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유 "'나의 첫번째 아이로 와줘서 고마워…지용이에게 쪽지"
아이유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 '이지은'을 스크린에 올렸다. 아이유의 첫 상업영화 '브로커'는 여러모로 놀라움을 주었다. 일단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첫 상업영화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현지에서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호평받았다.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같은 일들이 '브로커'로 아이유에게 일어났다.
아이유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맡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자신이 낳은 아기 우성이(박지용)를 베이비 박스 안에 채 넣지도 못하고 아래 내려놓고는 돌아서는 so young(쏘 영, 아주 젊은) 엄마다. 그리고 다음 날, 아기를 찾으러 와서 '브로커'인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일행이 되어 우성의 새 부모를 찾아주기 위한 여정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소영은 "굳이 뭘 다 혼자할 필요가 있냐"라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인터뷰를 곱씹을수록, 첫 장편영화에서 '소영'같이 긴장했고, 얼어붙었고, 입을 떼기 어려웠던 아이유에게 배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주영,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런 관계가 되어준 듯했다. 굳이 혼자 할 필요가 없다고, 같이 만들어가는 거라고 말이다.
Q. 자신의 첫 장편영화 '브로커'를 본 소감이 어땠나.
"칸에서 처음 봤는데요. 너무 떨려서요.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저희 부모님이 엄청나게 궁금해하셨거든요. '재밌어?'라고 부모님께서 물어보셔서 '재미의 기준이 뭔지에 따라 달라. 감독님이 담담하게 풀어가는 편이라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어'라고 계속 말씀드렸었거든요. 그런데 칸에서 처음 보고 나와서 가족 단톡방에 '엄마 아빠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을 보낸 것 같아요. 원래 제가 고레에다 감독님 팬이거든요. 관객에게 항상 생각할 지점을 주셔서요. 저는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엄마 아빠가 재미있게 영화를 보는 기준과는 다를 수 있어서요."
Q.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 상영 후, '한국의 국보'라고 소개하며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상영 후에 관계자분들께서 반응이 좋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는 의례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파파고를 돌리며 번역해보니, 진짜 제가 언급된 평들이 있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저는 프랑스에 제 팬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환대해 주셔서 몰래카메라 같았어요. 레드카펫에서는 제 CD를 들고 사인을 요청해주시는 게 인상 깊었고, 가짜 같고, 서프라이즈 같았어요. '어떻게 사셨을까, 직구를 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짧게 지나갔어요. (웃음) 제가 유럽에서 공연해 본 적도 없고요. 퍼포먼스가 화려한 가수도 아니고, 언어에 많이 기대어 음악을 하는 편이라 언어의 장벽이 있을거로 생각했거든요. 기대가 없는 게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앞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 빅 팬이라고 밝혔다.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부담감이 느껴졌을 것 같다.
"일단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든 고민은 '송강호 선배님과 내가 과연 면대 면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기절하지 않고?'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런 경험은 연기를 계속한다고 쉽게 오는 경험이 아니잖아요. 감독님께 제안받은 순간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고요. 감독님께서는 항상 편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제가 많이 귀찮게 해드렸거든요. 소영의 전사, 선택의 이유, 행동의 이유,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등 많이 여쭤봤는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는 애매한 지점이 없이, 의문이 남지 않는 답변을 해주셨어요. 그 지점에 많이 의지한 것 같아요."
Q. '브로커'에서 촬영할 때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
"관람차 장면이 대본을 볼 때도 가장 기억에 남았고,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현장에서도 긴장을 많이 했지만, 스크린으로 볼 때도 좋더라고요. 대본에 '해가 질 무렵'이라고 명시돼 있어서 시간상으로 빨리 찍어야 했거든요. 대사가 긴데, 실수하면 다음날 다시 와야 해서 덜덜 떨렸는데요. 막상 슛이 들어가고 나서는 '이런 일이 있었지'라고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강동원 선배님과의 호흡이 좋았어요. 해가 떨어지는 방향과 속도는 컨트롤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 시점이 모두 담긴 장면을 보니 '멋지다' 싶었어요. 그때의 음악도 멋졌고요."
