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명성황후', 신영숙X강필석X이창섭이 그려낸 웰메이드 팩션
새 단장을 마친 뮤지컬 '명성황후'가 저력을 확인하고 있다. 4층 규모의 오페라극장을 채우며 코로나19 여파에도 여전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것.
뮤지컬 '명성황후'는 조선 왕조 26대 고종의 왕후이자 시대적 갈등의 중심에 선 명성황후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격변의 시대 속 조선을 지켜내려한 여성 정치가 명성황후의 고뇌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명성황후는 한국 근현대사 인사 중에서도 가장 극명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영원한 조선의 국모인지, 조선의 망조를 야기한 인물인지 아직도 두 입장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가운데 뮤지컬 '명성황후'는 사람 명성황후를 조명한다. 구한말 역사의 흐름에 있었던 한 여자이자 정치가였던 명성황후의 비극적 삶을 팩션(팩트와 픽션의 합성어)으로 그려낸다.
작품은 법정에 선 일본공사 미우라와 시해범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미우라는 조선의 국모를 시해했음에도 '살해 증거가 확실치 않다'며 석방된다. 다음 넘버에서는 민자영이 왕후가 된 그날로 돌아간다. 민자영(명성황후)과 고종은 앳된 모습이다. 입궁하는 민자영과 왕후를 맞이하는 고종은 앞으로의 운명을 모른 채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이 모든 큰 그림을 그린 이가 있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을 하고 있던 흥선대원군이다. 그는 몰락한 외척을 들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속셈을 드러낸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미 세계화는 태동을 시작, 조선은 격동의 시기를 맞이한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왕후였던 그의 삶뿐만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그린다. 어리숙한 소녀의 모습으로 시작해 사랑을 바라는 한 여인이 되고, 나아가 여성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떨치는 모습까지, 왕후의 성장사를 찬찬히 그려낸다. 강약 조절이 중요한 캐릭터를 연기한 신영숙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깊이 있는 명성황후를 완성했다. 특히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손탁' 역으로 데뷔한 그는, 이젠 '명성황후'하면 '신영숙'이 생각날 만큼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강필석은 격변의 시대에 놓인 고종으로 분했다. 대원군의 섭정을 거역하지 못하는 나약함과 명성황후의 보필을 받고 왕의 면모를 찾아가는 단단함을 유연하게 오갔다. 임오군란으로 왕실을 떠나 있던 왕후를 걱정하는 로맨티스트적 면모부터 을미사변을 겪고 탄식하는 모습까지,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했던 고종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또 다른 주역, 홍계훈 역에는 비투비 이창섭이 나섰다. 홍계훈은 무거운 서사에 절절한 로맨스를 더한 캐릭터다. 홍계훈은 남몰래 흠모해온 민자영의 곁에 있기 위해 무관이 된 인물로, 역사적 사건마다 명성황후의 곁을 지키며 지고지순한 마음을 간직한다.
전역 후 첫 뮤지컬로 '명성황후'에 출연한 이창섭은 보다 늠름해진 모습으로 무관 캐릭터를 소화했다. 넘버 '무과시험'에서는 앙상블과 함께 고난도 무술을 소화하며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을 뽐냈다. 명성황후를 향한 마음을 전하는 독백 넘버 '나의 운명은 그대'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충정뿐 아니라 '그대를 따르는 달빛이 되리라'라는 가사로 순애보 홍계훈의 매력을 발산했다.
'명성황후'의 이번 공연은 특별하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아 기존의 송스루 형식을 벗고 선보이는 첫 자리였기 때문. 여러 역사적 사건이 흘러가듯 지나기 때문에 송스루로 내용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던 점을 보완했다. 대사가 더해지니 드라마가 살아났다. 무대 장치, 의상, 소품까지 세세한 부분에 변화를 줬다. LED 패널을 이용해 다양한 영상효과로 리얼리티를 더했고, 의상 역시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함께 디테일한 세련미를 강조했다. 안무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무관시험에 응하는 앙상블의 군무 신과 수태굿 신에서는 행위 예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사적 평가는 차치하고, 종합예술로서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오는 3월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