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일 上] “성평등 인식 높아졌지만”… ‘경단녀’ 만드는 뿌리 깊은 사회 구조
완화되는 성평등 인식에도 여성의 가사·돌봄 책임은 여전
한국 사회가 만드는 '경단녀'...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돼야
2020년부터 유행한 코로나19와 이에 따른 경제 불황은 구직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력단절여성’에게는 더 큰 악재로 작용했다. 거리두기를 위한 일상의 비대면 전환으로 인해 가족의 돌봄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주로 여성의 가족 돌봄 시간을 증가시켰다. 2022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2세 미만 자녀에 대한 부모 돌봄 분담의 성별 격차는 47%로 OECD 국가 중 6번째로 격차가 크다. 이는 코로나로 인한 가족 돌봄 부담의 많은 부분을 여성 책임으로 전가해 경력단절여성을 비롯한 여성 고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력단절여성’이란 결혼·임신·출산·육아·자녀교육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15~54세 여성을 뜻한다.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5~54세 기혼여성 취업자 약 508만 2천 명 중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수는 약 213만 명이다.
‘M자형’ 한국 여성 고용률…출산·육아 잦은 30대 진입하며 G5 국가와 격차
한국의 여성 고용률 그래프는 ‘M자형’ 곡선을 그린다. 20대까지 증가하던 고용률은 30대에 접어들며 크게 감소하고, 40대 후반에 회복했다가 50대 이후 다시 감소한다.
이는 G5(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독일)의 여성 고용률이 20~40대까지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50대 들어 감소하는 ‘포물선(∩)’ 곡선을 그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G5간 여성고용률 격차는 ▲25~29세 5.9%에서 ▲30~34세 11.0%, ▲35~39세 16.6%까지 벌어진다.
G5와 비교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이 크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는 30대는 다른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는 등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여성의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편이다. 또한 이렇게 생기는 가정 내 ‘돌봄’에 대한 책임과 이에 대한 부담감은 한국 여성이 커리어를 포기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높아진 성평등 인식에 비해 독박육아 여전
통계청 조사 결과 여성 경력 단절의 가장 큰 이유로 ‘육아’가 꼽혔고, 결혼과 임신·출산이 그 뒤를 이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지난 5년간 전통적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완화됐고, 양성평등 인식은 대폭 개선되었다”라고 밝힌 후, “여전히 돌봄 부담은 여성에게 가중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심화했다”라고 덧붙였다.
20~30대의 젊은 연령일수록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완화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사·돌봄 책임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돌봄시간은 남성 0.7시간, 여성 1.4시간으로 여성이 2배 길었다. 특히 가정에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경우, 남성의 평일 돌봄 시간이 1.2시간인데 비해 여성은 3.7시간으로 남성과 비교해 3배 이상의 시간을 돌봄 노동에 사용하고 있었다.
“여성은 결혼하면 일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경력단절여성’을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저출산의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꼽히는 이러한 인식은 이전보다 사회 진출 욕구가 높아진 20·30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기피라는 결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2024년에는 0.70명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근로조건’도 경력 단절 원인
최근에는 혼인·임신·출산·육아뿐 아니라 성별 임금 격차를 비롯한 근로조건까지 여성 경력 단절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여성의 경력단절에 기존 혼인과 임신·출산·육아에서 성별임금격차 등 노동시장 구조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해 경력단절 사유에 ‘근로조건’을 추가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해당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2년 이래 현재까지 줄곧 1위를 차지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의 중위임금은 여성 중위임금보다 약 31.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커리어의 공백이 승진 차이를 발생시키거나, 이전보다 저임금의 노동시장으로 이직할 수밖에 없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기업 내 의사결정 직위로 진출하는 비율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자산 총액 2조 이상 기업의 전체임원 8,677명 중 여성임원 비율은 5.7%(49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이 25.6%인 점을 고려하면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여성임원이 1명도 없는 기업 비율은 22.4%(34개)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오명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공식적인 통계는 없으나, 어렵게 부장 이상의 직급에 올라간 여성의 경우도 퇴직 후 재취업, 혹은 전직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라며, "산업기술인력 중 리더급 여성 비율 제고를 위해, 이들의 재취업과 전직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력 중단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여성의 경력 단절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 중이다. 현 정부도 월 100만 원의 ‘부모 급여’ 신설, 부부 육아휴직 연장(2년→3년) 등의 정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이 주로 단기적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어, 본질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가정 양립 문화를 촉진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사전에 예방하고,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직장환경과 인식을 조성하는 등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깊게 박힌 사회 구조와 인식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중장기적 해결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