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프라인'에서 건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수혁 /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래 돈이라는 건 사람들 피눈물을 먹고 사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빌런인데 어딘가 비어 보인다. 범죄 오락 영화 속 절대 악이 추구하는 모습과 같은 결과 다른 결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건우, 그가 특별해 보였던 것은 배우 이수혁이 그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영화 '파이프라인'에서 이수혁은 건우 역을 맡았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돌려 막대한 돈을 챙기려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큰 도유판을 짜 핀돌이(서인국), 접새(음문석), 나과장(유승목), 큰삽(태항호), 카운터(배다빈)를 한 곳에 모은다. 이수혁은 그런 건우에게 "기존의 악역과 다른 지점"을 발견했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제공

"유하 감독님께서 멤버들과 달리 저와 개인적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드라마 속에서 이수혁이 보여준 이미지와 전혀 다른 표정이나 제스쳐를 영화에서 같이 만들어보면 좋겠다고요. 드라마 속에서는 스타일적으로나 연기적으로 또는 제 순발력이나 해석이 들어갈 때가 많아요. 그런데 '파이프라인'은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도 하셨고, 명확하게 건우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히 그리고 계셨어요.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하면서, 최대한 감독님이 원하는 건우에게 맞춰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유하 감독의 "드라마 속 이수혁과 다른 표정과 제스쳐가 보이면 좋겠다"는 말은 이수혁에게 반가운 말이었다. 그동안 이수혁은 드라마 속에서 '완벽'한 인물로 그려졌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완벽한 비주얼은 이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고, 가장 좋은 무기였다. 하지만, 늘 갈증이 있었다. 이수혁은 "답답함"을 느꼈다.

"드라마 속에서 작가님과 감독님께서 멋진 모습을 주셔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이 됐는데요. 저 스스로 연기의 폭이나 캐릭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답답한 부분도 있었고요. 나름 체중을 늘려보거나, 예능 촬영이나, 이런 노력을 해보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요즘에는 좀 더 유연해졌어요. 이제는 모델 이수혁보다는 배우 이수혁으로 조금 더 바라봐주시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감사하고요."

영화 '파이프라인' 캐릭터 포스터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제공

건우라는 캐릭터를 맡아서 이수혁은 자기 자신에게 낯선 모습을 보았다.

"저는 일단 포스터 보고 놀랐습니다. 눈 양쪽이 아예 다른데, 제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몰랐고요. 드라마 찍을 때는 작가님께서 캐릭터를 멋있게 써주시니까,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관리를 하는 편인데요. '파이프라인' 찍으면서는 많이 먹고 자고, 그래서 붓기도 했어요. 저도 좀 생소하긴 합니다만, 그런 부분들을 통해 영화 안에서 제가 다른 캐릭터와 나란히 있을 때 이질감을 주지 않으려 한 것 같고요. '영화 속 이수혁은 이렇구나' 생각했어요. 유하 감독님 첫 말씀처럼 드라마 속 모습과 다른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절대 악의 존재로 도유팀과 대립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든 배우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작품 특성상 지하 공간에서 촬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완벽하게 합이 맞아야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자신의 촬영일이 아닌 날에도 이수혁이 현장을 찾았던 이유다. 건우가 등장하기 전과 후의 상황을 이해해야 건우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제공

"감독님께서도 저희끼리 호흡을 원하셨어요. 그런 것에 기대를 많이 해주셨고요. 음문석, 태항호, 유승목 선배님 등 배우들끼리 따로 만나 대사를 주고받는 연습을 했어요. 지하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 연습이 완벽히 되지 않으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제가 대립 구도긴 했지만, 상황의 앞, 뒤에는 꼭 나옵니다. 그래서 전체 리허설을 할 때도 제가 필요했고, 전후 상황을 알기 위해 촬영할 때 일찍 가거나, 촬영 없는 날도 현장에 갔어요. 다른 배우들에 비해 고생을 덜 한 건 맞지만,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분위기 메이커로는 음문석과 서인국을 꼽았다. 특히 서인국과는 '고교처세왕'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고,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까지 합하면 세 번이나 두 사람은 작품에서 만났다. 이수혁은 "(서)인국이 형은 의지가 많이 되는 형"이라며 말을 꺼냈다.

"'고교처세왕' 때는 대립 구도였고,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대화도 많이하며 친해졌는데, '파이프라인' 때 다시 느낀 건 정말 앵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저와 다르다면 다를 수 있는데요. 굉장히 자연스레 움직이고 순발력이 좋다고 할까요. 그리고 회식할 때나 현장에서나 힘들고 싫은 내색을 할 만도 한데,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대중에게는 어떤 면에서 '장난꾸러기'로 포장돼 있는데, 그 속에는 어른스럽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영화 '파이프라인'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제공

"음문석 배우는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제가 닮고 싶을 정도로 의욕도 많은 사람이고요. 이 정도로 연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소집도 많이 했고요. 현장에서 의견도 많이 냈고요. 서인국 배우와 음문석 배우가 성향은 다르지만 분위기 메이커를 꼽으라면 그 둘을 꼽겠습니다."

'완벽하게 그려진' 이수혁과 실제 이수혁의 간극,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로 무겁고, 차갑고, 멋진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개인적으로 지인들이 저를 생각할 때, 무겁고 재미없는 사람보다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에 '끼리끼리'라는 예능을 해보고 나니, 제가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렸을 때 특히나 팬들이 더 좋아하시는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 '파이프라인'에서 건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수혁 /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러브콜을 보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도 있을까.

"예능이라는 공간도 참 흥미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순발력을 요하기도 하고요. 사람의 매력을 표현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자리를 잡은 후에 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욕심과 두려움이 있었는데요. '끼리끼리'를 하고 나니 그런 두려움은 없어졌습니다. 어떤 예능이든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이수혁은 마지막까지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변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파이프라인'에서 그 몫을 대중에게 직접 선보였다. 떨림이 있었고, 영화로 관객과 만나는 그 자체에 대한 설렘과 감사함이 인터뷰 속에는 여러 번 드러났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꿈꿔온 입장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극장에서 스크린에서 제가 찍은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요. 캐릭터의 폭을 넓히려는 갈증이 항상 있고요. 예전에는 아쉬움과 답답함만 있었다면, 지금은 완벽한 모습을 더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것 하나, 풀어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 하나, 이렇게 양극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파이프라인'은 유쾌하고 밝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걸 알고 와주시면 건우를 이해해주시는데 편하게 봐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파이프라인'에서 건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수혁 /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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