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신혜 "'콜' 촬영하며 미친X 된 것 같았죠…황홀함도 느꼈어요"
"10대부터 이 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저에게 오는 작품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 뿐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물도 들어오더라고요. 지금이 딱 그 시기이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과 상황이 맞물려서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로맨스 퀸' 박신혜가 '스릴러 퀸'으로 전직했다. 그간 '미남이시네요',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에서 미남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안방극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그가 이번엔 섬뜩한 스릴러로 대중을 찾았다.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박신혜는 우연히 연결된 20년 전의 여자 '영숙'(전종서)의 도움으로 현재를 바꾼 '서연' 역을 맡았다. 행복함도 잠시, 서연은 함부로 과거를 되돌린 대가로 살인마와 마주하게 된다.
'콜'은 당초 3월 개봉을 목표로 올 초부터 홍보에 힘을 썼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봄-여름 개봉작들이 줄줄이 밀리는 와중이었다. 더이상 개봉을 미루지 못하고 관객을 만난 영화가 많았다. 성적은 예상만큼 좋지 못했다. 이 가운데 '콜'은 섣불리 개봉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가을께, 결국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눈을 돌렸다. 코로나19로 세계 사람들이 '집콕'을 이어가고 있으니 오히려 경쟁력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음향시설이 갖춰진 스크린에서 '콜'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많은 기자들도 이 말에 공감했다. 배우는 오죽했을까.
"'콜' 개봉이 계속 늦춰지다 보니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 마음이 들려고 할 때마다 드라마 촬영에 집중을 해야 해서 좀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넷플릭스를 통해서 개봉이 확정됐고,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해요.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우리 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 중이에요"
'콜'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서연과 영숙의 대결구도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흡인력을 선사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이기에 정형화된 엔딩은 어울리지 않았다. 박신혜 역시 "결말은 모르죠. 반전을 줄 뿐이에요"라며 작품의 의도에 공감했다.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그 상황에서도 서연이는 분명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탈출을 하던지, 딜을 통해서 해결을 하던지 했을 거에요. 어떻게 조금 더 효과적으로 그런 걸 보여줄까 고민했죠. 엔딩이라기보다는 에필로그라고 생각하고 촬영했어요. 영화가 자칫 선과 악이 붙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정형화된 게 아닌 엔딩을 주고 싶어서 다시 한번 반전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간 출연작마다 수동적이면서도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역할을 맡아 온 박신혜다. 박신혜는 '콜' 시나리오를 받고 한 차례 거절한 바 있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던 것일까, 아니면 보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번에도 수동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콜'을 거절했었어요. 영숙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부분이라든지 뭔가 흘러가는 대로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서연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 나는 항상 당하는 입장이어야만 할까' 싶었는데, 서연이는 당하고만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 나름의 방식대로 반격하고 순했던, 착했던 서연이가 점점 영숙이처럼 미쳐가는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영숙이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을 때 감독님이 '그런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배우가 저'라고 해주셨어요. 서연이가 독해져 가는 얼굴을 보고 싶고, 서연이가 다른 방식으로 분출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도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수동적인 것 같던 서연이는 영숙에게 위협을 당하면서 나름대로 반격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감정을 폭발, 치밀하게 대립하며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더했다. 실제로 박신혜는 발악하다시피 하는 신을 촬영하며 극한의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감정대로 풀어낸 애드리브가 있었기에 더 현실감 넘쳤다.
"연기할 당시에는 열 받으니까 정말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집어치우고 싶더라고요. 죽기 전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면서 (영숙을) 말리고 싶고, 죽이고 싶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다 애드리브로 연기했어요. 정말 촬영했을 때는 제 자신이 미친년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화상을 입는 신에서는 정말로 제가 화상을 입는 상상이 들면서 다리가 찢어질 듯 아프고 배 살갗이 다 붙어버리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실제 화상을 입지 않았지만요. 촬영 후 진이 다 빠졌는데, 정신적으로는 황홀했어요"
'콜'이 여성 캐릭터들이 이끄는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바, 또래 배우인 전종서와의 케미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박신혜는 "종서 배우는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예요. 저와 굉장히 다른 느낌이지만 사랑스럽고 새로워서 많이 배우는 현장이었어요"라고 전종서의 오프(OFF) 모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야생마처럼 돌변하는 전종서의 모습에 감탄했다고 했다.
"종서 배우는 거침이 없어요.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친구예요. 카메라 앞에 있을 때의 전종서 배우는 정말 야생마 같거든요. 그런데 카메라 밖에서는 굉장히 솔직하고 꾸밈없는 친구였어요.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멋있고, 광기 어린 눈빛이 저도 가끔 섬뜩할 때가 있어요. 종서 배우는 에너지가 상당해요"
영화 '콜'은 박신혜에게 남다른 의미다. 올 초 영화 홍보를 시작했을 때부터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박신혜. 그는 '콜' 언론시사회 후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도 '콜'만큼 강렬하게 남았던 작품이 없었고, 작품을 통해 감정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했다. '콜'은 그에게 연기적 갈증을 해소해줬고, 또 한층 더 싶은 갈증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저에겐 모든 현장이 늘 공평하게 감사했어요. 모든 현장이 너무 즐겁고 모든 캐릭터를 연기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콜'만큼 강렬하게 남았던 적이 없었어요. 늘 뭔가 긍정적인 캐릭터들을 맡았는데, '콜'을 통해서 더 감정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다음 작품을 빨리 더 하고 싶더라고요. 더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이 끝나고 나면 몸은 지치는데 정신적으로 (작품을) 더 목말라 하는 것 같아요. 이 갈증이 채워지려면 계속 작품을 찾기 될 것 같아요. 계속 열일하고 싶어요"