도 있을까.
"인상 깊은 장면이 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시고 돌아서서 가시면서 '정직한 후보2'를 떠올릴 때, '이 장면 진짜 재미있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