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한민 감독 "유려한 '한산'…이순신, 글로벌 평가받아야 할 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딱 맞다. 내겐 '명량' 애정지수 100%, '한산'도 100.0%, '노량'은 100.00%다."
김한민 감독이 '명량'의 프리퀄 '한산:용의 출연'(이하 '한산')으로 다시 한번 이순신을 조명한다.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 김한민 감독은 1592년 무더웠던 이 무렵의 조선을 스크린으로 데려왔다.
'한산'은 명량해전 5년 전,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 해전을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명량' 속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이 용렬한 장수였다면, '한산' 속 박해일의 이순신은 지혜로운 장군의 면면을 담아냈다.
영화 개봉 전 만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지대한 정보력을 자랑했다. 작품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왜 '이순신'어야 했는지 묻자 "아이러니함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계신 것 같다. 국가의 녹을 받는 장수고 대장이시지만, 백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큰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준다. 을지문덕, 강감찬 장군 등 많은 영웅이 있지만 이순신 장군은 묘하게 다른 지점이 있다. 당시 왕과도 긴장 관계가 있고, 백성과 가깝다고 해도 임꺽정이나 민란을 주도한 이들과는 다르지 않나. 그런 위치를 이 시대에 재평가하자면, 상대적으로 정치적 평가에서 오염되지 않은 지점이 있어서 지금 시대와 오롯이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명량'과 '한산', 그리고 '노량: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까지. 김한민 감독은 각 작품에서 보이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차별점을 두려 했다. '명량' 속 이순신이 용장이었다면, '한산'에선 지장의 모습을 담아냈다. 한 인물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려내려 했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한산'에서의 이순신은 어떻게 보면 '명량'의 이순신과는 다르다. '명량'에서는 이순신의 고독한 의지가 결전을 지탱하고 궁극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역전승을 이뤄낸다. 반면 '한산'에서는 이순신과 주변 장수들의 관계가 중요했다. 이순신의 그런 포용력, 감화력, 그런 관계성을 같이 가져가는 것에 중점을 뒀다."
김한민 감독이 상상한 감화력 넘치는 이순신에는 배우 박해일이 제격이었다. 이미 박해일과 '극락도 살인사건', '최종병기 활'에서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기에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그의 매력이 새로운 이순신에 딱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런 지점에서 박해일 배우가 (이순신 역에) 매우 좋았다. 역할을 수행하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배우가 아주 잘 포용해 줬던 것 같다."
"박해일을 선택한 이유는 심플하다. 저는 젊은 이순신을 표현하고 싶었고, 박해일을 캐스팅하고 나서 상대 배우들이 정해졌다. 역사적으로도 이순신이 당시 만 46세의 장수였고, 박해일의 지금 나이와 비슷할 때다. 와키자카 역시 젊은 장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량' 속 배우들과 교체가 될 수 있었다."
작품의 묘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후반부 해전 신이다. 김한민 감독 역시 이 신을 위해 온 노력을 쏟았다. 평창에 3천 평 규모의 CG 세트를 이용해 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고 해전 신을 완성했다. 아무래도 CG가 들어가는 작업이라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했다. 김한민 감독은 국내 최초로 버추얼프로덕션 과정을 거쳤다. 이 움직이는 콘티를 숙지한 배우들은 신을 보다 리얼하게 이끌 수 있었다.
"후반부 해전 신이 가장 짜릿했다. 이 작품은 촬영 자체보다도 액션, 전투 신에서의 사전 시각화 작업이 중요했다. 프리 비주얼이라고 해서 움직이는 콘티를 만드는 작업이 있는데, 이번엔 그걸 넘어 버추얼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장면을 미리 구현하지 않고서는 현장에서 찍을 수가 없었다."
"이게 참 쉽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70%의 성공과 30%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다. 이런 작업은 국내에선 저희가 처음이다. 덕분에 '한산'이 유려하고 에지(edge)있는 작품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산'과 이은 속편 '노량'은 알려진 제작비만 각각 300억 원 규모다. 게다가 전편이 국내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둔바, 속편을 내놓는 부담감도 있었을 터다. 두 속편의 촬영을 마친 김한민 감독은 "이전 흥행은 제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흥행 스코어가 이순신 장군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 가림막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순신의 이야기 2~3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3부작으로 하길 참 잘했다 싶다"고 덧붙였다. 그에겐 부담감과 강박관념보다, 그저 이순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3부작 플랜을 가져가는 것에서 큰 부담이나 강박관념보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순신과 그의 해전이 가지는 의미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어찌 보면 '명량'은 우격다짐 식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돌파하면서 만들었다면, '한산'과 '노량'은 차분하게 잘 준비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7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김한민 감독은 3부작에서 차마 다루지 못한 이순신의 일대기를 드라마를 통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감독은 자신이 이토록 이순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그 원동력 자체가 '이순신', 그리고 '그의 절묘한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이순신은 매력을 넘어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을 더 표현하고 싶다.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이야기를 드라마로도 만들어보고 싶다. 영화가 전투신에 집중했다면, 드라마에서는 당대 정치, 외교사적인 부분도 다루고 싶다. 영화가 잘 돼서 드라마를 만든다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 그저 많은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려면 드라마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거다."
"드라마 플랫폼은 현재 논의 중이다. OTT 쪽에서는 이순신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문화 주권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OTT는 글로벌하다 보니까 로컬한 걸 하려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제 생각에 이순신은 이젠 글로벌적으로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이다. 그분의 굉장한 밸런스와 안목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제는 그걸 좀 펼쳐도 되지 않겠나 싶다."
김한민 감독은 인터뷰 내내 거북선, 난중일기, 역사적 고증, 그리고 성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며 '찐 역사 덕후'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이토록 밤낮으로 이순신에 집중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꿈에도 등장하지 않았다며 아쉬워한 그다.
"놀랍게도 장군님이 꿈에 한 번도 안 나오셨다. 저도 놀라울 지경이다. 만약 만날 일이 생긴다면 큰절 세 번 드리고, 제가 (장군님께) 누가 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