Q. 관람차 장면에서 동수(강동원)가 소영(아이유)이 눈물을 흘리는 시점에서 눈을 가려준다. 앞선 인터뷰에서 강동원은 미리 상의하면 눈물을 흘리는 타이밍을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눈을 가려준다는 동작은 있었는데, 영화에 담긴 타이밍과 달랐어요. 약속된 것보다 제 눈물이 빨리 떨어진 거예요. 말씀드렸듯이 빨리 찍어야 하는 장면이었고, 강동원 선배님의 기지로 소영이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가려주셨어요. 그 순간에도 놀랐던 기억이 나요. 순발력이다. 스크린에서 선배님 손 아래로 소영이의 눈물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날 강동원 선배님께서 다 양보해주시긴 했어요. '(이)지은 씨가 중요하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런데 사실 선배님께도 중요한 장면이었거든요.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날 특히나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Q.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소영의 대사에도 고민이 컸을 것 같다.
"그 촬영이 후반부에 진행되어서요. 그때는 이미 서로 편해진 현장이었어요. 특히 해진이 역의 승수가 함께해서 현장의 어색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항상 오디오를 채워줬어요. 정신도 없고, 웃을 일도 많고 그랬거든요. 그 대사는 대본을 볼 때부터 잘해야 하는 장면으로 책갈피가 꽂혀 있던 장면이에요. 막상 현장에 갔는데 정말 상현, 동수, 해진이로 보이는 거예요. 원래 힘줘서 할 계획이었거든요. 슬프게 할 계획이었는데, 소영이가 슬프게 할 필요가 있나 싶더라고요. 감독님도 덤덤하게 한 버전을 좋아해 주셔서 2테이크 만에 오케이를 받았어요. 같은 대사지만 모두에게 다르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상현에게는 '상현아'라고 한 다음에 오는 머쓱함도 있을 것 같았고요. 동수는 어찌 보면 우성이와 겹치는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전사를 알고 난 후 둘이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좀 힘을 줘서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 해진이에게 듣는데 기분이 진짜 이상하더라고요. 글만 보고 상상한 톤과는 달라서 '기분이 이상하네' 생각이 들었어요."
Q. 앞서 송강호가 차 안에서 소영이 발로 동수의 의자를 차는 장면에서 이지은의 연기에 실제로 놀랐다고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본인 아이디어로 탄생한 장면이 있나.
"시나리오에는 발로차는 지문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했을 때, 송강호, 강동원 선배님께서 너무 재미있게 리액션을 받아주셔서요. 처음 찰 때는 살살 찼는데, 계속 차라고 해주셔서 나중에는 세게 많이 찼습니다. (웃음) 막상 얘기하려니 생각이 안 나는데요. 감독님께서 워낙 자율성을 많이 주셨어요. 해진이랑 우성이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정해주신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해진이가 편하게 움직이면, 제가 그걸 눈으로 쫓으며, 혹은 손에 뭘 써주거나 이런 걸 채워 넣은 것 같아요. 아이들과 호흡하는 장면에서 유독 그랬던 장면이 많았던 것 같아요."
Q.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어땠나.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신기한 게요. 직전까지 가장 떨렸고요, 촬영이 시작되면 안 떨려요. 현장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렇게까지 제 연기를 지켜봐 주시고, 말씀해주시는데 '제가 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되긴 했어요. 칸 영화제에서 조금 편한 분위기에서 선배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때 송강호 선배님께서 '정말로 잘했다'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영화 찍는 내내 연기를 봐주시고 응원해주신 게 진짜 진심이셨나봐'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Q. 배두나와 이주영이 '브로커' 촬영 현장에서 생일상을 차려줬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거의 다 로케이션 촬영이라 숙소 생활을 했거든요. (배)두나 선배님과 (이)주영 언니는 이미 친해진 상태고, 두 언니가 저를 끼워주는 형국이었어요. 제가 두 분이랑 함께 찍는 장면이 많지도 않았고요. 그 와중에 제가 생일을 집 밖에서 맞게 되니 마음이 쓰였나 봐요.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요. 미처 다 너무 감사하다는 표현도 못 할 정도로 놀라고 고맙기도 했어요. 같이 이야기도 많이 했고, 윷놀이도 했어요. 두 분이랑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저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계시는구나, 그걸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고 계시는구나, 내가 걱정이 많이 되시나보다, 라는 감정이 다 느껴졌어요."
