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피 뉴 이어'에 한지민이 주는 용기
배우 한지민을 대중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일 거고, 또 누군가에게는 도전을 계속하는 배우('미쓰백'), 다른 누군가에게는 술까지 잘 마시는(?) 언니('백스피릿') 등 다양한 모습이 있을 거다. 한지민이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도 있고, 새롭게 쌓아가는 이미지도 있다. 한지민은 "지금의 제가 20대 때보다 훨씬 훨씬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한지민을 인터뷰로 만난 건 영화 '해피 뉴 이어'를 통해서였다. '해피 뉴 이어'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한지민은 호텔 '엠로스'의 호텔 매니저 소진 역을 맡아 15년 동안이나 짝사랑한 친구 승효(김영광)가 영주(고성희)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지만, 그의 결혼을 도와줄 수밖에 없는 복잡한 감정선을 그려냈다.
아름다운 외모로 '짝사랑'이라는 단어와 멀리 있을 것 같은 한지민은 사실 '짝사랑 전문'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혼자 좋아했어요. 좋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못 하고, 혼자 쳐다보고, 어떤 표현도 못 하고 혼자 좋아했는데요. 성인이 되어서 누군가 마음에 들어도 혹시 거절당할까 봐, 그래서 관계가 어색해지고 보기 힘들어질까 봐 거의 말을 못 하는 편이에요. 연애할 때는 어떻게 했나 생각해보면 거의 상대가 먼저 얘기를 해오면 용기를 내는 편인 것 같아요."
승효의 결혼 소식을 알고도, 오래 간직한 마음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없는 소진의 모습은 배우 한지민을 만나 아름답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담겼다. 한지민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를 선택할 때 이 말도 했어요. '미쓰백'이랑 '조제' 때 워낙 네추럴하게 나와서요. '이 영화에는 화장 좀 할 수 있겠는데?' 라고 얘기했어요"라며 웃었다.
"뒷부분을 초반에 찍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진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부분이라, 진심을 담으면서도 과하면 안 되고, 마지막에는 축하도 건네야 해서요. 다양한 복합적인 감정이 선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하는 게 저에겐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첫 테이크를 감사하게 마음에 들어 해주셨어요. 엘리베이터라는 공간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 작은 공간에서 얼굴이 아닌 앞을 보고 나지막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한지민은 침체해 있던 시기에 영화 '해피 뉴 이어'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코로나 19 상황이 풀리고, 연말이 되면 이런 따뜻하고 무난하고 편안한 영화, 그러면서도 설레는 느낌의 영화를 찾지 않을까. 나라면 찾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했다. 배우 원지안, 조준영이 그려낸 고등학생 커플부터 배우 이혜영, 정진영이 그려낸 황혼 로맨스까지 다양한 연령의 다른 색의 사랑 이야기가 '해피 뉴 이어'에 있었다. 그의 2021년은 어땠을까.
"연말이 가는 거도 잘 못 느끼고 있었는데요. 질문해주시니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것 같아요. 왜 눈물이 나지.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이 작품을 선택했는데요. 그때도 개봉 시기가 정해져 있긴 했거든요. 빨리 이 시기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올해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엄청 그립다는 생각을 했어요."
"2021년 가장 잘한 일은 '해피 뉴 이어'를 선택한 일 같아요. 보통 작품을 선택할 때 깊게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지 않았어요. 촬영하면서 항상 중압감이 컸는데, 다양한 배우들이 나오니 내 부담이 좀 덜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마음이 안 좋은 시기에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소진이로 힐링 받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선택한 일이 잘한 것 같아요."
한지민은 '예쁜 배우'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그의 발자취에는 영화 '미쓰백', '조제' 등 다양한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한지민은 넷플릭스 예능 '백 스피릿'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제가 20대 때만 해도 '미쓰백' 같은 작품은 선택 못 했겠다 싶어요. 지금 못하는 것들을 '내년, 내 후년의 나라면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고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변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는데요. 이제 사람은 그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하고, 그것이 나쁜 형태가 아니라면 그 변화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변하는 것에는 그때마다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기대만큼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용기를 낸 나의 모습이 이제는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거창하게 '이걸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때의 내가 '이거 해보면 괜찮겠는데?'라고 생각하다 보니 좀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OTT라는 새로운 포맷이 생긴 것도 영향이 있을 수 있고요. 공중파에서 술 먹는 프로그램이라면 망설였을 텐데, 이제는 변화하고 있어서 부담이 덜해진 것 같아요."
한지민은 현재 차기작으로 '욘더'와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에 임하고 있다. 그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며 기대를 당부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 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을 선택한 것 같아요. '우리들의 블루스'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제주도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라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의 이야기라 따뜻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일상의 이야기거든요. 저는 처음으로 해녀 역을 하게 돼 부끄럽기도 한데요. 이 드라마 안에서 다른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욘더'는 미래 이야기예요. 삶과 죽음의 이야기입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제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시기인 것 같아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해피 뉴 이어'인 2022년을 맞았다. 한지민이 한 말처럼 '과거엔 못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 혹은 내년, 내 후년의 나라면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