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유태오 전야
"어찌 이리 매년 새로운게 쏙쏙 나타날까. 짜릿하기도 하지."
배우 유태오의 아내 니키 리는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적었다. 남편에 관한 글이지만, 배우로 그를 마주하는 관객들도 이제는 이런 느낌을 받을 차례인 듯 하다. 10대 때는 농구선수를 꿈꿨고, 21살 때부터 배우의 꿈을 꾼 뒤, 뉴욕에서 한국으로 영화 '레토'를 통해 러시아로, 유연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대중과 만나오다 영화 '새해전야'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유태오를 만났다.
유태오는 '새해전야'에서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래환 역을 맡았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연인인 오월(최수영)이 선물해준 스노보드로 선수의 꿈을 꾸게 되고, 이를 이뤘다. 에이전시 계약 제의까지 받게 되는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래환보다 오월의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했다는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 에이전시의 홍보 마케팅으로 인해 처음으로 오월과의 사랑에 장애가 생긴다.
래환은 여러모로 '유태오'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다. 어린시절 독일에서 자랐고, 독일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래환은 장애를 극복하고 스노보드 선수가 됐고, 유태오는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인해 농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 유태오는 "첫 미팅 때부터 완벽히 구상돼 있던 캐릭터"라고 래환을 설명한다.
"제가 캐스팅되면서 딱 하나, 중간에 독일어로 주절주절대는 부분만 바뀌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연치않게 개입시킬 수 있던 제 과거 경험을 통해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패럴림픽 선수인 래환을 준비하며 "박항승 선수"를 알게 됐다. 롤모델로 생각했던 선수다. 박항승 선수에 관한 휴먼 다큐도 방송된 적이 있었다. 유태오는 이를 보며 걸어다니는 모습, 앞모습, 뒷모습 등 피지컬에 대한 연구를 했다.
"제가 사실 발로 하는 운동을 잘 못해요. 스노보드도 이번에 배웠어요. 스크린 속 대회에 임하는 래환이는 국가대표 선수예요. 그리고 래환의 다리를 클로즈업 잡을 때 실제 박항승 선수의 다리었어요. 그런 면에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웃음)"
래환의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 것이 오월이의 스노보드였다면, 유태오의 부상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연기"였다.
"제가 운동선수 생활을 13살 때부터 20살 까지 했었어요. 연기는 21살 때 만나게 됐고요. 연기 자체가 저에게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운동선수에게 경기장이 사실 배우에게 무대와 별반 차이가 없거든요. 퍼포먼스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근본적으로 비슷한 심리적 요소에요. 나중에 연기를 만나고 나서 '내가 원한게 이런 거였구나'라고 깨닫게 된 지점이 있었어요. 청소년 때 꾼 꿈을 접고, 성인이 돼 만난 꿈이 연기자였죠."
국적은 항상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국어를 사용하는데는 서툴렀다.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어려웠던 부분도 언어였다. "제 마음을 소통할 때 받는 오해"가 유태오에게 가장 어려웠다.
"가끔 독일어로 머리 속에서 번역해서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이상하게 들릴 때가 있잖아요. 문화적인 늬앙스를 배우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반면, 그런 늬앙스에 익숙해지고, 소화시키고, 제것으로 만나면서 제 정체성을 정확히 소통하게 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게 보답인 것 같아요."
래환이도 독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후 한국에 와서, 한국어에 서툰 인물이었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속 맥켄지도 영어교사였다. 어찌보면, 편하게 말을 내뱉을 수 있겠다 싶은 캐릭터인데, 유태오의 생각은 달랐다.
"제 귀에는 들리니까요. 교포 설정이라도, 이야기 전개에서 감수성을 전달하려면 로컬 어투로 소통을 해야하잖아요. 배역이 이러니 안해도 된다는 핑계거리를 스스로에게 주기 싫어요. 연기자의 욕심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딕션이 좋아야 하니까요."
늬앙스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듯, 배우기도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유태오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를 배운다.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고요. 매주 코칭을 받아요. 작품활동을 할 때도 안할 때도 코칭을 받아요. 운동선수의 논리예요. 금메달 땄다고, 다음 경기를 위해 트레이닝을 안하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라는 종목이 섬세하게 몸을 쓰는 건데, 그 속엔 입 근육까지 들어가는 운동이라고 생가할 때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소리를 파악해요. 저에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예를들어 '이 개는 미친듯이 짖지만, 물지는 않아요'라는 대사를 할 때, 순진하게 말하는 것과 오묘하게 위협을 주려고 할 때 톤과 매너가 달라요. 선생님이 여러가지의 톤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표현에 대한 설명을 해줘요. 무한반복으로 항상 연습하고 있어요."
'새해전야'의 개봉을 앞두고 유태오는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전지적 참견시점'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한 발 가까이했다. 대중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그의 이름을 올리며 관심을 입증했다. "실검에 대한 관심이 고마워요. 제 직업 자체가 관심을 받는게 중요한건데,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라고 말하는 유태오다.
"예능을 처음 해본 건 아니었어요. 예전에 tvN '버저비터'라는 농구 예능에 출연했었는데요. 그때 제가 많이 느끼고 배운 것 같아요. 예능이 쉬운 일이 아니고, 고정 예능 출연자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예능을 할 때 재미있게 같이 어울리는 것 같지만, 예능인들은 제가 닿지도 못하는 어떤 고수 수준의 칼싸움을 하는 느낌 같아요. 저는 그냥 연기에 집중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요.(웃음)"
'머니게임', '보건교사 안은영', '새해전야' 등 짧은 시간에 유태오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유태오는 여전하다.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몸을 45도 정도 앞으로 기울여 나와서 질문을 고민하고, 솔직히 답했다. 자격지심이 있었다는 유태오는 아이러니하게도 "민낯"으로 이를 극복했다.
"제가 보기와 다르게 자격지심이 있어요. 그래서 배우가 된 부분도 있고요. 스스로 느끼는 결핍과 단점이 있음에도, 민낯을 드러내려는 노력으로, 숨기지 않고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믿는 것처럼 보이게 해준 것 같아요. 저는 저를 스스로 믿지 않아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시면, '오늘의 대답이 내일의 대답과 다를 수 있다'고 얘기해요. 그게 저의 솔직한 대답인 것 같아요."
"지금 저에게 '인상깊은 한 장면'을 물어보시면 답변을 해드릴 수 있는데, 30분 후에 같은 질문을 받으면 같은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30분 전의 저와 30분 후의 저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인터뷰를 하는 시간 동안 저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성장해나가거든요. 이 순간이 무서워요. 소통할 때 제가 하는 말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쓰여지는가에 따라서 제 커리어가 좌우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 마음을 듣는 이의 손에 담아드리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더 솔직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까도 까도 끝이 없다. 하물며 결혼하고 12년을 함께 한, 유태오의 말에 따르면 "모든 면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아내이자 아티스트 니키 리도 "어찌 이리 매년 새로운게 쏙쏙 나타날까"라고 했을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함께 '배우 유태오 전야'를 보내고 있다. 내일의 또 다른 유태오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