Q. VIP 시사회 때, 촬영 현장에서 아기였던 우성이 역의 배우 박지용 군이 아장아장 걸어들어와 놀랐을 것 같다. 막상 보니 느낌이 어땠나.
"저는 지용이가 이제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했어요. '브로커' 촬영을 마치고 어머님께서 SNS 주소를 알려주셔서, 몰래 보고 있었거든요. 지켜보면서 '어머, 이제 선다, 우와 이제 걷는다'라고 혼자 놀라곤 했어요. 그래서 알고는 있었는데, 진짜 눈앞에서 걸어들어오는 걸 보니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어린이가 됐더라고요. 그런데 지용이가 저는 모르는 것 같았어요. 동원 선배님이나 해진이 역의 승수 군에게는 낯을 덜 가리는 것 같았는데요. 저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더라고요. 그게 아쉽기는 했지만, 지용이가 걷는 모습을 봐서 너무 예쁘고, 좋았어요. 나중에 지용이가 커서 말을 하고, '브로커'를 본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어머님을 통해서지만 제가 작은 쪽지를 전달하긴 했거든요. 작품 속에서지만, 저의 첫 아이잖아요. 제가 앞으로 엄마 역을 하게 된다면, 이게 또 너무 특별하게 남을 것 같은 거예요. '나의 첫 번째 아이 역을 맡은 지용아, 내 첫 아이로 와줘서 고마워'라고 쪽지를 전했어요. 나중에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어요. 짝사랑이었죠. (웃음)"
Q. 가수로도, 배우로도 인상 깊은 활동 중이다. 배우로서의 활동이 가수 아이유에게 혹은 사람 이지은에게 주는 몫이 있을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어느 지점부터 사람이 관성적으로 살게 되잖아요. 제가 30살이 되면서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사회의 이면을 생각한다든지요.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되면서, 생각이 건드려지는 게 좋아요. 그게 저를 굴리는 것 같아요. 제가 늘 하던 대로 생각만 할 때에는 더 나아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또 하나 좋은 점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가수로 솔로 활동 중이고, 팀으로 움직이지만 피치 못하게 외로운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내 선택이 맞았나'라고 계속 물어보게 되고요. 그러면서도 팀원들에게는 '티 내지 말아야겠다'는 강박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연기를 할 때는 감독님도 스태프들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잖아요. 명확한 역할이 주어지는 게 안정감이 들고, 거의 모두가 모르고 지낸 사람들이지만, 작품을 하는 기간만큼은 하나의 목표로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소속감이 좋아요."
Q. 스스로 생각하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나.
"아직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때그때 찾아오는 시기에 맞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브로커' 소영이도 제가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찾아왔거든요. 그 시점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합류하는데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그땐 막연하게 다음 작품에 어떤 역을 하고 싶냐고 물어볼 때 엄마 역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타이밍에 '브로커'가 찾아온 거예요. 어떤 엄마라는 구체적인 건 없었지만, 출산의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 보고 싶고, 연기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도 그 당시에 갈증이 있던 부분이 찾아와준 것 같아요. 겸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여유롭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타이밍에 맞춰 작품이 찾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요즘 느끼는 갈증이 있을까.
"제가 아무래도 '아이유'로 활동할 때 보여지는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 이면을 보여주고 싶으신 건지, 어두운 역할을 많이 제안해주시는 것 같아요. 최근 세작품이 좀 어둡고, 무거운 역이었고요. 요즘에는 무겁고 사연 있는 역할을 맡다 보니, 아주 일상적이고 고민 없는 역할도 저에게 주어지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다음 작품 '드림'에서는 그런 모습을 연기하긴 했는데요. 차기작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일상적이고 무념무상 한 역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