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년심판' 김혜수, 왜 피해자 사진을 심은석 앞에 두었을까
*해당 글에는 '소년심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염려스러웠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을 켜기 전, 딱 그런 마음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 나이, 혼란스러운 시기, 그 시기의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소년심판'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김혜수가 있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심판하는 법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법정에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있고, 범죄에 노출된 피해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들이 있다. 판사는 이들의 처분을 결정한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후에도 재비행을 방지하기 위해 소년들의 환경을 들여다본다. 공분을 샀던 소년들의 범죄가 중심에 있지 않다. 물론 성폭행, 살인 등 충격적인 범죄들의 면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 범죄를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김혜수는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 역을 맡았다. 심은석은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하며 냉철하게 소년범을 심문하고 처분하는 인물이다. 자신도 소년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판결을 맡게 되면 조사부터 판결 때까지 피해자의 사진을 자신의 앞에 두고 임하는 인물이다.
"대본상에 심은석을 표현한 것이 충분해서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피해자의 사진을 재판장, 일하는 테이블 등 모든 과정에서 심은석의 시선 앞에 두는 건 제가 감독님께 의견을 드린 부분이었어요. 심은석의 대사 중에 '오늘 판결을 통해서 피해자는 억울함이 해소됐는가, 가해자는 반성하는가'라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런 맥락과 닿아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 대사로 피해자의 사진을 심은석의 앞에 둔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요. 그걸 감독님께서 제 마음처럼 화면에 잘 담아주셨어요."
실제 여성 판사님을 촬영 전부터 만나 뵙고 그분들과 밀착된 복식까지 갖췄다. 촬영 중에도 김혜수는 잠에서 깨서 '소년심판'의 촬영지로 가는 차 안, 촬영하는 현장, 그리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그리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심은석을 놓을 수가 없었다. 힘들었다. 김혜수는 "심은석이 단지 어떤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소년범죄를 혐오하지만, 법관으로서, 어른으로서 갖고 있는 신념, 그리고 그 신념을 통해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대하는 모든 태도 등이 가장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에서 느껴지는 무게들이나, 대사 자체에서 주는 메시지가 상당했어요"라고 말한다.
"'소년심판'이 이상적인 걸 제안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실제 법조인을 만나 뵙고, 재판을 참관하면서였어요. 작품 속에서 심은석을 포함한 4명의 판사가 하는 이야기가 실제 법관들이 하는 이야기더라고요. 김민석 작가님이 얼마나 오랜 취재 끝에 균형감을 가지고 가해자, 피해자, 법관에 치우치지 않고 최종화까지 예민하게 다각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셨는지를 준비하면서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몰입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다. 특히 김혜수의 마음을 울리는 장면에서는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돌입하기도 했고, 심은석이 감정을 터트려야 했던 장면은 촬영이 지나도 끝내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감독님과 함께한 배우들에게 부탁해 재촬영을 하기도 했다.
"심은석이 차태주 판사와 초반 첨예하게 신념이 대립하는 장면이 있어요. 차태주가 '왜 이렇게 가해자를 미움과 분노로 대하냐고' 묻는 장면인데요. 그때 심은석이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라고 답을 하거든요. 리허설을 하는데 제가 김무열 배우의 연기에 동화가 되는 거예요. 심은석은 그런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하는데요. 그래서 감독님과 김무열 배우에게 리허설을 하지 않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자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피해자 가족분들의 연기가 너무 절절했어요. 심은석은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저는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늘 겉으로 냉정함을 유지하는 심은석이 쉽지는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이성민 선배님께 감사했던 건, 강원중 판사와 심은석이 대립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촬영하고 다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데, 뭔가 제 마음에서 그 장면을 붙잡고 있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성민 선배님과 김무열 배우님께 양해를 구하고 재촬영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성민 선배님께서도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대사가 많았고, 사실 선배님의 연기는 너무 충분했던 터라 정말 죄송하고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지'라고 하시면서 응원해주셨어요. 그 장면이 '보여줘야죠, 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라고 심은석이 말하는 장면이었거든요. 최선을 다했지만, 심은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다시 해낼 수 있었던 건 이성민 선배님 덕분이었어요."
심은석 역시 아들을 잃은 소년범죄의 피해자였다. 이는 극의 말미에 등장한다. 한 외신에서는 해당 내용이 초반에 등장했으면 냉정하게 소년범을 대하는 심은석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김혜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심은석의 대사에서 저를 떠올렸어요"라고 답을 이어간다.
"심은석이 아닌 김혜수가 소년범을 바라보는 시각이요. 사회면에서 충격적인 이슈를 접하며 분노하고, 혹은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된 이를 생각하며 눈물이 나고, 이런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을 혐오하고, 죄보다 가볍기만 한 판결을 비판했어요. 심은석이 피해자이긴 하지만, 말미에 가면 개인의 상처 때문이 아닌, 법관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으로서, 범죄를 혐오하지만, 거기에 대한 책임, 선입견, 시선, 의무 등 심은석을 관통하는 신념이 있었어요. 심은석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주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한 것 같아요."
김혜수의 지인들 역시 '소년심판'을 보고 말했다. 학부모인 친구들, 자녀가 '소년심판' 속 가해자와 피해자 연령인 친구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무섭다, 현실이. 어른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내 아이가 이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이런 피해를 받을까 봐 무섭기도 하고,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것 같아요. 심은석을 법관이고, 주인공이고, 소년범을 혐오하고,누구보다 냉철하게 소년범을 심판하는 법관임과 동시에 이 인물을 법관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으로 설정한 건, 사실 우리 사회의 누구도 소년범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단지 소년범죄에 가담한 가해자나 피해자, 그들의 가족, 판결해야 하고 갱생해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조금 더 인식하게 하고자 하는 작가의 장치가 아니었나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김혜수 역시 '소년심판'을 통해 얻은 바가 있다.
"모든 작품이 준비하고, 촬영하는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우고 얻어지는 게 있어요. 그 순간에 다 알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게 있는데요. 이번 작품은 보다 명확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변화와 영향이 저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인식, 태도 같은 것들이 변화하게 됐고요. 우리 드라마의 공동목표이기도 하지만, 단지 잠깐 갖는 관심에서 끝날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지속적인 관심, 노력과 책임이 뒤따라야 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